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36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레일라가 놀라서 그대로 뒤돌아보았다. 레이니어는 그녀의 풍성한 머리카락에 고정된 채 함께 움직이는 빗 때문에 손을 놓았다. 잡고 있으면 두피가 당겨 아플 것 같아서.
“말 그대로입니다. 에클레르가 너무 거슬려서 없애려고요.”
“아, 그렇죠. 휴고가 미운 거랬죠.”
“……예.”
레일라는 휴고에게 원한이 있다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건만,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에게 제 쓸모를 더 보여 줄 수 있을 것만 같아 기뻤다.
그가 피를 주기 전까지는 쓸모를 보여야 했다.
만약에 레이니어가 제게 피를 안 준다면, 정말 내키지 않지만 아나시스 황태자에게 피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나시스 황태자는 뱀 같은 사람이라, 그녀가 제 목숨에 대해 미련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걸 목줄로 잡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에게는 기대고 싶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보험일 뿐이지.
오히려 황가로 복귀하려고 하는 레이니어가 상대적으로 피를 구하기 더 쉽기도 했고.
레일라는 그의 눈을 보며 안심했다. 저런 붉은 눈은 정말 희귀했으니까. 그녀는 그가 그 희귀한 붉은 눈을 감추지 않고 들어온 게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주인공 버프가 있으니 그는 그렇게 와도 무난히 황제가 되겠지만. 그래도 저라면 좀 더 조심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그럼 경쟁사를 만드는 게 가장 좋겠네요. 그런데 그러려면 초기 자본금도 필요할 거 같은데…….”
“그건 저희 쪽에서 하도록 하죠.”
레일라는 순간, 그가 대체 왜 제가 필요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원작에서 봤던 그는 황가로 돌아가기 전에도 굉장히 부자였고 힘이 있었다.
만약 황가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만약 황제가 죽고 아나시스 황태자가 황제가 된다면 반란이라도 일으켜 제 자리를 찾으려는 듯 보였으니까.
그런 그가 황좌와 관계도 없는 에클레르를 왜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걸까?
휴고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라면, 황가로 돌아간 뒤에 해도 늦지 않다. 거기에 에클레르에선 자신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기까지 했고.
아.
설마.
“원한이 큰 거죠?”
“예, 아주요.”
“얼마나요?”
“하늘만큼 땅만큼요.”
“와, 엄청 크네요. 그 정도면 죽이고 싶은 건가요?”
“예.”
레일라는 그가 덤덤하게 대답하는 게, 원작처럼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건가 싶어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번엔 당황한 듯 보이지도 않았고, 아주 멀쩡해 보였다.
자신이 모르는 그런 깊은 원한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그런데 제가 어떤 도움이 되나요?”
“아가씨가 방법을 모색하시죠. 그럼 저는 그 방법의 수단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청사진을 제시하면 거기에 돈을 써 주겠다, 이런 건가요?”
“예.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방법이라면 수익을 나눠 드리죠.”
레이니어의 말이 진심인가 싶어서 바라본 레일라는 이내 그가 진심이란 걸 또 다시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수익의 50%를 주기로 해요.”
“알겠습니다.”
“50%라니까요?”
“예, 그러죠.”
레일라는 그가 말도 안 되는 수치에 놀라지도 않고 흔쾌히 말하는 게 이상했다. 분명 이건 그가 손해 보는 장사였고, 자신은 그에게 어떤 것도 입증하지 않았다.
사업 수완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도, 돈을 버는 모습을 보여 주지도 않았다.
그에게 보여 준 건 휴고를 몇 번 골탕 먹인 게 전부였고, 황궁에선 그를 믿고 별궁으로 가 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왜 그렇게 보십니까?”
“너무 조건이 좋아서요.”
“사기일 것 같아서 그러십니까?”
“네.”
너무 솔직한 그처럼 그녀도 계속 솔직하게 대꾸하는 게 이상했다. 자신을 감춰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대책 없이 솔직한 모습에는 저도 모르게 반응하고 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에 웃은 건 레이니어였다.
“목숨 값이죠.”
“예?”
“말씀드렸죠. 제가 누구인지.”
“……네.”
레일라는 그가 제 머리카락에 달라붙어 있던 빗을 잡아서 빼내는 걸 보다가 이내 다시 눈이 마주쳤다.
“저와 연관되는 것만으로도 위험한데, 함께 사업까지 한다면 훨씬 위험하죠. 그러니 그만큼 위험수당을 지불하려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싫으십니까?”
“아뇨. 좋아요.”
그의 말을 듣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이런 동업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목숨이 위험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고, 제 살날이 길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이제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했다. 그렇기에 제 미래를 위해 움직이기로 했고.
그렇기에 위험할지도 모르나 훗날 저를 위한 발판이 될 이 일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녀는 더는 예전의 나약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레일라로 남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예. 머리는 다 했으니 약 드시죠.”
“아……. 예.”
그런 그녀의 결심한 눈을 보던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 말이 어디가 슬퍼서 또 우십니까.”
“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자꾸 안 울 때에도 운다고 그래요?”
그러자 그는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저는 아가씨가 울 때마다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 울지 않아도요.”
“……이상한 사람이네요, 레인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를 빤히 보았다. 그러자 시선을 피한 그가 가져온 약을 먹었다.
자신과 거래하기로 했으니 분명 제 몸에 아주 나쁘진 않을 약일 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