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54화
8시가 되자 몬트의 모든 손님이 귀가했다. 레일라는 레이니어와 함께 수익 내역을 확인하고 있었고.
“이따 9시에 광장으로 갈 예정입니다.”
“결국 그렇게 됐군요?”
“예.”
레이니어는 제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레일라를 들고 있던 서류 위로 흘끔 바라보았다. 그러나 레일라는 그것도 모른 채 보던 서류를 계속 보았다.
“와……. 매출이…… 미쳤어요.”
“어느 정도죠?”
“에클레르 1달 매출의 반을 이틀 만에 벌었네요.”
그것도 그럴 만했다.
황태자와 바이마르 공녀가 들락인다는 소문 때문인지 다들 1층에서 물건을 사면서 구매 등급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미 바이마르 공녀가 제 친우들을 위해 쌓은 구매 등급이 워낙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높아서, 최상위 고객층으로 진입하는 게 어려웠을 뿐이었다.
“내일 이 손님이 다시 오시면 2층의 안드레안 의상실도 이용하겠군요.”
오늘 1층의 가장 비싼 다기 세트들을 사 간 백작 영애의 이름을 본 레일라가 픽 웃었다.
“돈은 은행으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제국 법상 영애의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서 돈을 넣어 두면 아비에르 백작께서 조회가 가능하십니다.”
“차명 계좌 만들라는 말이죠? 알겠어요.”
레일라가 그렇게 말한 뒤 보고 있던 서류에 다시 집중하고 있었다.
“아가씨.”
“네?”
그러자 레이니어가 그녀를 부르며 웃었다.
레일라는 제 이름을 부르고 본론을 말하지 않는 레이니어 때문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가 웃고 있지만 웃지 않는, 예의 그 기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요?”
그녀는 그가 저를 그렇게 바라보자 순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방에는 둘만 있었다. 애초에 회의실로 만들어 둔 방이라 두 사람 이외엔 함부로 들어오지도 못했고.
“제가.”
레이니어가 그녀의 근처로 다가와 앉으며 다시 웃었다.
“남자를 좋아한다고요?”
그가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다시 봐도 웃고 있지는 않았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마치 분노한 듯 보였으니까.
“아, 아니, 그건…… 어쩔 수 없이……!”
“아나시스가 뭐라는지 아십니까?”
“뭐, 뭐라던가요?”
그가 다가오자 레일라는 당황해 몸을 뒤로 빼면서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앗……!”
그녀는 서류를 쥔 채 그렇게 소파 뒤로 벌러덩 누워 버렸다. 허리에 힘이 없던 그녀라 뒤로 계속 물러났을 때 버틸 수 있는 힘이 부족했다.
“제게 몸 좋은 기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답니다.”
“하하…… 하…… 신기해라. 어머나.”
레일라는 어느새 제 몸을 창살처럼 가두며 내려다보는 레이니어 때문인지 머리에 피가 몰릴 것 같았다.
“미안해요.”
그래서 순순히 사과했다. 그가 정말로 화가 난 것 같아서.
“됐습니다. 사과는 말로 때우는 게 아니죠.”
“그, 그럼요?”
“제 소원을 들어주시죠.”
그녀는 그가 사업을 잘하는 게, 어쩌면 이런 면모 때문은 아닐까 했다. 잘 보면 날강도 같기도 한 면모가 꽤 보였다.
“그래요…… 그런데 그건 다 레인을 위해 한 말이었어요.”
“예, 그렇겠죠. 다만 화가 나는 건 별개의 문제라서요.”
“그게 왜 별개죠?”
“아가씨께 제가 그런 취향으로 보였다는 게 속상한 거니까요.”
레일라는 그가 화가 난 포인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서류를 내리고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그럼 왜 아나시스에게 그런 말을 하셨습니까?”
“그야…… 그래야 아나시스 황태자가 나설 거라 생각했거든요. 본래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얻어걸린 거라 그렇게 말한 거고요.”
레일라는 그가 너무 가까워서 저도 모르게 다 사실대로 말해 버리고 말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는 제 생각을 읽는 듯 보이기도 해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정말로 단 한 순간도요.”
그러자 그가 만족한다는 듯 표정이 누그러들며 그녀를 보았다.
레일라는 그의 무게 때문인지 가슴이 이상했다. 마치 살을 타고 그의 심박이 제게 전해지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고.
“소원은 뭘 빌 거예요?”
레일라의 말에 그가 아주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앞으로.”
그녀는 그가 말할 때 입술이 닿을 듯 가까워서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가씨께서 거부하지 않으신다면 키스하고 싶을 때마다 하겠습니다.”
“안 된다고 하면요?”
“그럼 피를 좀 늦게 주는 걸로 소원을 바꾸도록 하죠.”
“얼마나 늦게요?”
“……일주일?”
레일라는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려는 건가 싶었건만, 그러기엔 기간이 너무 짧았다.
마치 자신이 분하다는 걸 말하려는 듯이 보일 뿐이었고.
“저 좋아하지 말라니까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아닙니다. 그리고 제 마음은 제 거니, 제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어딘지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던 레일라는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 대답했다.
“그래요. 그 소원, 들어주죠.”
그 순간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에 닿았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입 속을 탐하는 움직임에 레일라는 저도 모르게 기꺼운 한숨을 토했다.
키스는 점점 노략질하듯 거칠어졌고, 그녀의 숨을 전부 집어삼키려는 듯한 기세였다. 그러다가 레일라가 그의 옷을 꽉 쥐자 다정하게 바뀌었다.
그녀는 그의 그런 움직임에 화답하듯 맞추었고.
이내 턱이 뻐근할 즈음 떨어진 그가 귀가 붉어진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약혼 후에는 안 돼요.”
레일라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사기꾼이시군요. 될 것처럼 허락하시더니.”
“사업을 잘하는 거죠.”
그녀의 말에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레일라의 입가를 엄지로 닦아 주며 말했다.
“저도 사업은 꽤 합니다, 아가씨.”
그렇게 그의 도전적인 말에 레일라는 기분이 묘했다.
어쩐지 싫지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