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31)화 (31/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31화

“늦었네, 레일라.”

소네트가 레일라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레일라는 자신이 가면무도회 때문에 아나시스 황태자가 지시한 대로 입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그가 아까 이 모습을 봤음에도 마치 잘못된 옷을 입고 마주하는 것 같았다.

뭣보다 그와 약혼하기로 했는데, 다른 사내가 준 옷을 입고 있었으니.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왜 여기 있어, 소네트?”

레일라는 그가 바르델 록펠 자작 영애를 데려다주지 않고 자신이 탈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아무래도 너무 의심스러웠다.

그녀가 언제 올 줄 알고 그렇게 기다렸단 말인가? 아까 그렇게 헤어진 지 세 시간은 넘게 지났건만.

아니, 어쩌면.

소네트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한 편인 아나시스 황태자에게 자신을 넘기기 위해 있는 건 아닐까?

레이니어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일까? 정말 아나시스 황태자가 저를 납치하려 했다면 이유가 뭘까?

그리고 레이니어는 왜 저를 도운 거지? 그는 왜 모든 걸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걸까.

“네가 걱정돼서.”

소네트의 말에 그녀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내 웃었다.

“어떤 게 걱정됐는데?”

“네 마음이 상했을 것 같았어.”

그 의외의 말에 레일라는 적당히 넘기려다가 이내 당황해 말을 잃었다.

“나는 널 믿어. 그리고 만약 록펠 자작 영애의 말이 맞더라도 나는 너와 계속 함께하고 싶어.”

“소네트.”

“진심이야, 레일라.”

그녀는 그의 진지한 목소리와 다정한 말을 듣자 몸이 떨렸다. 그가 정말 연기 중이라는 걸 깨달아 버렸으니까.

이 말들은 전부 그녀가 전생에 너무도 듣고 싶어 했던 말들이었다.

누구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가끔 제 편을 들어주는 이에겐 온 마음을 다 주고 말았으니까.

그때는 그러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죽고 나자 그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겨 있었다.

이전의 자신은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을 믿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소네트는 제대로 알게 된 지 1달도 안 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제게 이런 말을 한다면, 그건 진심일 리가 없었다. 그가 아무리 데뷔탕트에서 자신에게 반했더라도.

바르델 록펠의 말을 사실로 가정한다면 저는 사교계에서 난잡하게 사내들을 홀리고 아이까지 뱄다가 잃은 사람이었으니까.

레일라는 이제 이런 감언이설에 속지 않았다. 자신이 바라는 말을 해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 리 없다. 제게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이겠지.

“소네트.”

“레일라?”

그녀는 과거의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우면서도 이 상황이 분하게 느껴져서 눈시울이 젖었다.

휴고의 말은 믿을 수 없었지만, 그가 제게 바라는 게 결코 작지 않을 건 분명했다.

그녀는 세상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더라도 그녀 스스로가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으니까. 그래서 더는 그런 말에 속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동안 이용당했던 과거 때문에 억울해져 저도 모르게 난 눈물을 이용하기로 했다.

“난 정, 말 아니야. 소네트, 정말로.”

“응, 알아. 네 말이 맞아.”

그녀가 연기하며 울자 그가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손을 휘젓다가 이내 품 안의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흐윽…….”

“널 믿어, 레일라.”

그가 어느새 옆으로 와서 레일라를 토닥여 주었다. 그녀는 우느라 눈이 곱게 떠지지 않았기에, 자신을 안으려는 그에게 저항하지 않으며 그렇게 있었다.

이내 그녀는 그에게 안긴 채 울었고 그는 그런 그녀가 안쓰러운 듯 끌어안으며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우는 척하던 레일라는 어느덧 힘이 완전히 빠졌던 건지,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