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38화
“……그래요. 미안해요.”
레일라는 순순히 인정하고 캐노피 천장에 달린 아비에르 백작가의 문양을 보며 힘없이 말했다.
그러자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실언입니다. 잊으세요.”
“네.”
“진짜 나쁜 사람은 접니다.”
“그래요.”
레일라는 그가 대체 왜 이렇게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걸까 싶었다. 그러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가 말은 못 되게 하는 주제에 손길은 다정한 것 같아 이상했다. 아까부터 쏘아붙이면서도 간호는 극진했다.
얼굴을 닦아 주는 수건은 따뜻하면서도 깨끗한 물내음이 났고, 그의 손길은 마치 아주 값 비싸고 잘 부서지는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섬세했다.
레일라는 그래서인지 그의 짜증인지 투정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싫진 않았다. 입에서 사과도 바로바로 나왔다. 그녀가 아팠을 때 이렇게 간호해 준 사람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레인.”
“……예.”
“아플 때 보니까 더 좋네요.”
그녀가 다 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그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제가 원래 아플 때 보면 더 좋습니다. 더 선명해 보이죠.”
“하하.”
그녀는 그의 장난 같은 말에 픽 웃었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다시 물동이에 빤 수건으로 그녀의 손을 닦아 주려 했다.
레일라는 제 손을 닦아 주는 그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정말로 처음이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사귀었던 남자들도, 그리고 저를 보필한다던 시녀나 하녀들도. 누구도 그녀가 아플 때 이렇게까지 해 준 적이 없었다.
일평생을 아팠건만, 제대로 간호 받은 일은 없었다. 그녀를 유일하게 챙겨 줬을 친어머니가 살아 있을 땐 그녀가 건강해서 병간호 받을 일이 없었으니까.
레일라는 그에게 왠지 모를 고마움을 느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보지 말까요?”
그러면서도 저도 모르게 그의 질문에 저렇게 받아쳐 버렸다. 그러자 그가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레일라는 저를 보는 레이니어의 눈빛에서 묘한 감정을 읽으며 웃었다. 그는 어쩌면 저를 보며 안타깝게 여기는 것 같기도 해서.
레일라는 자신을 안타깝게 여기는 시선도 오랜만이었다. 레일라의 이전 남자들은 그녀를 경멸했고, 시베르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아픈 그녀를 웃음거리로 만들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아픈 게 약점이 아니란 점이 너무 이상했다.
그녀에게 아픔이란 약점이나 벗어날 수 없는 족쇄였으니까.
레일라가 그렇게까지 살고 싶었던 것은 복수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살면서 행복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그녀는 행복해지고 싶었다. 누구도 저를 비웃지 않고, 누구도 저를 손가락질하지 않는 곳에서.
“울지 마시죠.”
“네.”
그녀가 부정하지 않으며 웃었다. 그러나 열기 때문에 시려서인지 그녀의 눈에서 눈물도 흘러내렸다.
“레인은 왜, 제게 매번 그렇, 게 말해요?”
목이 쉬어서 쇳소리가 날 때마다 목소리가 갈라져 멈추었다.
“저는 아가씨가 울면 다 안다고 했죠. 겉으로 울든 속으로 울든.”
“푸흐…….”
레일라가 그의 말에 위로를 받으며 웃었다.
“고마워요.”
그렇게 그녀는 기운이 다 빠져서 기절해 버렸다.
그러자 그런 그녀를 보던 레이니어의 표정이 슬프게 바뀌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