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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84)화 (84/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84화

“예……?”

레일라는 갑작스러운 반전에 놀라 레이니어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고.

“황제의 아내는 둘째 아이를 가진 채 죽어 버렸습니다.”

“왜요?”

“황제에게는 정적이 많았고, 그 아가씨에겐 질투하는 무리가 많았죠.”

“범인은 누구였어요?”

“누군지는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전부 처리했습니다. 의심 가던 사람 전부를요.”

그녀는 그의 웃음이 또 가짜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진심으로 기쁜 듯 웃고 있었건만, 지금은 또 거짓으로 보였다.

레일라는 그가 가짜로 웃을 때 보이는 미묘하게 다른 표정을 이제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레일라가 긴장한 채 그의 입술을 바라보았고.

“이야기가 재미있으신가 보군요.”

“……흥미로워요. 마저 해 줘요.”

“마저 하기 전에 해독을 좀 하시면 어떻습니까?”

“아이 참.”

그녀는 중요한 이야기를 듣던 중에 산통을 깨는 그가 괘씸했지만, 차라리 빨리 해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제 건강에 좋은 일이기도 했고.

“이리 와요.”

그녀가 그의 몸 위로 올라타며 턱을 잡아 당기려 했다. 그러자 그가 몸을 돌리며 레일라를 침대로 눕혔다. 그러고는 팔을 뻗어 그녀의 몸을 가두었다.

“왜 안 해요?”

“왜 저항을 안 하십니까?”

“흥미로운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이게 제 건강에 좋으니까?”

레일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녀가 당기는 대로 그가 쉽게도 그녀의 입술까지 끌려왔다.

시작은 레일라가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니어에게 완전히 눌려서 행동하는 게 버거워졌다.

그는 이야기에 몰입했는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키스하다가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듯 그녀가 헐떡이자 그가 잠시 떨어지며 말했다.

“피 내는 걸 잊었네요.”

“아…….”

레일라가 숨을 참았다가 뱉자 그가 제 입술을 깨물어 피를 냈다. 그러고는 다시금 레일라에게 키스했다.

그녀가 숨이 막혀 그의 목을 더 세게 안자 그가 그녀에게 밀착하며 더 격하게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런 입맞춤 때문에 그녀는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하으…….”

그렇게 길게 이어진 키스가 끝날 즈음엔 머리가 몽롱할 지경이었다. 턱이 어찌나 저린지 그에게 타박하려는 말조차 나오질 않았다.

“평소에는 열 번씩도 하시더니.”

“오, 늘따라 왜 이렇게…… 집요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옆으로 누웠다. 그러고는 은근슬쩍 안듯이 팔베개를 해 주었다.

“이야기를 마저 하죠.”

“……그래요.”

레일라가 한숨을 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내 그녀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말했다.

“아내가 죽은 황제는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생을 포기했죠.”

“……동화 아니었어요?”

“동화입니다. 황제는 생을 포기하고 이전으로 돌아갔습니다.”

레이니어의 말에 레일라는 혼란스러워져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황제는 아내를 만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또 아내를 만났죠. 다시 똑같은 삶을 반복하고, 또 아내를 잃고요.”

“…….”

“그래서 그는 같은 삶을 반복하면 아내를 지킬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말았습니다.”

레일라는 순간 그를 보자 몸이 굳어졌다.

“그렇게 황제는 제 아내를 살리기 위해 반복되는 삶을 매번 다르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은 매번 아내가 죽는 시점에서 새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왜요? 아내 없이 살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황제는 그럴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매순간, 아주 쉽게도 제 삶을 포기해 버렸답니다.”

“어떻게요……?”

“방법이라면 매번 달랐습니다. 처음엔 목을 멨고, 그 다음엔 총을…….”

레일라가 그의 입을 막았다.

“잔혹 동화라고는 안 했잖아요.”

그녀는 그와의 키스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거기에 뒷내용이 갑자기 재미없어지자 속은 기분이 들었다.

“흣…….”

이내 그가 그녀의 손을 입술로 물자, 그녀가 손을 떼며 움츠러들었다.

“뒷이야기를 더 들어 보실 건가요?”

“네, 더 있으면 해 줘요.”

그녀는 부디 행복한 결말이길 바란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황제는 죽었다가 살아날 때마다 자신의 아내를 찾으러 갔던 게 잘못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

“그래서 방법을 바꾸었죠. 그랬더니 이번엔 아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뭡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그때도 죽었습니다. 아내가 다른 사람이랑 사는 걸 어떻게 보겠습니까?”

레일라는 차마 그게 그의 이야기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자신도 회귀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계속 반복해도 아내는 황제의 옆으로 오지 않았죠. 황제는 고민했습니다. 아내가 다시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아내가 죽지 않을 미래를 만드는 방법을 뭘까.”

“…….”

“그러나 황제가 되면 아내를 잃었고, 아내를 살리면 아내는 다른 사내와 눈이 맞고 이내 죽임을 당하더군요.”

이제는 전혀 웃지 않는 얼굴이었기에, 레일라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래서 황제는 황제의 자리를 버리고 아내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요.”

“몇 번 만에 그런 깨달음을 얻었죠?”

“글쎄요. 900번 대까지 새고는 안 세어 봤네요. 지금이 천 번입니다.”

순간 레일라는 머리가 멍해지고 있었다. 집중하고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이상하게 그럴 수 없었다.

“그럼 황제는 어떻게 하나요? 아내가 다른 사람이랑 살게 돼도 괜찮은가요?”

“황제는 깨달았답니다. 아내의 옆에 자신이 없더라도, 아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걸요.”

“그럼 너무 슬프잖아요.”

“황제에겐 비참하겠지만, 그가 사랑한 아내에겐 행복한 생이겠죠. 어쩌면 그게 그 둘의 옳은 결말일지도 모르는 거고요.”

머리는 마치 흰 물감이 덧대진 것처럼 멍하게 변해 갔고.

“대단하네요. 저라면 몇 번 다시 살았을 때 황제에게 지겨워졌을 것 같은데.”

“황제도 그걸 바랐답니다. 그러나 삶이 다시 반복될 때마다 더 무거워지는 마음도 있더군요.”

“아…….”

그녀는 이내 망가진 인형처럼 모든 게 흐릿하게 변해 갔다.

그녀가 눈을 뜬 채 잠에 빠진 듯 변하자 레이니어가 웃으며 말했다.

“잊으신다면 또 말씀드리죠, 부인.”

그는 웃고 있었지만, 레일라가 느끼기엔 웃는 얼굴은 아닐 터였다.

그렇게 그녀는 잠이 들었고.

언제나처럼 그의 말을 잊어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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