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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12)화 (12/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12화

“그게 무슨 소리죠?”

소네트가 싸늘한 표정으로 묻자 레이니어가 입매를 비틀고선 다시 말했다.

“아가씨는 저와 있어야 건강하다고 했습니다.”

“레일라, 그게 무슨 소리야?”

“의사잖아. 그리고 레인은 유능하거든.”

레일라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말했다. 그가 저를 도와준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과 똑같이 무슨 소리냐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함부로 다른 사람의 손을 만지시면 안 됩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소리가 들리니까요.”

“아.”

레일라는 그의 말에 아까 소네트와 손 크기를 대본 게 떠올랐다.

“그런데 왜요?”

“손에 병균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아가씨는 감기만 걸려도 며칠을 앓아누우실 텐데, 남의 손에 묻은 병균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네요.”

새삼 원작의 그가 어떤 성격인지 다시금 떠오르고 있었다.

‘제가 왜 당신을 살려두는지 아십니까?’

그는 제 어머니에 이어 자신까지 죽이려 했던 황후를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당신 자식, 그리고 당신 가족들이 전부 죽는 걸 눈으로 직접 봐야겠거든.’

‘차라리 죽여! 죽이라고!’

‘그렇게 쉽게는 안 되지. 이 제국에서 펜들턴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는.’

그 선언 그대로 레이니어는 황후의 친가인 펜들턴 공작가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녀가 죽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정적을 전부 제거한 뒤에는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유도했고.

더 잔인한 건 자비로운 척 독약을 주었건만, 가짜 독약이었다는 것까지. 황후는 그 다음 날 처형당했고, 처형당하는 직후까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였다.

“대답하셔야죠, 아가씨.”

“아……. 네, 레인 말이 다 맞아요.”

어찌 됐건 그녀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가 제게 바라는 게 있으면 주면 그만이다. 저도 그의 피가 필요한 것뿐이니까.

거래할 수 있다면 거래하면 된다. 그때까지는 말을 잘 들어줄 생각이었다.

“감히 평민 주제에 귀족에게 조언이라니.”

시베르는 평민을 싫어했다. 그것은 레일라가 예상하던 것처럼 그녀가 평민 출신이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소네트도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그는 그래도 레이니어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기에 딱히 말을 더하진 않았다.

“건강에 대한 조언이니까요.”

그러면서도 그들은 묘하게 레이니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드는 이상한 기분에 몸을 떨었다. 마치 이를 드러낸 맹수를 마주한 것만 같았으니까.

시베르는 자신을 돕지 않는 소네트에게 조금 심통이 난 것처럼 그와 밀착해 앉았다. 그러자 소네트가 레일라의 눈치를 보더니 조금 떨어져 앉았다.

“언니, 오늘 어디 다녀왔어?”

레일라가 일부러 적막을 깨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바라던 대로 시베르가 소네트에게 흥미를 보이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조용하게만 있다면 기껏 친해지게 만든 게 허사가 될 터였다.

“아, 아까 보석을 좀 보러 다녀왔어.”

“어머, 왜?”

“휴고가 생일 선물로 사 준다고 해서.”

이던 상단의 존폐가 걸렸음에도 시베르를 쫓아다닌 휴고가 레일라 입장에선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휴고에게 이번 일은 굉장히 손실이 컸다. 이전 생에서는 그녀의 지참금으로 어찌 갚았기 때문에 백작위는 지켰다. 물론 이번 생에서는 그렇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언니, 그런데 휴고랑은 정말 헤어진 거야?”

“응.”

“왜? 혹시 나 때문이야?”

“……왜 그런 걸 물어?”

휴고가 나 때문이라고 그러잖아.

레일라는 말을 삼키고는 속상한 듯 눈을 아래로 내리며 침묵했다. 그러자 시베르가 애써 웃는 척하며 말했다.

“너 때문이 아니야. 휴고랑은 어차피 헤어질 생각이었어.”

“왜?”

“휴고는 네 애인이었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휴고와 결혼까지 하겠어. 잠시 그냥……. 네가 축복해 주니까 미안해서 만났던 거야.”

시베르의 뻔뻔함에 레일라는 저도 모르게 볼 안쪽을 씹었다. 그리고 우는 척하며 미소 지었다.

“아냐. 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 정말로 언니가 휴고와 행복해지면 좋겠어.”

소네트가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네려 하자 레이니어가 차가운 표정으로 그것을 손으로 막았다.

“아냐, 레일라. 나는 휴고보다 레일라 네가 더 소중해.”

시베르의 말에 레일라가 감동한 척하며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러다가 레이니어의 손을 무시하고선 소네트가 건넨 손수건을 받으며 웃었다.

“그래도 헤어진 연인한테 선물을 받는 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만.”

그렇게 말한 건 레이니어였다.

기껏 시베르에게 다시 휴고와 잘해 보라는 듯 깔아 준 발판을 뭉개 버린 레이니어의 행동에 레일라는 당황했다.

“저라면 헤어진 연인이 주는 건 풀 한 포기도 싫을 것 같은데요.”

그 말이 맞긴 했다.

레일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레일라가 아는 레이니어는 연인은커녕 여인들과 가깝게 지낸 적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를 죽이려던 황후 때문에 약점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 연인이 생긴다면 그건 그거대로 약점이 될 터였다.

그렇기에 그는 그런 부분에선 몹시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그건 사람마다 달라요, 레인. 깊은 관계였다면 그러지 못할 수도 있어요.”

레일라의 말에 레이니어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실언했습니다.”

“괜찮아요, 레인.”

시베르의 표정이 좋지 않길래 레일라가 먼저 대답했다. 그래서인지 시베르는 화가 났음에도 말을 잇지는 못했다.

“소네트.”

“아, 응. 레일라.”

레일라는 이쯤 하고 소네트와 둘이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시베르가 더 그에게 달려들 테니까.

“혹시 내가 가꾼 온실 보러 갈래?”

“레일라가?”

“응, 언니가 많이 도와줬거든.”

소네트에게 은근슬쩍 언니의 칭찬을 하며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레일라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다가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니어의 붉은 눈이 무섭게 느껴져서 손을 내렸다.

“언니, 소네트와 말 상대 해 줘서 고마워.”

“아니야, 또 부탁해도 돼.”

“응, 고마워. 레인도 고마워요. 이따 검진 때 봐요.”

“예.”

그녀는 소네트가 저를 따라오는 것에 안도하며 문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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