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48)화 (48/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48화

“뭐 하십니까?”

소네트는 레일라의 뒤에서 들리는 레이니어의 목소리에 더 그녀를 세게 안았다. 레일라는 소네트를 토닥이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의사는 왜 온 거지?”

“저야 레일라 아가씨가 갑자기 쓰러지면 안 되니까 온 거죠. 그리고 그렇게 세게 안으시면 안 될 텐데요.”

레이니어가 어느새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레일라는 저를 자연스럽게 떼어내어 제 등 뒤로 숨기는 레이니어 때문에 놀랐다.

“뭐 하는 겁니까.”

소네트가 화가 난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보았고, 레일라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입만 뻐끔거렸다.

“아가씨가 몸이 약한 걸 아실 텐데요. 아무리 오랜만에 본 게 기쁘더라도 그렇게 세게 안지 마시죠. 그리고 그렇게 오랜만도 아니시잖습니까.”

“미안, 레일라. 나는 그저 너무 기뻐서…….”

“기뻐도 정도껏 하시죠. 그러다가 큰일 나면 소후작께서 책임지실 겁니까?”

“그게 무슨……!”

소네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레일라를 보자, 레일라가 한숨을 쉬며 레이니어의 손을 놓았다. 그는 생각보다 쉽게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다만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건 레이니어의 표정이었다.

“어쩜 매번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브루스 소후작께서는 아가씨보다 자기 감정이 훨씬 우선이신 분이신가 봅니다. 환멸스럽군요.”

레이니어의 말에 당황한 소네트가 레일라를 바라보았다. 레일라는 어쩌면 자신이 소네트에게 계속 느끼던 알 수 없는 의심이 이런 점에서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녀는 제 본분을 잊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어머, 레일라! 이게 다 뭐니?”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 시베르가 난간을 꼭 잡은 채 내려오고 있었다.

“시베르 영애?”

“레일라가 약혼식 드레스를 고른다고 들어서. 나도 함께 골라 주려고 내려왔어!”

시베르가 내려오는 바람에 어색한 분위기가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왜 내려오신 겁니까.”

소네트가 마치 방해꾼이 는 것처럼 말했으나, 시베르는 듣지 못한 척 레일라의 옆으로 와서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 레일라는 내 안목을 더 믿어. 그러니까 지난번에 아나시스 황태자 전하께 부탁해서 나랑 똑. 같. 은. 드레스를 입으려 한 거 아니겠어?”

“그 일은 아니었던 걸로 결론 났던 거 아닙니까?”

레이니어가 그녀를 비웃듯 말했다.

“그, 그랬던가요? 저는 아닌 걸로 아는데.”

시베르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레이니어가 평민인 걸 알면서도 그녀는 어쩐지 그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건장한 키, 낮은 목소리, 커다란 몸, 그리고 눈을 마주칠 때마다 생존 본능처럼 느껴지는 공포 때문에.

“의사는 필요하면 부를 테니, 물러가 있어요. 레인.”

“예, 그러죠.”

시베르는 안주인처럼 말하면서도 레이니어를 보자마자 몸을 떨었다. 그런 그녀를 한심하다는 듯 보던 레이니어는 그대로 자리에서 떠났다. 레일라는 가면서 뒤도 한번 안 돌아보는 그를 보며, 기분이 많이 상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레이니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사용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레일라의 주위를 드레스로 에워쌌다.

“아무래도 저 의사가 네게 호감이 있나 봐, 레일라.”

옆에서 시베르가 조롱하듯 말하자 소네트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군. 레일라, 저 의사는 멀리하는 게 어때?”

지금 레이니어에게 관심을 보이면 시베르의 목표가 소네트가 아니라 레이니어가 될 것이다. 그걸 알았기에 레일라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레인은 유능해. 그리고 우리가 그런 오해를 받을 일은 한 적이 없을 텐데.”

“널 의심하는 게 아니야. 저 의사가 이상하다는 거지.”

소네트가 진심인 듯 그렇게 말했다.

“그래 봤자 평민이잖아.”

“준귀족도 아니랍니까?”

시베르의 말에 소네트가 더 깊이 인상을 찌푸리며 경멸하듯 숨을 내쉬었다.

“근본도 모를 사람이었군요.”

시베르는 그 말에 인상이 구겨졌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 금세 표정을 되찾고는 소네트의 옆으로 왔다.

“저렇게 못 배웠으니 감히 저러는 거지. 실력만 믿고 까부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할 텐데 말이야.”

“……소네트? 왜 이렇게 화가 났어?”

“……미안. 그래도 우리가 결혼하면 저 의사는 자르도록 하자. 아니면 아비에르 백작저에만 두는 게 좋겠어.”

레일라는 어쩐지 이 상황이 불편했다. 레이니어가 가자마자 입을 여는 두 하이에나가 우습기도 했고.

고작 평민이라고 알면서도 막상 레이니어가 근처에 있으면 이런 말은 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레이니어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두려워했으며, 말을 가렸으니까.

그런 그들이 우스웠던 레일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의사가 유능하면 됐지, 뭘 바라.”

그런 뒤 아주 많이 걸려 있는 푸른 드레스들을 눈으로 훑으며 다가갔다.

그 순간, 소네트가 레일라의 팔을 잡았다.

“레일라.”

“읏…… 아파.”

레일라는 제 팔을 세게 잡은 소네트 때문에 몸이 저절로 돌아갔다. 그러자 그가 그녀를 빤히 보며 물었다.

“혹시 저 의사에게 마음이 생긴 건 아니야? 왜 편을 들어주는 거야?”

“약혼은 너랑 하기로 했어. 우린 결혼할 거고. 그런데 내가 왜 레인한테 그런 감정이 생겨?”

레일라는 시베르가 이 상황을 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는 소네트를 보았다. 소네트는 혼란스러운 듯 시선을 아래로 내리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미안해. 내가 널…… 너무 오랫동안 좋아해서 그래. 자꾸 내가 너에게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그러지 마.”

레일라는 그가 잡은 손이 너무 아파서 쓴웃음을 지으며 당겼다. 그러자 그가 그제야 정신이 든 사람처럼 그녀의 팔을 놓아주었다.

“소네트, 나는 너처럼 결혼하고 싶었던 남자는 없었어.”

그녀는 입에 침을 바르며 거짓말을 했다.

“레일라…….”

그러자 소네트가 활짝 웃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레일라는 그가 정말 연기를 잘하면서도 못 한다고 생각했다. 아까 분명 레이니어에게 그런 핀잔을 들었음에도 저를 또 얼마나 세게 안는 건지.

그녀는 이러다가 흉곽이 터질 것 같다고 생각했고, 한참 후에야 그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렇게 드레스들을 고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까 이 드레스들은 전부 디자인을 위해 가져온 건가요?”

“네, 맞습니다. 아가씨께서 기본적인 디자인을 고르신다면 그 위에 아가씨의 의견을 참조해서 맞춤 제작을 할 예정입니다.”

레일라는 디자이너의 말에 흥미를 보이는 척하고 있었다.

“저는 반짝거리는 게 좋아요.”

“그럼 이런 디자인은 어떻습니까? 보라색과 푸른색이 섞인 드레스입니다.”

“어머.”

디자이너가 보여 준 드레스는 색이 꽤 오묘했다. 푸른색과 보라색이 섞여 있었는데, 마치 크리스털을 가루로 만들어 뿌린 것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거 좋네요. 색감은 이런 걸로 해 주세요.”

“디자인은 어떤 게 좋으십니까?”

“디자인은 이걸로요.”

레일라는 목이 드러나, 쇄골의 모양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골랐다.

“난 이게 좋을 것 같아. 레일라 너는 몸이…… 굴곡지니까.”

소네트가 귀를 붉히며 몸매가 드러나는 디자인을 골랐다. 그러자 시베르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레일라가 좀 뚱뚱해서 팔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으면 너무 부해 보일 거야.”

“어머, 아니에요. 레일라 아가씨께선 몸매가 굴곡진 데도 팔다리는 얇으셔서 오히려 돋보이실 겁니다.”

디자이너가 딱 잘라 말하자 시베르가 헛기침을 했다.

“그럼, 이게 최대한 비슷하니 입어 보시겠어요?”

레일라는 디자이너가 준 드레스를 하녀에게 맡긴 뒤 시착을 위해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레일라가 시착용 드레스를 완벽하게 갖춰 입고선 밖으로 나오자.

“……레일라.”

소네트가 놀란 듯 눈을 뜨고, 시베르는 짜증스럽게 표정을 구겼다.

“나, 나도 드레스 맞출래.”

“언니?”

“이봐, 거기.”

“예, 시베르 아가씨.”

“나도 저걸로 입어 볼래.”

그러고 시베르도 레일라의 것과 비슷한 색감의 드레스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네트는 그런 대화가 들리지도 않는 듯 레일라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너무 예뻐, 레일라.”

“고마워.”

“장식은 나비 장식으로 할게. 여기 귀걸이도.”

“응, 그래.”

레일라는 그가 이전부터 자신이 데뷔탕트 때 했던 장신구에 집착하는 게, 어쩌면 그때 말고는 그녀에 대해 기억하는 게 없어서 같기도 했다.

“드레스가 급하니 내일까지 최대한 초기 단계를 마쳐서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디자이너가 인사했다.

“소네트도 가.”

“왜? 나는 좀 더 이 드레스 입고 있는 너를 보고 있을래.”

“내가 너무 피곤해서.”

소네트는 약혼식 드레스를 같이 맞췄다는 게 기뻤던 건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오면 연습, 해도 될까?”

그가 귓가에 그렇게 속삭이자, 레일라는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웃기만 했다.

“그거 약속해 주면 갈게.”

약속을 안 해 주면 안 갈 것 같기도 해서.

“그래. 내일 봐, 소네트.”

레일라는 그렇게 소네트를 보내 버렸다. 시베르는 소네트가 돌아가자마자 배웅을 빌미로 함께 마차를 타고 갔고.

레일라는 방 안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바늘을 들어 제 검지를 찔렀다.

“아……. 아파.”

그러자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찔끔 고였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뜨자.

“뭡니까.”

샤워 중이던 레이니어가 그녀의 앞으로 나타났다. 수건만 걸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