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14화
레일라는 레이니어가 가져온 약이 든 유리 주전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가 그것을 작은 찻잔에 따르고선 가져오자 시무룩해졌다.
“혼자 먹어야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먹여 드려야겠군요.”
“혼자 먹을 수 있는데…….”
그가 티스푼을 흔들어 보이는 그가 레일라는 정말 강적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이 냉혈한 인간이 정말 무슨 목적으로 아비에르 백작가로 잠입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쯤 되면 정말로 제 죽음이 그의 목표인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피를 얻고 자시고 쫓아내는 게 어떨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제게 유일한 해독제였으니 어쩔 수 없기도 했다.
인어의 눈물은 해독제가 없다. 해독할 수 있는 건 황가의 피가 유일했으니까.
“아.”
“혼자 먹을…… 웁…….”
레일라는 제 입으로 들어온 티스푼에 담긴 약을 어쩔 수 없이 삼켰다.
“이거, 약이 변한 거 같은데요?”
“네. 제가 다시 처방한 거니까요.”
“아……. 근데 왜 이렇게 비려요?”
“제가 다시 처방한 거니까요.”
“그러고 보니 색도 이상한데요. 이거 왜 이렇게 새까맣죠?”
“제가 다시 처방한 거니까요.”
기계 같은 대답만 하는 레이니어 때문에 레일라는 더 침울해졌다. 이 상황에서 그가 주는 걸 거부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받아먹었다.
“아.”
어찌나 철저한지 그가 시키는 대로 입을 벌린 채 작은 티스푼으로 떠먹여 주는 약을 받아먹어야 했다.
“흘렸어요.”
“예.”
그가 손으로 그녀의 턱을 닦아 주자 레일라가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손은 더럽다면서요.”
“저는 의사니까 깨끗합니다.”
돌팔이.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자신이 그럴 위치가 아니란 걸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인이 손을 너무 떨어서 그런 거 같아요.”
“술을 마시고 와서요.”
“또요? 왜 매일 마시는 거 같죠?”
“매일 마십니다.”
레일라는 그가 아무렇게나 대답하는 그를 보고 원작을 떠올렸다.
‘폐하, 왜 이렇게 아무 말이나 해요?’
‘내가…… 긴장하면 그래.’
막상 죽이려고 생각하니 긴장이라도 한 걸까?
레일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니어를 보던 걸 멈추었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입 안으로 들어오는 티스푼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의 숨소리를 의식하고 그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스푼을 놓쳤다.
“읏……. 왜 그래요?”
“갑자기 노려봐서요.”
티스푼을 놓쳐서인지 그녀의 네글리제 위로 새까만 약이 길게 자국을 남겼다.
“노려본 거 아니에요.”
“예.”
레일라가 다시 바라보자 그는 일부러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원작보다 많이 이상해져 있다고 생각하며 옷 위에 튄 액체를 손수건으로 털어냈다.
“이제 그만 먹을래요.”
“안 됩니다.”
“배부른데.”
“조금만 더 먹으시면 됩니다.”
약은 찻잔의 바닥에 고일 만큼 남아 있었다. 찻잔을 흔드는 그에게 못 이기고 레일라는 어쩔 수 없이 또 받아먹어야 했다.
그렇게 모든 약을 다 먹이고 나서야 그가 그녀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뭐 해요?”
“턱에 묻었나 확인했습니다.”
그런 뒤 침대에서 일어나 가지고 왔던 짐을 챙기며 그녀를 흘끔 보았다.
레일라는 아까부터 경계하며 그를 보고 있었기에 그가 뭘 하든 수상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아가씨.”
“네.”
짐을 다 챙긴 레이니어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는 앞으로 이 저택에서 저만 믿으셔야 합니다.”
그의 자신있는 말에 역으로 레일라는 그게 저를 믿지 말라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네, 레인을 믿을게요.”
다만 그런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접어 웃었다.
그녀의 웃음을 본 그는 단번에 표정을 싸늘하게 바꾸며 방 밖으로 향했다.
그가 나갔다.
그러자 레일라는 먹었던 것을 게워내기 위해 가슴을 퍽퍽 쳤다.
“윽……!”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미 몸에 다 흡수된 것처럼.
“앞으로 어쩌지.”
그녀는 한숨을 쉬며 침대 위를 바라보았다.
이대로라면 소네트와의 결혼을 빌미로 집에서 나가는 수밖엔 없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옷에 남은 약의 흔적을 다시금 보았다. 분명 마실 때는 검은색이었건만, 옷에 튄 것을 한번 닦아내자 붉은 얼룩으로 변해 있었다.
“이거 진짜 더 위험해진 거 아냐?”
그녀는 손으로 가슴 위에 남은 흔적을 쓸다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