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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43)화 (43/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43화

휴고는 비가 오는 게 짜증스럽다는 듯 제 얼굴을 벅벅 닦았다. 그러면서 앞을 다시 보았다.

그런데 해적선의 키를 잡고 있던, 그 재수 없게 잘생긴 의사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잘못 본 건가?”

“소백작님! 지금 그러실 때가 아닙니다! 무장하고 전투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휴고는 정신을 가다듬고는 가까워지는 해적선을 보았다. 저 멀리서 보일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큰 줄 몰랐다.

휴고가 탄 무역선 옆에는 두 대의 호위를 위한 해군선도 있었다. 그러나 세 대의 배를 전부 합쳐도 해적선과 비할 순 없을 것만 같았다. 거기에 해적선은 전방위로 대포까지 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휴고는 기함했다. 해적이 어떻게 해군보다 더 신식 함대를 몰고 다닐 수 있단 말인가.

“도망쳐! 전투는 피한다!”

휴고의 말에 그들은 최대한 간격을 벌리려 했다. 배가 작을수록 속력이 빠른 법이었다. 세 척의 배는 후퇴 명령을 받자마자 빠르게 도망치듯 우회전하기 시작했다.

“뭐야?”

그러나 해적선은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추격해 오고 있었다.

“전투태세로 전환해야 합니다! 소백작님!”

“대체 저게 뭐냐고!”

휴고가 소리칠 즈음, 해군선과 무역선의 선원들은 이미 전투 태세로 돌아서고 있었다.

그 순간.

-콰쾅! 우르르릉! 쾅!

번개가 미칠 듯이 치기 시작했다.

“쇠, 쇠붙이를 버려!”

선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외쳤다. 이런 상황에 총을 들면 벼락을 맞을 터였다.

-콰쾅!

함선에 달려 있던 대포에 번개가 떨어졌다.

-쿵! 쿠쿵! 쿠쿵쿵!

여기에 더해 해적선이 근처로 와 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악! 조심해!”

이상했다. 번개가 계속 치는데 해적선에는 어떤 피해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해군선 두 척만 엉망이 될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비규환의 30분이 지날 즈음.

-철컥.

“전원 구명선으로 이동해. 그러면 목숨은 살려 주지.”

해적단의 두목인 듯 보이는 사람이 휴고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사, 살려 주세요!”

휴고가 겁에 질려 해적 두목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제 눈에 비치는, 새빨간 눈을 가진 사내를 보자 얼굴이 굳어졌다.

“의, 의사?”

“내가 의사로 보여?”

그러나 이상하게도 레이니어라고 하기엔 사내의 머리는 하얀색이었다.

그렇지만 목소리는 레이니어였고.

“헛소리 계속할 건가, 죽을 건가. 선택해.”

휴고는 확신했다.

그 의사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그 위압감, 마치 사냥당하는 초식 동물이 된 듯하던 그 두려움이 지금 느껴지고 있다는 걸.

머리색이 좀 다를지언정 저 자는 분명 레이니어였다.

“허으윽…….”

그래도 휴고는 목숨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이미 그의 부하들도 해적들에게 포위되어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전원 머리에 총구가 들이밀어진 상태였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구명선으로 가야 했다.

그렇게 해군을 포함해 무역선 내부의 모든 선원들이 구명선으로 이동했기에, 사상자는 한 명도 없었다.

신묘하게도 해적선이 사라지자 날씨도 맑게 바뀌었고.

이내 구조선까지 도착하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렇게 휴고는 모든 물품을 빼앗긴 채 수도로 돌아가야 했다.

시베르의 지참금까지 쏟아부은 물품들이었건만.

해적들에게 전부 빼앗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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