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23화
“그게 어떤 방법인데요?”
레일라가 저를 빤히 보자 레이니어가 눈을 피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마치 저도 모르게 무언가 중요한 말을 발설하려다 멈춘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다시 냉정해진 얼굴로 돌아가 웃으며 말을 돌렸다.
“아비에르 백작가는 브루스 후작가에 뒤지지 않을 만큼 부자입니다만.”
“하지만 우리 가문은 제 건강을 위해 그렇게까지 힘쓰진 않아요. 레인도 알 텐데요.”
레이니어도 그것을 모르진 않았다. 그것은 백작이 그녀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레이니어는 차라리 그녀의 상태를 백작에게 알릴까 하다가 말았다. 백작에게 알린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가져온 붉은 표지의 발칸어 책을 흘끔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그녀가 백작에게 모든 걸 말했던 때의 결말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랬을 때 백작의 반응은 그녀의 예상과는 달랐다.
‘인어의 눈물을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이냐? 그리고 카르멘이 왜 너를 독살하려 든다는 거고.’
‘정말이에요. 저 정말 많이 아파요, 아버지! 제가 먹는 약이 이상해요……!’
하지만 백작은 그녀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고, 끝내 레일라가 사망하고 나서는 부검조차 하질 않았다.
“레인?”
레이니어는 저도 모르게 책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레일라가 놀라서 그를 불렀다.
-우르르릉!
밖에 천둥이 치더니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아, 미안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럼 아가씨께선 건강해지시면 브루스 소후작과의 관계를 재고하실 생각인가요?”
레이니어가 지그시 바라보며 물어보자 레일라는 잠시 말을 잃었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는 그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더 잘 느껴지는 게 이상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렇게 잘생겼지만, 그가 새어머니의 사람이란 걸 상기했다.
이상하게도 소네트는 휴고와 친구라는 걸 상기하면 덜 잘생겨 보였건만, 레이니어는 그런 게 소용없을 정도로 잘생겼다.
그리고 말을 돌리려는 그의 의도도 모를 수 없었다. 레이니어가 황족인 걸 밝히면 안 되기 때문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레일라는 집요하게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지금 그에게 잘 보여야 할 입장이니까.
사실 알고 있으니까 더 위험했다. 레이니어에게 잘 보여야 하면서도 소네트를 놓을 상황은 아니라서.
“아뇨.”
그래서 대답하는 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왜죠?”
그러자 그의 웃음에 균열이 이는 것 같았다.
“말했잖아요. 저는 소네트가 좋아요. 소네트도 저를 좋아하고요.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를 아껴주는 사람과 살고 싶어요.”
“그럼 아가씨가 건강한 데다가 소네트 브루스보다 아가씨를 더 아껴주는 사람이 생기면 파혼하실 건가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집요해요?
“대답해 주시면 이제 그만 물어보겠습니다.”
레이니어의 눈이 무서웠던 레일라는 그의 눈을 피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걸로 칠게요. 그런데 제가 지금껏 살면서 소네트처럼 저를 아껴 준 사람은 없었거든요.”
“그건 아직 아가씨가 사신 인생이 짧아서 그렇습니다.”
“네……. 뭐, 레인의 말이 맞아요.”
대체 어느 부분에서 긴장을 한 건지 레일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원작에서도 긴장하면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욕은 아니었고, 속에 있는 말을 필터 없이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어쩌면 새어머니가 시켰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이렇게 집요하게 물어보는 걸 수도 있었기에.
“그래도 전 소네트가 좋지만요.”
그녀는 그렇게 마지막 말을 하고는 침대에 가서 앉았다. 그러면서 그의 붉은 눈이 무서워 그가 있는 쪽을 흘끔 보았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레일라는 그의 저런 웃는 얼굴이 진짜 웃음은 아니란 걸 잘 알 것 같았다. 뭐에서 화가 난 건진 몰라도 화가 난 것 같았다.
“침대에 앉으셨으니 약을 드셔야겠네요.”
“진찰은 안 해요?”
“예.”
레일라는 가져온 약을 주전자에 담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또 그렇게 하는 수 없이 약을 먹고는 잠이 들었다.
그가 주는 약이 인어의 눈물인 것 같긴 한데, 뭐가 섞인 건지 그걸 먹으면 기운이 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