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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21)화 (21/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21화

“그래도 결혼은 레일라랑 할래.”

휴고의 뒷말에 레일라는 뒷목을 잡을 뻔했다.

하지만 휴고 역시 자신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 없었다.

시베르의 돈을 쓰고 싶었다. 그렇다고 시베르와 결혼까지 한다고 생각하니 그건 또 아니었다.

그는 제 갈팡질팡한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결혼한다면 시베르보다는 레일라와 하고 싶었다.

어쩐지 레일라가 자신을 거절한 순간부터 제 손을 잡거나 웃어주는 시베르가 전처럼 예뻐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휴고도 알고 있었다. 시베르보단 레일라와 결혼해야 자신이 더 행복할 걸. 그래서 그는 자신이 레일라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는 시베르와의 불타는 사랑이 좋았지만, 막상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보니, 레일라랑 살아야 행복할 건 분명했다.

그녀는 자신이 불구덩이 속에 있어도 자신을 믿어 줄 사람이었고, 자신이 초라해지더라도 아껴 주며 사랑을 줄 사람이었다.

제 조건이 부족하게 바뀐다고 하더라도 저라는 인간이 옆에 있어 준다면 고마워할 사람이었고.

게다가 레일라랑 결혼하면 시베르와 뒤로 몰래 만나도 봐줄 것이다.

지금껏 레일라가 그랬듯이.

“결혼을 레일라랑 하려면 레일라 지참금을 써야지. 그렇지 않나요, 여보?”

백작 부인이 황급하게 말을 이었지만, 백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선 그렇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레일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일라도 제 아버지가 저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저는 휴고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레일라. 아까 나와 둘이 있을 때는 휴고와 다시 잘해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니?”

“네? 제가요?”

레일라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백작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휴고와 결혼할 미래를 상상하자 끔찍해진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그녀가 백작은 오늘따라 죽은 제 어미와 더 닮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저는 소네트와…… 아…… 소네트, 그러니까…….”

레일라가 말을 이으려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소네트가 그녀의 말을 눈치챈 듯 입을 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다만 그의 얼굴과 귀는 몹시 붉게 변해 있었다.

백작은 한숨을 쉬며 그렇게 있었다. 그러자 그의 언짢음을 알아챈 다른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시베르조차.

“브루스 소후작이 청혼서를 가져왔다고 들었습니다, 부인.”

“아…… 네. 그런데 레일라의 마음이 변했다면 휴고와 이어주려 했어요. 그리고 소후작에겐 미안하니까 저희 시베르와 친구로 남아 주길 바라서요.”

백작은 평소라면 백작 부인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일라가 지금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는 레일라의 어머니에게 청혼할 때 자신이 주었던 것이었다.

비록 백작위가 탐이 나 그녀와 결혼했지만, 레일라가 생기고 나서는 한동안은 행복했었다.

그는 잠시 향수에 잠기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레일라, 너는 어떤 생각인지 알고 싶구나.”

레일라는 백작이 제 의견을 묻는 것에 당황했지만, 이내 감동받은 표정으로 울먹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저는 휴고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휴고는 언니의 사람이니까요.”

“……그럼 브루스 소후작과 약혼하고 싶은 거니?”

“……그게…….”

사실 레일라는 그와 약혼하고 싶지 않았다.

유유상종. 소네트 브루스가 지금 제 앞에선 착한 척 굴어도 결국은 휴고의 친구였다는 걸 떠올려 봤을 때, 그와 결혼하면 위험할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정부 때문에 자신과 결혼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적당히 약혼한 뒤 언니에게 줘 버리면 되겠지.

그러려면 휴고를 완전히 파산시키고 영지로 쫓아내야겠군.

레일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백작이 한숨을 쉬는 것에 안도했다.

“그럼 레일라는 본래 얘기 나눴던 대로 브루스 소후작과 교제하기로 하죠.”

“하지만 여보……!”

“부인, 이건 제 권한입니다.”

백작이 백작 부인에게 이런 식으로 나오면 백작 부인은 금세 움츠러들었다.

“아……. 네.”

“그리고 로날드 소백작과 시베르의 교제 기간도 길었으니, 교제가 끝났다 하더라도 시베르가 도와주는 게 좋겠습니다.”

“아……. 네.”

현 백작 부인이 백작의 마음에 든 방법은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본래 백작위를 가진 사람은 레일라의 어머니였다. 그런 그녀의 주변엔 작위를 노리는 사내가 많았다. 지금의 백작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으나 아닌 척했던 것뿐이었고.

그런 백작가에서 본래 백작위를 쥐고 있던 레일라의 어머니가 현 백작보다 힘이 약할 리도 없었다.

전 시녀이자 현 백작부인인 그녀에게 백작의 마음이 기운 것도 제 말에 순종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무언가 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아빠……!”

“시베르, 조용히 하거라.”

백작의 단호한 말에 시베르도 입을 다물었다.

“그럼 식사를 합시다. 오늘은 우릴 상단에서 양식한 송어를 올린다고 하더군요.”

“아, 그렇군요.”

“부인께서 송어를 좋아하시니까요.”

백작이 방금의 일을 잊은 듯 백작 부인에게 웃으며 말했다.

“감동이에요, 여보.”

그녀도 잊은 척하며 백작의 손 위로 제 손을 포갰다.

그렇게 전쟁 같은 저녁 식사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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