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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87)화 (87/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87화

실상 소네트와 키스하진 않았지만 레일라는 딱히 변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정하든 긍정하든 그게 레이니어와 무슨 상관일까 싶기도 했고.

“맞아요. 이제 제 방에서 나가 줄래요?”

“오늘은 해독을 안 했는데요.”

“소네트가 너무 괴롭혀서 턱이 좀 아프네요.”

그녀는 자신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레이니어의 반응이 궁금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쪽은 잘 못 했을 거 같은데요.”

“소네트가요? 아뇨. 엄청 잘하던데요?”

“거짓말이네요. 저는 아가씨가 거짓말할 때의 버릇을 잘 알고 있습니다.”

레일라가 그의 눈을 피하자 그가 마저 말을 이었다.

“키스 자체도 안 했군요…….”

“훔쳐봤어요?”

“소네트 브루스와 키스했다면 아나시스와도 못 할 게 없을 텐데요.”

레이니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확신하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떠본 건데 맞나 보네요.”

“왜 이런 걸 떠봐요?”

“글쎄요. 왜인지는 아가씨도 아실 것 같습니다만.”

레이니어의 말에 레일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어디서 기분이 나빠지신 걸까요?”

레일라는 그가 자신에 대해 그렇게 알아내려 하는 게 신기했다. 제 기분이 좋지 않은 걸 어떻게 알았으며, 그게 왜 궁금한 건지도.

“저 기분 안 나빠요.”

“그런 것치고는 눈꼬리가 내려가셨네요.”

그녀는 레이니어가 팔을 이끌자 따라갔다. 묘하게 그가 자신을 이끌어 가는 게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제가 맞추면 상을 주시죠.”

“그럴게요.”

“갑자기 의욕이 샘솟네요.”

레일라는 그가 하는 말에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고는 이내 그가 자신을 침대에 앉힌 뒤 똑같이 옆에 앉자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예측할 수 없는 때마다 자신을 도와주던 눈도 이런 눈이었다. 그녀는 지금껏 자신을 곤경에서 구해 주었던 눈이 이랬던 걸 떠올렸다. 그랬더니 기분이 좋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차분해졌다.

“소네트 브루스가 아가씨를 험하게 다뤘군요?”

“아닌데.”

“맞을 텐데요. 말로는 좋아하고 아끼고 싶다면서 자기 멋대로 하는 게 그 사람 특기죠.”

“어떻게 알아요? 소네트는 좋은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면 헷갈리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를 이렇게 비참한 기분이 들게 만들지 않죠.”

레일라는 그 말에 시선을 내렸다. 눈을 보면 그가 제 생각을 읽는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어서.

“좋은 사람도 헷갈리게 할 수 있죠. 상황이 꼬이면요.”

“그것도 한두 번이겠죠. 매번 헷갈리게 하는 사람이 어떻게 좋은 사람입니까.”

“레인도 똑같아요. 저를 헷갈리게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언제나 같은 목표를 두고 있죠. 그리고 그 목표는 헷갈리지 않습니다.”

“그게 뭔데요?”

그러자 레이니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게는 아가씨의 기분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 모든 목표는 그곳에 중점을 두고 있죠.”

레일라는 그의 말이 헛소리 같으면서도 또 맞는 것 같아서 이상했다. 정말로 그랬던 적이 많았으니까.

“레인은 정말 이상하고 신비한 사람 같아요.”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했을 때 그가 울었던 게 떠오른 레일라가, 말을 조금 바꿔서 했다. 그러자 그가 기껍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도 그렇습니다. 매번 볼 때마다 새롭고 신비롭네요. 이상할 정도로 저를 강하게 지배하시고요.”

레일라는 기분이 나아지자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뺨을 쓰다듬던 레이니어는 익숙하게도 레일라에게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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