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39화
“조금만 떨어지시죠.”
“아, 미안해요.”
레일라는 저도 모르게 레이니어와 너무 가깝게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조금 엉덩이를 뒤로 떼며 앉았다. 침대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녀가 멀어지자 레이니어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떨어지라더니 막상 떨어지니 표정이 더 나빠지다니. 그녀는 자신이 혹시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 고민하다가 말을 하던 중이란 걸 떠올리며 마저 이었다.
“보석도 그렇잖아요? 처음 나왔을 때는 비싸지만 시간이 지나면 보석도 빛바래고 가치도 떨어지잖아요.”
어쩌면 말을 하다 만 게 싫은 건 아닐까 해서.
“보통은 그렇죠.”
“그런데 사연이 있는 보석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비싸져요.”
레일라의 말에 레이니어는 이해했으면서도 멍하니 그녀를 보고 있었다.
레일라는 어째 그가 들고 있던 찻잔을 받아야 하는 것 같아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그녀의 손을 보다가 말했다.
“아직 뜨겁습니다. 입천장이 다 델 테니까요.”
레일라는 그가 제게 말은 삐딱하게 하더라도 행동은 다정하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제 생각이 어때요?”
“아주 좋네요.”
레일라는 모처럼 칭찬을 들어서 그런지 기분이 몹시 좋았다.
“비슷한 물품을 구하는 거라면 금방 합니다.”
“얼마나요?”
“일주일이요.”
“세상에나.”
“장소는 이틀이면 됩니다. 안 그래도 광장 근처에 목이 좋은 곳으로 가게를 하나 사뒀거든요.”
“정말요?”
레일라는 타이밍이 너무 좋아서 그가 장난하는 건 아닐까 하고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티스푼으로 찻잔 안에 약을 저어 온도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네, 정말요. 원래는 다른 용도로 쓰려고 했는데, 안 써도 될 것 같아서요.”
“원래는 어떤 용도였나요?”
그 순간 레일라의 머릿속으로 어떤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광장에 제 가게가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어떤?’
‘꽃집이요.’
“꽃집이요.”
그녀는 방금 들린 목소리와 그의 목소리가 묘하게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꽃집을 말한 목소리는 여자였지만.
혹시 이거.
“아…….”
그 동안 먹어 온 약에 뭘 탄 건가? 그래서 환청이 들린 건가?
그녀는 그렇게 의심의 눈초리로 그가 들고 있던 약을 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며 잘못 들은 거라 치부했다.
“잠시만 쓰고 꽃집으로 써요. 어차피 에클레르가 망하면 거길 싸게 인수해 버리면 되잖아요.”
“그렇죠.”
레일라의 말에 레이니어가 고개를 끄덕였고, 레일라는 그의 그런 태도에 픽 웃었다.
그녀는 원작을 봐서 그가 얼마나 엄청난 부자인지 알고 있었다. 제게 가게 하나 둘 차려주는 건 그에게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황제가 미는 황자.
황가의 부가 모두 그에게 있었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악수는 이걸 드신 다음에 하죠.”
“아, 네.”
그녀는 그가 건네는 약을 받았다. 그리고 숨을 참고는 그것을 들이켰다. 먹기 좋을 정도로 따스해진 약은 의외로 숨을 참으니 쉽게 넘어갔다.
다만 숨을 참아도 느껴지는 비릿함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하.”
다 먹고 나서는 바로 왼손으로 옮기며 오른손을 그에게 뻗었다.
“잘 부탁해요, 레인.”
“예, 저야말로요. 일단 그럼 가게와 물품을 조달한 뒤 의논을 마저 해 보죠.”
“네, 좋아요.”
레일라가 웃으며 화답하자, 그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어떤 소식이요?”
“모릅니다. 그냥 좋은 소식이요.”
그녀는 레이니어의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제게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 그러는 것 같기도 해서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그가 절대 시베르와 엮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조심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평민으로 위장할 때엔 그가 아무리 시베르에게 달려들어도 시베르는 눈 깜짝하지 않을 사람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