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45화
레일라는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처음엔 적당히 기다렸다가 문을 열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소네트와 시베르가 일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게다가 시베르의 방이 몹시 불편하기도 했고, 레이니어의 풀죽은 모습을 보는 것도 껄끄러웠다. 그래서 먼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런.”
그녀는 제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작게 웃고 있는 사람이 레이니어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레일라가 저도 똑같이 웃으려는 걸 애써 참으며 참담한 표정으로 소네트를 바라보았다.
오히려 소네트야말로 이 거지 같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레일라를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레일라의 상처받은 표정을 본 그가 무언가 말을 이으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왜 함부로 방문을 열었어?”
“어……?”
레일라야말로 갑자기 끼어든 시베르의 말에 당황했다.
“여긴 내 방인데.”
“레일라 너는 그럼 어디에 있다가 온 거야?”
시베르는 소네트가 자신을 안고선 잠꼬대를 할 때도 깨어 있었다. 방문만 열리지 않았더라면, 그를 드디어 제 손안에 넣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던 중이었다.
“나는 언니 방에 있다가 왔어.”
“왜? 나랑 소네트만 두고?”
“아가씨께선 새벽에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검진을 위해 잠시 다른 곳에 모신 거죠.”
“제 방에서 둘이서만 검진했나요?”
“아뇨. 시녀 캐서린도 함께 있었습니다.”
레이니어가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레일라는 그가 돌팔이면서도 의사 행세를 할 수 있는 건 거짓말도 잘하기 때문이라고 다시금 실감하고 있었다.
“레일라, 정말 저 의사랑 단둘이 있던 게 아니야?”
소네트도 레일라에게 묻고 있었다. 그는 레이니어가 그녀와 가깝게 지내는 게 너무 싫었다. 거기에 술기운까지 남아서인지 사리분별이 쉽지 않은 상태였다.
“소네트, 지금 그게 중요해?”
“어, 난 중요해. 우리가 결혼하면 정부는 안 된다고 했던 약속을 기억해야지.”
그녀는 순간 그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러는 건가 싶었다.
“소네트, 너는 내가 없는 데서 언니와 안고 잠들어 있었으면서도 그런 게 맘에 걸리나 보구나. 나는 새벽에 아파서 레인에게 검진을 받았던 것뿐인데.”
“그럼 왜 굳이 시베르 영애의 방으로 간 거야?”
레일라도 그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레이니어를 바라보았다.
“그럼 주정뱅이가 둘이나 있는데 옆에서 진료를 할까요.”
레이니어가 비아냥거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소네트는 술기운 때문인지 격해져 있었다. 그러나 레이니어의 눈을 보자 또 알 수 없는 공포심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인간이 아닌 무언가, 그 상위의 포식자가 제 목을 노리는 것 같은 서늘함이 느껴져서.
전쟁터에 나갔을 때도 이런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두려움이 너무도 생소했다.
“당신, 대체 뭐야?”
소네트가 그렇게 말하며, 두려움을 이겨 내고 레일라의 팔을 잡아끌었다.
“의사입니다, 브루스 소후작님.”
레이니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소네트를 바라보았다. 레일라는 그가 또 거짓으로 웃는 걸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놔, 소네트. 그리고 이제 가 줄래?”
“레일라……. 오해야.”
“난 지금 너무 지쳤어. 다음에 이야기해.”
“순서가 잘못됐어. 미안해. 내가…… 왜 그랬을까.”
소네트가 당황한 표정으로 레일라의 손을 세게 쥐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아주 세게 쥔 감각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아파.”
“미안!”
그녀의 말에 소네트가 겨우 손에 준 힘을 풀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소네트가 쥐었다 놓은 새빨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가뜩이나 상처도 잘 안 낫는데, 이제는 손목에도 멍 자국이 생기시겠군요.”
레이니어가 짜증스럽게 말하고는 소네트의 앞에 있던 레일라를 제 등 뒤로 숨겼다.
“어머, 레일라. 의사가 너를 참 많이 아낀다.”
시베르가 비웃듯 말하고는 웃으며 몸가짐을 가다듬었다. 그러더니 흘끔, 소네트의 참담한 표정을 확인하고는 희희낙락하게 걸음을 옮겨 제 방으로 가 버렸다.
“소네트 너도 가.”
“미안해. 사과를 받아 주면 좋겠어.”
“나중에.”
레일라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소네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주 한참 만에 브루스 후작저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