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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61)화 (61/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61화

레일라는 시베르와 소네트가 함께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할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몬트의 일이 너무 바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건진 것도 있다. 다른 건 몰라도 휴고만큼은 철저히 밟아 주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끓어오르던 분노가 잠시 단전에서 멈춘 뒤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는 애써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말했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어머, 레일라? 정말?”

“그럼 어떻게 해?”

“너 되게 눈치 없구나. 이런 상황에선 그냥 알겠다고 해야지.”

시베르의 친구들이 레일라에게 당당하게 말하며 바라보자, 레일라가 픽 웃으며 말했다.

“눈치는 내가 없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없으시네요.”

“레일라, 저번에는 좋다고 하더니 또 왜 그래?”

시베르가 억울하다는 듯 말하자, 잘 서 있던 시베르의 앞으로 메루스 자작 영애가 튀어나왔다.

지난번에 떨어져 나간 바르델 록펠 자작가 영애가 시베르의 오른팔이었다면, 메루스 자작 영애는 왼팔이었다.

“레일라, 또 왜 그래요? 제가 저번에 같이 있었을 때는 이렇게 똑같은 옷을 입고 서 달라고 부탁하더니…….”

“제가요?”

“네. ……아, 그거군요?”

“그게 뭐죠?”

메루스 자작 영애가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이렇게 해야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저희를 모두 속인 거잖아요.”

“…….”

“시베르 영애도 정말 힘들겠어요. 주목받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저런 천박한 여자가 동생이라니.”

“메루스, 그만. 오늘은 레일라의 약혼식이잖아요. 식도 시작 안 했는데 분위기를 망치면 어떻게 해요?”

“아, 참.”

시베르의 말에 메루스 자작 영애가 아차 싶었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죄송해요! 모두들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일로 레일라 영애에게 당한 게 많아서요!”

메루스 영애가 사과하는 척하며 레일라를 곤란하게 만들려 들었다. 그러나 레일라는 그것마저 가소롭게 생각하며 말했다.

“결혼식도 아닌데, 들러리는 필요 없겠어요.”

“레일라?”

“들러리는 전부 나가 주실래요?”

레일라의 말에 소네트가 재빠르게 손짓했다.

그런 사태를 두고보던 아나시스 황태자는 재밌다는 듯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레이스로 된 안대를 쓴 레이니어로 변장한 윌리엄이 함께 앉아 있었다.

“차라리 제가 대신 들러리를 서겠어요.”

그 말과 함께 바이마르 공녀가 일어나서 들러리들이 서 있던 자리로 갔다. 그러자 그녀의 측근들이 셋으로 나뉘며 레일라와 소네트 쪽으로 반 갈라서 섰다.

“바이마르 공녀님?”

“레일라 영애, 약혼 정말 축하해요.”

레일라는 입술로 ‘고마워요.’ 하고 답하며 소네트와 함께 다시 걸었다. 그러자 음악이 다시 흘러나왔다.

아비에르 백작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참았고, 레일라의 새어머니는 싸늘한 표정으로 레일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약혼식이 시작되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나, 비가 오는 날 약혼하면 둘의 사이가 굳건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약혼식을 진행하는 사람은 대사제였다. 그의 금안은 소네트와 닮아 있었는데, 아무래도 브루스 후작가의 친인척인 듯싶었다.

“레일라 아비에르 영애가 너무 아름다워 벌어진 일이니, 다시 기분 좋게 시작합니다.”

레일라가 그 말에 웃으며 바로 섰다.

결혼식 때는 주례를 바라보며 선다. 그러나 약혼식에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서야 했다.

그리고 약혼자가 될 사람의 손을 잡고 선 채 맹세를 해야 했다.

앞에 서서 바라보자 이 약혼식장의 화려함과 웅장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샹들리에는 마치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달아 둔 것처럼 번쩍번쩍 빛을 난반사하고 있었다. 마치 태양을 반사한 것처럼 장내가 밝은 이유도 수많은 샹들리에 때문인 듯했다.

거기에 온갖 꽃들이 가득했는데, 대부분은 수국이었다. 수국은 산수국을 제외하면 향이 없는 꽃이었다.

‘화려한데 향이 없는 게 꼭 너 같지 않니, 레일라?’

레일라는 시베르가 이전 생에서 제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곳의 장식을 시베르가 도와줬다면 그런 의미로 장식한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굳이 깎아내리고 싶지 않아 그저 감상하기로 했다.

시베르의 의도가 어떻든 자신은 지금 소네트와 약혼하는 중이었다.

약혼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화려한 건 처음이었다.

“약혼에 대한 다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소네트 브루스 소후작.”

그러자 선서하듯 손을 든 소네트가 레일라를 한번 보며 웃었다.

“저 소네트 브루스는 맹세합니다.”

레일라는 소네트가 무엇을 말할지 알 수 없어서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제 몫의 서약서를 작성은 했지만, 작성했을 때 너무 피곤해서 적당히 각색해 읽을 생각이었다.

“앞으로 레일라 아비에르만을 영원히 사랑할 것을.”

그리고 그가 다음 조항을 읽었다.

“그리고 레일라에게 영원히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요.”

그 다음 레일라의 차례가 왔고, 레일라의 입에서 맹세가 튀어나왔다. 예전에 했던 내용이 아닌 즉흥적인 맹세가.

“저 레일라 아비에르는 소네트 브루스가 충실한 만큼 충실하겠습니다.”

그러자 소네트가 수줍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너무 애정이 가득해서, 오히려 더 가짜 같다고 생각했다.

“또한 혼자 노력하지 않고, 같이 노력하겠습니다.”

그녀는 그동안 홀로 노력해 이어왔던 관계들이 떠올라 그렇게 말했다. 말하고는 조금 후회했는데, 소네트의 표정이 너무 밝아서 이것이 연기라는 걸 떠올렸다.

레일라는 그를 이번 생에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전 생에서 그를 만났다면, 바라는 말, 듣고 싶었던 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말만을 하는 그에게 빠져 제 모든 걸 줘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고는 끝내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겠지.

새어머니와 시베르에게 이용당하다가 독살당하는 것이나 소네트에게 이용당한 뒤 버려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꽃에는 벌도 꼬이지만 파리도, 모기도 꼬인다.

그녀는 예전처럼 자신이 시든 꽃이기에 벌레가 꼬인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꽃에게는 항상 벌만 오는 건 아니었고, 상대의 잘못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정말 다른 이의 사랑보다 스스로의 사랑으로 자신을 바로 세우기로 했기에.

“사랑해, 레일라.”

소네트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레일라는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기에 웃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소네트와 제가 제대로 알게 된 건 고작 2달. 2달 만에 사랑을 맹세하는 사람이 진심일 리 없다는 걸.

“이제 축사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소네트와 레일라는 축사를 하는 대주교 쪽으로 몸을 돌려야 했다.

레일라는 몸을 돌리려던 순간, 누군가 문밖으로 나가는 걸 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가 본 것은 레이니어였다.

“어……?”

“왜 그래?”

“……아니야.”

그녀는 순간 나간 레이니어가 울고 있었던 것만 같아 기분이 묘했다.

“뭘 잘못 본 거 같아.”

하지만 그럴 리도 없었기에.

그녀는 다시 만들어진 웃음을 띠며 앞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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