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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35)화 (35/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35화

“아, 안녕하십니까! 제국의 작은 태양을 뵙습니다!”

레일라는 캐서린이 데려온 의사 때문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이 의사인가?”

“아! 네! 그렇습니다!”

아나시스도 당황하고 있었다.

올 거라고 예상한 레이니어는 안 오고, 다른 의사를 데려왔으니까.

레일라는 캐서린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눈으로 물었지만, 캐서린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

아나시스 황태자는 짜증스럽게 인상을 찌푸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면서도 이내 진정하기 위해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상대는 황제가 그렇게 아끼는 사람이었다. 어찌나 꽁꽁 숨겨 두었던지, 지금까지 죽은 줄로만 알았고.

레이니어 황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도 황제의 수상한 행동 때문에 알게 되었으니까.

하긴 바보가 아니고서야 황태자인 자신이 와 있는 상황에서 부른다고 오는 것도 말이 안 됐다.

아나시스 황태자는 어린 시절 보았던 레이니어의 치밀함과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던 그 괴물 같은 눈을 떠올렸다. 그러자 짜증났던 기분이 진정되어 가고 있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이렇게 망칠 수는 없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아비에르 백작저를 봉쇄하고 개인 사병으로 저택을 둘러싼 뒤 레이니어를 찾아내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 해도 레이니어는 또 신묘하게 도망칠 게 뻔했다.

그를 놓친 건 처음이 아니었다.

‘덫을 놓아야 해. 그 뱀 같은 놈은 교묘하게 빠져나간단다.’

제 어머니의 말처럼 덫을 놓고 걸려들게 해야 한다.

“레일라 영애가 자주 아프더군. 대체 신경을 쓰는 건지 모르겠는데.”

“주, 주의하겠습니다! 하지만 레일라 아가씨께선 어릴 적부터 워낙 몸이 약하셔서…….”

“그걸 나더러 이해하라는 건가? 주인이 아프면 낫게 하는 게 의사의 할 일 아닌가?”

“아, 예, 예! 맞습니다! 전하의 말이 맞습니다! 송구합니다!”

아나시스 황태자가 짜증을 내자 의사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아비에르 백작가가 아무리 부자더라도 살면서 황족을 볼 일은 많지 않았다. 부유하더라도 황궁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중앙 귀족이 아니기도 했고, 그렇기에 저택에서 일하던 준귀족인 의사에겐 황족은 신처럼 높은 사람들이었고.

“내일까지 낫게 해. 아니면 자네가 대신 아플 수도 있어.”

“예! 전하! 명심하겠습니다!”

의사가 벌벌 떨며 고개를 조아렸다.

레일라는 기침이 난다는 듯 연신 콜록거렸고, 그런 그녀를 보다가 한숨을 쉰 아나시스는 그대로 떠나려 했다.

레일라와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제 것에 예민한 레이니어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아나시스 황태자는 그렇게 착각하며 아비에르 저택에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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