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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50)화 (50/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50화

“이곳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살롱이랍니다, 바이마르 공녀님.”

레일라가 그렇게 인사하자 바이마르 공녀가 레일라를 보며 말했다.

“어머, 그 머리 색은……. 레일라 아비에르 백작 영애인가요?”

“네, 공녀님.”

레일라의 꽃분홍빛 머리색은 귀족 영애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다들 그녀의 머리색이 너무 눈에 튄다고 말하면서도 변장 놀이를 할 때나 머리색을 바꿀 때 해 보고 싶어했다.

뭣보다 머리숱이 풍성한 그녀의 머리는 마치 분홍 작약 같기도 했고.

“아…….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황태자 전하와 계셨군요.”

순간 뭔가를 떠올린 듯 바이마르 공녀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황태자 전하께선 그저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뿐입니다. 제가 워낙……. 자주 아프니까요. 마치 높은 곳에 있는 분께서 불쌍한 사람에게 적선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답니다.”

레일라는 원작의 바이마르 공녀가 아나시스 황태자를 짝사랑했던 걸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이 효과가 있던 건지 바이마르 공녀의 눈꼬리가 차분하게 내려와 순한 표정을 지었다.

“회원제라니 나쁘지 않네요.”

바이마르 공녀가 경계를 낮추며 안으로 들어오다가 복도에 걸린 그림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드빈느……?”

“예, 맞습니다.”

“말도 안 돼. 황실에 걸려 있어야 할 그림이 어떻게…….”

그 말은 맞았다. 레이니어가 제 아버지 방에서 떼 온 것이었으니까.

바이마르 공녀의 표정이 다시 식었다.

“감히 이런 모조품을 걸고 살롱을 열다니. 실망이네요.”

레일라는 오히려 그렇게 말해 주어서 더 기뻤다.

“공녀님의 손님들도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됐어요. 저는 모조품이나 걸린 곳에는 알 바 없습니다. 에클레르가 너무 형편없어서 와 봤는데, 헛걸음이었네요.”

바이마르 공녀가 있는 대로 모욕하고 몸을 돌리자, 레일라가 픽 웃었다.

“저게 왜 모조품이죠?”

“아비에르 백작가를 다 팔아도 이 그림은 살 수 없어요. 그런데 고작 백작 영애가 연 살롱에 이런 그림이라니. 가당치도 않죠.”

바이마르 공녀의 측근들이 어느새 옆으로 들어와 섰다. 그러자 레이니어가 잠시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그 그림은 진품입니다, 공녀님.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바이마르 공녀는 레이니어의 얼굴을 보자마자 시간이 멈춘 듯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위압감, 그리고 찬란한 미모에 저도 모르게 홀린 듯 대답했다.

“……네.”

“공녀님?”

그러자 공녀의 옆에 있던 영애들이 당황했다. 그러나 그녀들도 레이니어가 웃으며 눈을 마주치자 똑같이 굳어졌다.

“이, 이곳의 주인인가요?”

“동업자이니 주인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어머나.”

바이마르 공녀의 오른팔인 페날드 자작 영애가 뺨을 붉히며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영애들이 발그레하게 웃으며 속닥였다.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수도에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

“그러게요. 아비에르 백작 영애랑 같이 다닌다던 그 타국 왕족인가 봐요.”

안 그래도 에클레르에서 레일라와 함께 휴고를 물 먹였던 일 때문에 영애들 사이에선 소문이 돌고 있었다. 레일라가 소네트 브루스를 만나면서 뒤로는 타국의 왕족과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거기에 그 타국 왕족은 왕족인 걸 숨기고 있으나, 재력은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부자라는 소문까지.

애초에 그가 평민이라는 휴고의 말은 아무도 안 믿었다.

일단 레이니어가 입고 있는 복장은 안드레안 의상실에서 맞춘 최고급 디자인이었다. 거기에 그가 차고 다니는 모든 장신구도 그가 귀족이 아닐 수 없는 증명이 될 만큼 비쌌고.

뭣보다 에클레르 내에서도 가장 비싼 것들만 주문하던 모습까지.

그는 타국의 왕족이 분명했다. 못해도 공작 이상의 재력가이거나.

평민이 그런 부를 모을 수 있을 리도 없었으니.

“이름이 뭔가요?”

“제 이름은 레인입니다, 공녀님.”

바이마르 공녀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아나시스 황태자와 그의 눈이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나시스 황태자는 금안을 가졌는데도.

그 순간 바이마르 공녀의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뭣보다 그녀는 세상에서 이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 본 것 같았다. 거기에 묘한 위압감까지.

“어떻게 시험해 보겠다는 거죠?”

바이마르 공녀가 정신을 차리고 레일라에게 묻자, 레일라가 웃으며 말했다.

“공녀님께선 당연히 아실 거라 믿습니다만, 제가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레일라는 공녀가 저를 시험하는 걸 알았기에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드빈느의 그림은 그림 가장자리에 특이한 표식을 남겨 둡니다.”

레일라가 손짓하자, 종업원으로 변장한 레이니어의 부하가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짓에 따라 걸려 있던 그림을 내려 액자를 열어 안에 있던 그림을 꺼냈다.

“그림 제일 귀퉁이에 금을 칠해 두죠. 거기에 그림 뒤편에는 이런 사인을 해 둡니다.”

그림 뒤쪽에는 ‘드빈느’가 아니라 ‘아르메스’라는 사인이 적혀 있었다.

“세상에.”

아르메스는 화가 드빈느의 어머니 이름이었다. 그리고 드빈느는 모든 그림을 제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바치는 의미로 자신의 이름 대신 어머니의 이름을 새겼다.

그 사인은 드빈느의 진품을 가진 사람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바이마르 공작가에도 드빈느의 그림이 한 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레이니어의 말에 바이마르 공녀가 당황했다. 그것은 일급 비밀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이 정도면 증명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여기 있는 모든 그림을 감정해 보셔도 좋습니다.”

바이마르 공녀가 당황하는 사이 레일라가 마지막 타를 날렸다.

“아니면 공녀님께서 직접 사람을 불러 주셔도 괜찮습니다. 저희 몬트에서는 바이마르 공녀님의 사람들을 무엇보다 신뢰할 테니까요.”

그녀의 말에 바이마르 공녀가 기분이 좋아진 듯 표정을 풀며 말했다.

“안 그래도 에클레르가 요새 부실해서 갈 곳을 찾던 참인데 잘됐네요.”

“영광입니다, 공녀님.”

“2층은 뭐가 있죠?”

“2층에는 안드레안 의상실이 들어와 있습니다.”

“뭐라고요?”

그 말에 바이마르 공녀는 더 당황했다. 1층의 그림만 보고도 놀랐건만 2층엔 더 엄청난 게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안드레안이라면 황제 폐하 직속 의상실 아닌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황실과 계약이 어제부로 끝나서 오늘부터는 저희 몬트의 소속입니다.”

“미쳤어!”

바이마르 공녀가 당황하듯 소리치며 치마를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그리고 승강기를 기다리지 않고 계단을 통해 저벅저벅 2층으로 향했다.

레일라는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저도 모르게 웃었다.

바이마르 공녀는 휴고의 에클레르의 가장 큰 고객이었으니까. 그녀만 빼 와도 에클레르의 1달 매출의 10%는 가져오는 셈이었다.

바이마르 공작가는 공녀가 돈을 쓰게 해 공작가의 위신을 보이도록 시키는 곳이었다.

그래야 황태자인 아나시스가 바이마르 공녀를 택할 테니까.

공녀가 아나시스 황태자를 워낙 오랫동안 짝사랑했기에, 공작가의 위신도 살리고 그녀의 짝사랑도 이루어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 방법은 꽤 효과가 있었다.

“정말 안드레안이잖아!”

바이마르 공녀는 2층 전체에 걸려있는 휘황찬란한 옷들을 보며 소리쳤다. 그중에는 아나시스 황태자의 즉위식을 위해 만들어 둔 여벌 옷들과 만일을 대비해 만들어 두었던 색상만 다른 옷도 걸려 있었다.

“저기, 저 줄에 있는 거 다 사겠네.”

바이마르 공녀는 아나시스 황태자의 즉위식 때 입었던 옷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타깝지만 공녀님.”

그러자 레이니어가 입을 열었다.

“저희 살롱은 회원제이기 때문에 구매 등급이 정해져 있습니다.”

“구매 등급?”

“1층의 보석상과 잡화점에서 물건을 구매하신 분들 중 상위 10%의 고객만이 2층의 물건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에……. 그럼 3층엔 뭐가 있지?”

레이니어는 바이마르 공녀와 그 측근들이 완전히 저희에게 넘어온 걸 알고 레일라를 향해 웃었다.

“3층에는 휴게실이 있습니다. 1층에서 파는 다기와 장신구들과 똑같은 제품들로 휴식을 즐기실 수 있죠.”

“가 보겠네.”

공녀는 그렇게 3층까지 제 무리를 이끌고 들어갔다.

“미쳤어.”

3층에 올라간 공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아주 드물게 황실의, 그것도 황태자와 황후의 방에 들어가 본 적 있었다.

3층의 디자인은 마치 그때 봤던 황족의 방처럼 아늑하고 호화로우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4층은?”

레일라는 그 말에 4층이 있다는 걸 처음 안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4층은 귀빈실입니다. 구매 고객 중 상위 5%의 고객만이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바이마르 공녀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참고로 최상위 고객엔 현재 아나시스 황태자 전하가 계십니다.”

레일라가 수줍게 웃으며 바이마르 공녀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오늘 방문하시기로 했고요.”

그 순간 바이마르 공녀의 이성이 끊어졌다.

“1층에 있는 다기를, 전부 사겠네. 내 친우들도 전부 최상위 고객으로 만들어 주게.”

바이마르 공녀의 말에 레일라가 기쁘다는 듯 웃었고, 이내.

“아나시스 황태자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1층에서 달려 올라온 직원이 레일라에게 소리쳤다.

“어머나. 손님께서 빨리 오셨네요.”

바이마르 공녀의 눈도 함께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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