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22화
“사랑해, 레일라. 나와 정식으로 약혼해 줄래?”
그 말을 건네고 있는 소네트 브루스는 마치 장미 다발에 파묻혀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아주 큰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저번에 가져온 꽃다발보다 꽃의 양이 배는 많았고, 더 화려했다. 장미 위를 장식한 줄은 은으로 되어 있었고 마치 장미가 목적이 아니라 장미에 감긴 보석들이 선물인 것처럼 아주 화려했다.
“소네트…….”
레일라는 감동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제 입을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레일라의 차림은 더 가관이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분홍색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풀려 있었다.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이 예쁘게 정돈되어 그녀의 어깨와 등을 덮고 있었다.
오늘따라 화장도 화려했다. 머리에 나비 모양으로 된 핀까지 하고 있었다. 그것과 세트인 귀걸이까지.
거기에 예쁜 흰색 레이스로 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시선을 끌 정도로 화려한 게 잘 어울리는 레일라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고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좋아.”
그녀의 승낙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지만.
“그게 무슨 소리랍니까?”
“레인?”
“의사가 여긴 어쩐 일이죠?”
소네트는 그를 보다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리고 그를 무시한 채 반지를 상자에서 빼들며 레일라의 손을 끌어당겼다.
“읏……. 소네트.”
“미안. 지금 끼워 주고 싶어.”
“아, 응…….”
레일라의 반응에도 소네트가 조급하다는 듯 그녀의 손에 반지를 끼우려 했다. 브루스 후작가의 후작 부인이 대대로 물려받는 반지였다.
“이거 너무 크다.”
“아, 이건 약지에 끼는 거라서.”
레이니어를 노려보느라 소네트는 실수로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가 이내 빼고선 약지에 끼우려 했다.
“약혼자에게 반지도 제대로 못 끼우시는군요.”
레이니어는 그렇게 말하고는 레일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레일라는 레이니어가 무슨 저의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 수 없어서 어색하게 웃었다.
“약혼 축하 감사해요, 레인.”
“……예.”
그가 대답할 즈음엔 그녀의 약지에 소네트가 반지를 끼우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대대로 우리 가문에서 내려오는 반지야. 레일라 너와 정말 잘 어울린다. 마치 운명 같네.”
브루스 후작가의 후작 부인 반지는 꽤 예뻤다. 백금으로 된 테에는 화려한 백색 다이아몬드가 빛났고 주위에는 황색 사파이어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마치 해바라기와 닮은 브루스 후작가의 상징처럼.
“정말 기뻐, 소네트.”
“나도.”
소네트는 이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웃었다. 레일라는 그의 연기가 정말 놀랍다고 생각하며 저도 그와 똑같은 표정으로 눈꼬리를 내리고 해맑게 웃었다.
소네트가 레이니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둘만 있고 싶은데 나가 주시겠습니까?”
“저는 주치의라서요. 아가씨를 위해 남아야 합니다.”
‘키스하면 안 될까?’
‘응. 안 돼.’
‘알겠어. 그건 약혼하고 하자.’
문득 이대로 소네트와 둘이 남으면 키스할 것 같았다. 그래서 레일라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
“레, 레인이 유능해. 내가 언제 쓰러질지 모르니까 같이 있는 게 좋을 거 같아.”
“하지만 레일라…….”
“응?”
“우리가 키스할 때 누가 보는 건 싫어.”
소네트가 돌직구를 던지는 바람에 레일라는 말문이 막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그녀보다 더 놀란 레이니어는 이상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마치 웃으려고 애쓰는데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사람처럼.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소후작님, 소후작님은 지금 병자인 레일라 아가씨를 위협하는 상황입니다. 소후작님께 얼마나 많은 세균이 있는지 아십니까?”
“레인?”
“그리고 꽃이라뇨. 꽃에 있을지 모를 병균이 아가씨께 위험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시나 봅니다. 이러다 아가씨께서 감기라도 걸리거나 또 열이 나실 수도 있는데요. 그럼 며칠을 또 앓아누우실 겁니다.”
“미안해, 레일라.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나는 그저…….”
“괜찮아.”
소네트가 당황하며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레이니어가 웃는 걸 잊은 사람처럼 무표정하게 그들의 옆에 서 있었다.
“키스는 그럼 언제 해도 됩니까?”
“아가씨가 건강해지면 하시죠.”
“알겠습니다.”
소네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러면서도 레일라의 손에 끼워져 있는 후작 부인의 반지를 보며 안심한 듯 웃었다. 그리고 레이니어를 한 번 바라보았다.
소네트는 휴고에 비해 키가 컸다. 꽤 큰 키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던 소네트보다 레이니어가 약간 더 컸다. 그래서인지 소네트는 평민이라고 알고 있는 레이니어가 저를 내려다보는 게 기분이 좋지 못했다.
거기에 레이니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느껴지는 이상한 오한. 마치 맨몸으로 맹수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서늘함 같기도 했다.
“그럼 이만 돌아가시겠어요? 저희 아가씨께선 오늘 많이 무리를 한 듯합니다만.”
“미안해, 레일라. 자꾸 내 마음이 너무 앞서서 널 배려하지 못하네.”
“아니야, 소네트. 나는 정말 괜찮아. 소네트가 이렇게 와 줘서 기쁘고…… 오늘 일도 너무 기뻐.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예쁘게 웃는 그녀를 소네트가 멍하게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이 차리고 똑같이 웃었다.
“내일 봐.”
“응.”
레일라는 레이니어 덕분에 소네트를 빨리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약혼만으로도 벅찼으니까.
-우르릉, 쾅쾅!
소네트가 나갈 즈음엔 번개도 치고 비도 흠뻑 내리기 시작했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가 날 정도로 맑았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