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67화
“누가 널 들여보내 줬니?”
“레일라, 제발! 내가 잘못했어!”
레일라는 제 발목을 끌어안으며 눈물과 콧물을 옷에 묻혀 대는 그가 너무 징그러워서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거기 누구 없나요!”
하지만 레일라의 문 앞에는 경비를 서는 기사가 없었다. 시베르라면 몰라도 레일라의 문 앞에는 호위 기사가 없었다. 그녀가 나갈 때나 백작가의 체면을 위해 붙여주긴 했을지 몰라도.
운도 없는 건지 지금은 시베르도 외출한 건지 시베르의 방문 앞에 있던 기사들도 보이질 않았다.
“레일라! 제발 내 말 좀 들어 봐!”
“들을 거 없어! 나가라고!”
-부욱!
그 순간 휴고가 너무 큰 힘으로 레일라의 치마를 당기는 바람에.
“너!”
“이건 실수야! 네가 자꾸 움직여서 그렇잖아!”
레일라의 치마가 뜯어졌다. 그녀는 지금 허리에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옆구리로 흰 네글리제와 코르셋이 삐져나올 만큼.
“당장 나가!”
“제발 나 돈 좀 빌려 주라! 이러다가는 영지까지 몰수된단 말이야!”
“잘됐네. 그럼 너도 소백작 아니고 평민으로 강등되겠네?”
레일라는 그를 뿌리치려 했으나 곰 같은 휴고가 어찌나 힘이 센지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차라리 레이니어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며 볼 안쪽을 씹기로 했다.
“내, 내가 엄청난 정보를 줄게!”
“필요 없어. 나가.”
그러다가 볼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손을 물려던 찰나.
“소네트 브루스의 정부에 대해서! 다 말할게! 다!”
그 순간 레일라는 멈칫했다.
“필요 없는데? 나는 소네트를 믿어.”
그러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러나 휴고를 믿을 바엔 소네트를 믿는 게 차라리 나았다. 비록 소네트가 이런저런 일로 실망시킨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바람피우고 모욕하다가 환승까지 했던 휴고보다는 아니었다.
“야! 진짜라니까! 네 약혼식에도 왔었대!”
“응, 아니야. 제발 꺼져.”
“시베르가 봤대!”
“응, 그렇구나.”
그녀는 손을 물려던 순간 우는 그를 보았다.
예전에, 휴고를 좋아했을 때는 그가 정말 잘생긴 줄 알았다. 레일라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의 장점만 보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이렇게 못생겨 보는 그가 마치 다른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설게 느껴졌다.
“그 정부가 어디 사는지 알려 줄게!”
“필요 없어.”
“내 말이 진짜면 넌 후회할걸?”
“응, 후회할게. 가.”
레일라의 말에 휴고가 다시 울며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잘못했어. 너처럼 예쁜 여자를 두고 그런 추녀랑 바람이 나다니.”
레일라는 그의 말이 과장됐다고 생각했다. 시베르는 단아한 미인이었지, 추녀는 아니었다.
“우린 언제든 돌이킬 수 있다고 착각했어.”
“응, 그래. 난 아니란다.”
“나 정말 이제 시베르랑 키스해도 아무렇지 않아. 너 말곤 다 싫어졌다고!”
“지금 시베르 언니와 키스한 걸 내게 말하는 게 정상이라고 보니?”
“정말이야! 이젠 걔랑 키스하고 손잡고 해도 아무렇지가 않아! 너만 생각난다고!”
레일라는 너무 불쾌해서 다리를 빼려 했다. 그러나 더 빼려 했다가는 입고 있던 드레스가 마저 찢어질 것 같아 불안했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지나가는 하녀와 시종들은 저 멀리서 모른 척 지나가고 있었고.
그녀는 여전히 이 저택에 제 편이 아무도 없다는 걸 실감하며 한숨을 쉬었다.
“난 아니야. 난 소네트만 생각나서.”
“그 새끼는 정말 정부가 있어! 넌 대용품이라고!”
“제발 가 줄래? 너랑 말 섞는 것도 시간이 아깝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면서도 언제든 제 손가락을 깨물 수 있도록 손을 들고 있었다.
“나 영지 몰수만은 피하게 해 줘. 그럼 내가 그 새끼 정부가 어딨는지 알려 줄게.”
“나 혼자서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으니 가 줄래?”
“그, 그리고 네가 시키는 대로 전부 할게! 결혼하면 네가 만족할 때까지 잠자리도 연습하고……! 그럴게! 좋은 남편처럼!”
“나 얼마 전에 약혼했어. 그런 더러운 모욕은 그만해 줄래?”
레일라의 단호함에 휴고가 눈을 벅벅 닦으며 말했다.
“영지 몰수만 막아 줘. 내가 네 편이 될게!”
“너처럼 잘 배신하는 사람을 내가 왜?”
“그거야 돈이 있었을 때니까! 지금은 개털이라고!”
그가 울먹이며 말하자, 레일라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휴고를 완전히 치우려면 수도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생각까지.
“소네트가 만난다던 정부, 주소 줘. 확인하고 생각해 볼 테니까.”
“내가 바보라고 생각해? 네가 정보만 홀랑 먹으면 어쩌려고 그러겠어?”
“정보가 확실하지도 않은데 네게 돈을 줄 거라고 생각하니?”
레일라의 일침에 휴고가 훌쩍이며 그녀의 말을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년필이랑 종이 빌려 줘.”
그렇게 그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못생긴 얼굴로 어떤 주소를 적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