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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49)화 (49/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49화

“꺄아아악!”

레일라가 황급하게 손으로 눈을 가리며 몸을 돌렸다.

“이런.”

오히려 레이니어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고.

“아니, 왜 벌써 씨, 씻어요!”

심지어 레일라가 당황해서 소리치자 웃기까지 했다. 그녀는 그의 숨소리가 웃고 있었기에 더 당황했다.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르시나 보군요. 저는 아가씨께서 저를 잊고 즐겁게 드레스를 고르시는 걸 기다리다 지쳐서 샤워하는 중이었습니다.”

제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레이니어 때문에 레일라는 이제 생각하는 게 힘들 지경이었다.

“아, 이젠 정말 큰일 났군요.”

“뭐, 뭐, 뭐가요? 뭐가요?”

레일라는 그가 다가오자 달아나는 것도 잊고 몸을 웅크리며 바닥으로 앉았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마치 몸을 둥글게 만 토끼 같아서 레이니어는 웃음이 나왔다.

“조신하게 다른 사람에게 몸도 안 보이고 정조를 지켰건만, 아가씨께서 다 보셨네요.”

“아니, 이건……!”

“이제 아가씨가 저를 책임지셔야 하지 않을까요.”

“실수에요! 미안해요……! 씻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레이니어는 레일라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며 숨죽여 웃고 있었다. 그의 웃음소리에 레일라가 얼굴이 타 버릴 듯 뜨거운 걸 참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렇군요. 실수라고 하면 모든 게 다 끝이 나는군요. 저는 아가씨께 알몸을 보였는데요.”

레일라는 그가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오히려 더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는 살면서 사내의 알몸은 본적이 없었다.

“허, 허리에 수건 둘렀잖아요!”

“아 이것까지 풀어야 아가씨께서 모든 걸 보시는 거군요. 그럼 풀어야……. 읍.”

“꺄악!”

레일라가 벌떡 일어나서 레이니어의 손을 잡았다. 그가 정말로 수건을 풀어 버릴 것 같아서.

“아가씨께선 정말 나쁘시군요. 덜 보셔서 책임을 안 지고 싶으신 건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 마저 다 보여드려야겠군요.”

“아니, 그게 왜 그렇게 돼요!”

“저는 이미 아가씨께 모든 걸 보였기 때문에 아가씨께서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제겐 다른 선택지가 없을 테니까요.”

“아니, 무슨 소리예요! 그럼 웃통을 벗고 다니는 기사들은 뭔데요!”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죠. 저는 제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몸을 보인 사람이 저를 책임지게 할 생각입니다.”

레일라는 그가 술에 취한 건가 싶었으나, 그는 아주 멀쩡했다. 게다가 웃는 모습도 가짜 같지가 않았다.

“사고였어요……!”

“사고였으니 더 책임져야죠.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벌어진 일에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게 어른인 거예요.”

“아니……. 아…….”

레일라는 머리가 너무 뜨거워서 생각하는 게 힘들었다.

“미안해요. 그런데 정말로 씻는 중인 건 몰랐어요.”

그는 그녀의 눈가가 당황함과 부끄러움으로 젖어 있는 걸 보며 계속 웃고 있었다.

“그리고 저는 결혼할 사람도 있고…… 책임을 질 수가 없는데…….”

그녀의 말에 레이니어는 조금 시무룩해지며 말했다.

“약혼을 고집하는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됩니까? 아가씨께선 이미 파혼도 여러 번 하셨잖습니까.”

레일라는 방금까지 장난스럽게 웃던 그가 이내 심각해지자 그를 보았다. 그러자 또 그가 반사적으로 웃었는데, 웃는 얼굴이 웃는 것 같지가 않았다.

“제가 소네트를 사랑해요.”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한단 말인가요?”

“……네. 제가 좀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라서요.”

“그럼 다른 사람으로도 쉽게 옮겨가지 않겠습니까?”

“이번엔 달라요.”

“지금껏 다르지 않으셨을 텐데요.”

“이번엔 달라요. 확실해요.”

다른 건 맞았다. 소네트와 시베르만 처리하면, 그녀는 이제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군요.”

순간 그의 머리카락에서 물이 후둑 떨어져서 그의 눈을 적셨다. 레일라는 묘하게 그가 우는 것처럼 보여서 순간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좋아해요?”

“……아뇨. 지난번에도 아니라고 했을 텐데요.”

“저 좋아하지 말아요.”

“제 감정에 멋대로 명령하지 마시죠.”

두 번째로 흘러내린 눈물은 머리에서 떨어진 물이 아닌 것 같았다.

“제가 누굴 좋아하고 말고는 제 소관입니다.”

“저도 그래요, 레인.”

그녀의 말에 그는 말이 없어졌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침울해지자, 레일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옷이나 좀 입을까요?”

“뭐 때문에 부르셨는지 말해 주시죠.”

그가 눈가의 물기를 손등으로 훔쳐내며 말했다. 레일라는 그가 정말 우는 건가 싶어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다시 표정을 숨기며 웃었다.

“키스하려고 불렀어요.”

“……예?”

순간적으로 그의 웃는 얼굴이 사라졌다. 정말로 놀란 듯.

“혹시 저에 대한 마음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니고요. 소네트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제 첫 키스를 가져가고 싶다면서요.”

“아, 네. 그렇죠. 참.”

그는 김이 샌 듯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갔다.

“시험해 볼 게 어딨어요? 자기 감정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있더군요.”

“누구 이야기죠?”

“제 이야기입니다. 아주 예전에요.”

그녀는 그가 아무 말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가 눈을 보며 말할 때는 지어낸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모습으로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네, 맞아요.”

레일라는 레이니어가 정말로 소네트에게 그런 식으로 복수하고 싶다면 지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 소네트가 연습하겠다며 쫓아올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키스는 그리 대수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지.

그녀는 레이니어와 휴고도 처리해야 했고, 아나시스 황태자도 떼어내야 했다. 거기에 그가 자발적으로 주는 피까지 필요했고.

그래서 그를 부른 것이었다. 완벽한 동업을 하기 위한 다짐을 하며.

“제가 지금 하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는 내일 소네트와 키스할지도 몰라요.”

그녀의 말에 그는 다시금 제 눈을 닦아냈다. 레일라는 그가 정말 운 건가 싶어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다시 가면을 쓰듯 웃기 시작했다.

“하죠, 그럼.”

“아…….”

레일라는 그가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을 침대로 데려가 눕히자 조금 당황했다. 이내 그의 머리카락을 적시던 물방울이 그녀의 목으로 뚝뚝 떨어졌다. 대체 체온이 얼마나 높은 건지, 그에게서 떨어지는 물마저 따스했다.

레일라는 그가 닿을 듯 가깝게 다가오자 눈을 지그시 떴다.

“하면 못 돌이킵니다. 그래도 정말 하길 바랍니까?”

“해요. 어차피 소네트와도 하게 될 테니까요.”

그녀의 말에 레이니어는 가까이 다가오다가 멈추었다.

“왜 안 해요?”

레일라가 물어보자 그가 시무룩해진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떤 고민이요?”

“저는 감정 없는 몸의 교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키스한다면 아가씨께서 제게 감정을 가지실지 궁금해서요.”

그녀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안 생겨요.”

그러고는 그의 목을 끌어당기며 입을 맞추었다. 그의 벌려진 입술 틈으로 이내 그녀의 숨결을 앗아갈 무법자 같은 혀가 레일라의 입 안을 휘저었다.

레일라는 키스를 어떻게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겪으니 너무 힘들었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움직임과 몸을 내리누르는 무게, 그리고 처음 느껴 보는 열기에 놀라 몸을 떨었다.

이내 버거워져 움직임이 둔해지자, 그가 더 그녀를 몰아붙이듯 깊이 추격해 왔다.

키스가 끝날 즈음엔 레일라는 제 턱이 빠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뻐근했다.

거기에 그의 머리 끝에 달려 있던 물기는 어딜 간 건지, 완전히 말라 있었고.

“하아…….”

레일라가 숨을 내쉬자 레이니어가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바라는 게 뭡니까.”

“저는 레인의 피를 받고 싶어요.”

그녀의 말에 그가 픽 웃더니 귓가로 속삭였다.

“어려울 건 없군요.”

그녀는 그의 말에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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