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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56)화 (56/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56화

이 상황은 휴고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마차로 이어진 줄을 따라서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나 그 줄은 끊이질 않고 분수를 한 바퀴 돌고 뒤의 골목으로까지 이어져 있었다. 노점상들은 신이 나서 귀족들에게 차나 음료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고.

다시 확인해도 맞았다. 그 마차들은 전부 휴고의 눈에 익던 마차들이었다.

그 마차들은 전부 제 고객들의 마차였으니까.

“이건 말도 안 돼.”

휴고가 눈을 사납게 번뜩이며 에클레르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님!”

휴고가 에클레르로 들어오자 종업원들이 달려와 문 앞으로 섰다.

“큰일 났습니다!”

“물건은요?”

“주인님, 이번에는 정말 물건이 들어와야 합니다!”

각 층의 최고 관리자가 와서 휴고을 달달 볶고 있었다.

휴고는 텅 빈 에클레르 안을 보며 헛웃음이 났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매번 붐비던 1층, 그리고 예약을 위해 서 있던 사용인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영애들의 시종들이 줄을 서서 목을 빳빳하게 들고 있던 풍경이 익숙했건만.

지금 보이는 건 깨끗하게 정리된, 그리고 물건이 있을 자리가 비어 있는 데다가 손님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에클레르의 내부였다.

“주인님! 정말 또 물건이 오지 못했습니까?”

“해적을 만났다는 게 사실인가요?”

“태풍에 휩쓸렸다던데 정말인가요?”

아무도 휴고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들 그저 제 일자리를 잃을까 봐 두려워할 뿐이었지.

“하.”

그는 그렇게 모든 층을 돌며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직원 이외의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내 손님들.”

그는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반대편에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몬트로 비집고 들어갔다.

일전에 에클레르에서 줄을 서며 목을 빳빳하게 들고 있던 사용인들이 몬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 주인들을 위해.

“비켜!”

“줄을 서십시오!”

그러나 사용인들은 이내 그가 에클레르의 주인인 휴고 로날드라는 걸 깨닫고는 살며시 비켜 주었다.

휴고는 씩씩거리며 몬트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 보이는 건 정말 의외의 사람이었다.

“뭐야!”

“어머, 휴고?”

레일라가 1층에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 다들 레일라와 그 옆에 있는 사람 때문에 예전과 달리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너! 왜 내 물건들이랑 똑같은 물건을……!”

휴고는 1층에 전시된 물품들이 저가 해적들에게 빼앗겼던 물건들과 거의 흡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분명 해적은 사내였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리고 어떻게 이곳의 주인이 레일라라는 거지?

레일라의 지참금을 다 털어서 사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살롱을 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제 물건을 훔친 해적들도 다 침몰했다는 소문이 들렸는데?

거기에 살롱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사교계의 사람만이 열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레일라가 살롱을 열었단 말인가?

사교계에서 레일라의 평판은 땅에 처박힌 지 오래였다. 시베르가 시도 때도 없이 레일라에 대한 안 좋은 말을 했기에, 머리색 이외엔 알지 못하는 여인들도 레일라를 같이 욕하곤 했다.

거기에 레일라가 파혼했던 영식들, 그리고 그녀에게 마음을 주려다가 거절당한 수많은 사내들과 이전 연인들도 거기에 합세해 같이 욕을 했었다.

레일라는 사교계의 뼈다귀였다. 실체는 없었지만 흥미롭고 재밌는 주제. 모두들 그녀의 머리색을 부러워하면서도 조롱하듯 비웃곤 했었다.

오죽하면 분홍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들은 다 질투심이 심하다는 말까지 속담처럼 나왔을까.

그런 레일라가.

대체 어떻게?

“이 모조품은 뭐야, 레일라?”

그는 분노로 씩씩거리며 드빈느의 그림을 가리켰다.

“휴고, 초대장 있니? 아니면 출입증은?”

“뭐? 야, 이게 다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잖아. 귓구멍 막혔어?”

휴고가 주위의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레일라에게 쏘아붙였다.

“돈도 없는 네가 무슨 수로 이런 비싼 물건들을 전시했어? 왜 또 소네트한테 아양이라도 떨었냐?”

“대답할 가치가 없네, 나가.”

레일라는 싸늘하게 휴고를 바라보며 손짓했다. 그러자 오늘 새로 고용한-실상은 레이니어의 부하들인- 호위병들이 휴고의 주위로 왔다.

“너 이 많은 돈이 어디서 났냐고! 너같이 지참금도 비루한 계집이! 어! 어떻게!”

“나가라고 했지.”

“소네트 브루스야? 그 새끼가 예쁘게 굴면 돈 준다고 했냐?”

“좋은 말로 할 때 나가.”

“여기! 다들 봐요! 레일라 아비에르는 거지예요! 이런 걸 모아서 팔 돈이 없다고요! 이건 다 가짜예요!”

휴고가 고함치자 주위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어머나.”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소리 낸 사람은.

“바이마르 공녀님!”

바이마르 공녀였다. 그녀는 안 그래도 제 친구들과 아래층에서 새로 들어온 다기를 보러 내려가는 중이었다.

“왜 여기 계십니까! 에클레르를 공녀님의 살롱으로 삼겠다고 하셨잖습니까!”

휴고가 따지듯이 묻자 바이마르 공녀는 우아하게 승강기에서 내려 레일라의 옆에 섰다.

“아까 레일라 영애에게 한 말, 다시 해 봐요.”

“예?”

“레일라 영애에게, 그것도 아직 약혼식 전인 영애에게 방금 무슨 모욕을 한 거죠?”

“아…… 공녀님. 저는 괜, 찮아요…….”

레일라는 슬픈 듯 눈을 아래로 내리며, 제 어깨를 꽉 잡은 바이마르 공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가늘게 몸을 떨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이 우는 걸 봐 달라는 듯.

그러다가 깨달았다.

바이마르 공녀의 눈이 아주 붉다는 걸. 그러나 그 붉음은 이내 레일라를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어?”

그러자 바이마르 공녀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쉿.”

레일라는 그 순간 바이마르 공녀가 레이니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분명 옷도 체격도 목소리도 머리카락도 생긴 것도 바이마르 공녀였다.

그녀는 제 근처에서 가면을 쓴 레이니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가 묘하게 못생겨 보였다.

지금까지 늘 조각처럼 아름다웠던 레이니어였다. 그는 가면 따위로 미모를 가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면에 가려도 묘한 못생김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제 말은 사실입니다! 레일라는 돈이 없어요! 이런 걸 사서 걸어 둘 돈도 없고! 얘가 벌어들인 돈은 남자들한테 얻어낸 겁니다!”

“휴고, 그만해.”

“저랑 약혼했을 때도 그랬어요! 돈 때문에 한 거라고!”

“내가 언제 그랬니?”

레일라는 옆에 서 있는 여자가 바이마르 공녀가 아닌 것 같자 화를 참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뭣보다 바이마르 공녀는 저를 저렇게 끈적하게 볼 리도 없었다.

레일라는 다시금 바이마르 공녀의 눈을 보았다. 그러자 레이니어처럼 웃으며 반달처럼 접힌 눈이 다시금 붉게 보였다. 마치 그녀에게 확신을 주듯이.

레일라는 그것을 보며, 아무래도 레인이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야, 아이히만이 그러던데 너 아이히만이랑 갈 데까지 다 갔다며? 아이히만이 너랑 헤어진 게 네가 임신해서라고 다 말했어!”

“웃기네. 아이히만은 내 손도 못 잡았는데?”

“거, 거짓말하지 마.”

“그리고 네 말 정말 이상하다. 그 일이 사실이라면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이히만이어야 하지 않니? 아이 때문에 사람을 버린 건 내가 아니잖니?”

“그 말이 맞네요.”

레일라의 말에 바이마르 공녀의 모습을 한 레이니어가 대답했다. 그러자 휴고가 공녀를 두려워하듯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네 경솔한 행동을 지금 정당화하는 거야?”

“난 떳떳해. 한 번도 그런 행동 한 적 없고. 너야말로 나랑 교제하던 중에 시베르 언니와 키스한 주제에.”

“야! 그건 네가 자꾸 거부하니까 한 거지!”

휴고는 씩씩거리며 레일라를 쏘아보았다.

“애초에 네가 좀 쉽게 키스도 해 주고! 아이히만이랑 했던 것처럼 굴었으면 내가 시베르한테 가? 다 너 때문이잖아!”

“내가 아이히만이랑 그런 일이 있었다면, 너랑도 쉬웠겠지. 나는 손을 잡았던 사람도 네가 처음이었어, 휴고.”

휴고는 그 말에 머릿속을 스쳐 가는 말들이 의심되었다.

‘레일라는 진짜 쉬워.’

‘야, 레일라가 얼마나 쉬운지 알아? 걔는 조금만 잘해 주면 결혼하자고 한다니까.’

‘레일라가 몸은 가벼워도 얼굴은 예쁘지.’

그렇게 쉽게 말하던 영식들도 결국 실체 없는 말뿐이었다.

레일라는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앞에서 먼저 스킨십을 한 적은 없었다. 소네트를 제외하고.

“X발, 그럼 내가 들은 건 뭔데? 네가 했던 행동들, 나도 다 알거든?”

“너는 한때 내 애인이었으면서도 내 말은 한 번도 안 믿었지.”

“네가 믿을 만하게 행동해야 믿지!”

“아니. 네가 시베르 언니와 만나면서 나를 우습게 만들었으니, 내가 그렇게 보였겠지.”

레일라는 참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휴고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그런 역겨운 사람이었으니, 나까지 그렇다고 착각한 거잖아?”

“저도 레일라 영애의 말에 동의해요. 제가 느낀 레일라 영애는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요.”

“……공녀님.”

바이마르 공녀가 레일라의 어깨를 꽉 쥐며 주위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한번 둘러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공녀와 레일라, 그리고 휴고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저희 바이마르 공작가의 이름을 걸고 여기 있는 모든 제품은 진품입니다. 제가 첫날 왔을 때 전부 시험해 보았으니까요.”

그러고는 더 크게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제 친우인 레일라 영애를 향한 이런 식의 모욕은 친우인 저를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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