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59화
“아가씨,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레일라는 약혼식을 위해 거의 다 준비해 왔으나, 막상 대기실에 오니 할 게 여전히 많았다.
드레스도 다시 입어야 했고, 머리도 완전히 새로 해야 했다.
본래 그녀의 머리는 적당히 윤기 있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일부러 펴고 있었다.
“아까는 곱실거리는 게 좋다며.”
“다시 보니 펴는 게 훨씬 낫습니다.”
캐서린이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완성되어 온 드레스를 보자 그렇게 주장했다.
레일라는 어떤 머리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나, 캐서린이 제게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캐서린이 내 머리를 만져 주면 좋아. 마치 엄마 같거든.”
레일라는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캐서린이 제게 요새 서글서글하게 대하는 이유가 제 죽은 딸 때문인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는 시베르를 제 딸에 대입해 보았으나, 지금은 레일라를 그렇게 보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 그 부분은 많이 욕을 먹던 설정이었다.
애초에 건강한 시베르가 병약하다 못해 병으로 죽은 캐서린의 딸과 비슷할 리도 없을 뿐더러 시베르의 어머니는 건강하게 살아 있었다.
그런 시베르에게서 캐서린이 딸을 동일시해 보는 것도 이상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캐서린이 떨리는 목소리와는 상반된 분주한 손길로 레일라의 머리를 펴고 있었다.
레일라는 캐서린을 제 편으로 만들어 〈인어의 눈물〉 복용을 중단하려 했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제게 약을 가져다주는 사람은 레이니어뿐이었고, 캐서린은 알게 모르게 그녀의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새어머니에게도 모든 걸 보고하진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레일라는 엘라가 전에 제 시녀였을 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았던 걸 떠올리며 그 미묘하고도 극명한 차이를 알고 있었다.
뭣보다 새어머니는 지금 묘하게 레일라와 시베르 모두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듯도 보였고.
그래서인지 레일라는 꽤 숨통을 트인 채로 보낼 수 있었다.
-똑똑.
‘레일라.’
“소네트? 들어와.”
대기실로 들어온 건 소네트였다.
“와, 소네트. 너무 잘 어울려.”
레일라는 소네트의 옷을 처음 보았다. 제 저택에선 그녀의 드레스만을 맞추었다. 거기에 레일라는 몬트의 사업으로 바빴기에 볼 시간이 없었다.
“고마워. 너도 너무 잘 어울린다.”
소네트가 뺨을 붉히며 환하게 웃었다. 레일라는 그런 그를 거울 너머로 보자 반사적으로 웃었다. 소네트가 레이니어가 없을 때마다 빛을 찾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입술이 왜 이래?”
“어? 아, 이거. 너무 긴장해서.”
레일라는 입술이 여전히 부어 있는 걸 느끼며 웃었다. 그러다가 소네트가 붉어진 얼굴로 사람 좋게 웃자 저도 모르게 물었다.
“소네트, 정말 약혼 준비를 시베르 언니와 다 했어?”
“어. 네가……. 바쁜 거 같아서.”
“미안. 네게 먼저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너무 급하게 오픈을 하느라고.”
레일라가 미안하다는 듯 웃자 소네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사실 네게 조금 서운하긴 했어. 그래서 네 살롱에 안 간 것도 맞아.”
레일라는 소네트가 갑자기 너무 솔직하게 나오자 당황해 그를 돌아보았다. 거울 너머로 보던 그가 진심어린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런데 막상 너를 다시 보니까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너무 바보 같네.”
“소네트.”
“앞으론 그러지 않을게. 우리 정말 행복해지자.”
그가 그렇게 말하고는 레일라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레일라는 문득 깨달았다. 그의 목 근처에 난, 마치 손톱자국 같은 기다란 흔적을.
“고마워, 소네트. 그런데 목에 그건 뭐야?”
“어떤 거?”
그 순간 그가 거울 너머로 제 목을 확인했다.
레일라는 그게 여인의 손톱자국인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간격으로 저렇게 길게 날 리가 없었다.
“옷에 쓸렸나 봐, 소네트.”
“어? 아…… 어.”
소네트가 당황하듯 눈을 뜨며 목에 있는 크라바트를 당겼다. 그러자 목에 난 손톱자국이 천에 가려졌다.
“나중에 우리가 결혼하면 고양이라도 키울까?”
“어.”
소네트가 인상을 찌푸린 채 웃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레일라는 아무래도 휴고의 말에 신빙성이 더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여인이, 정부가 있어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을 택한 걸 수도 있다는 그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