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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42)화 (42/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42화

“아가씨는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키스하는 게 아무렇지 않습니까?”

레일라는 레이니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가 말하는 게 지금 이 상황인지, 아니면 소네트와의 일인지 모르겠어서.

그러다가 이내 소네트와의 일이라고 생각하자 말하기가 이상하게 꺼려졌다. 그의 눈이 너무 진지해서, 거짓말을 하면 들킬 것 같았으니까.

“레인은 어떤데요?”

“저는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키스가요?”

“아뇨. 사랑하지 않는 사이에서 몸으로 교감하는 게요.”

레일라는 마치 그가 제게 소네트에 대한 마음을 접으라는 듯 말하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레인은 첫 키스가 누구였어요?”

“…….”

그는 대답하지 않으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레일라는 이전과 다르게 그가 익숙한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는 운명을 믿어요, 레인.”

그녀는 마치 소네트와 자신이 운명인 것처럼 포장하며 그렇게 말했다.

“저도 믿습니다. 운명은 개척하는 거거든요.”

그런 그녀의 말을 막아 버리는 레이니어의 말까지.

레일라는 술기운에 모든 게 몽롱했다. 말할 때마다 입술이 조금씩 스쳤건만,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렇지 못한 것은 레이니어 같기도 했다.

“그렇군요.”

레일라는 답답해져서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이미 침대에 누워 있어서 더는 뺄 수 없었다. 코끝이 스치는 간격, 그리고 그녀의 솜털이 그의 숨결에 닿아 간지러웠다. 그래서인지 술이 조금 깨는 것 같기도 했다.

“제가 소네트랑 키스하는 걸 왜 방해했어요?”

“아가씨께선 우셨으면서도 그 키스가 아쉬우셨나 봅니다.”

그녀는 뭐라고 더 말을 이을까 했지만, 정작 우는 건 그인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눈은 젖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그가 우는 것 같았다.

“울지 말아요, 레인.”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에 그녀는 제 감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제가 안 울려면 아가씨께서 좀 더 조신해지시면 됩니다.”

“저는 꽤 조신한데요. 조신하게 소네트랑 결혼할 거고요.”

“조신한 분이 약혼식도 올리기 전에 키스합니까?”

“제 주위에는 문란한 사람만 있어서요.”

그녀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그가 생기가 돌아온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숙였던 고개를 들려 했다. 레일라는 그가 떨어질 수 있게 목에 감았던 팔을 풀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손을 잡은 뒤 그대로 깍지 껴 내리누르며 말했다.

“첫 키스를 주고 싶을 만큼 그 분이 좋으십니까?”

“소네트요?”

“예.”

그녀는 그가 저를 위협적으로 내리누르고 있었음에도 전혀 위협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그가 대체 왜 이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원작에서 그가 시베르를 사랑하게 되는 건 한참 후였다. 심지어 그 원작이 바뀌었으니, 바뀔 확률도 높았고.

뭣보다 지금의 시베르는 평민 출신이라 생각하는 레이니어를 거의 경멸하다시피 했고.

“그렇다면 어쩔 거죠?”

오히려 그녀는 이 상황의 주도권이 제게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제게 마치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렇군요.”

그는 그녀의 말에 곧장 손을 놓더니 몸을 일으켰다.

“레인.”

“예.”

그가 그대로 나가려고 하자 레일라가 그를 불렀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잘 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시베르의 침대에 똑바로 누웠다. 그런 뒤 시트를 목 끝까지 올리며 눈을 감았다.

“……예. 아가씨도요.”

그녀는 그의 시무룩한 목소리가 취기 때문에 더 몽롱하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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