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90화
소네트는 아무래도 급하게 서두르느라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너무 급했기에, 시베르가 자신의 차에 뭘 탔든. 어차피 레일라가 있을 테니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결혼하지 않은 귀족 영애에게 이미지와 명예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방심했었다. 아무리 시베르가 쓸데없는 일을 꾸민다 하더라도 그녀는 미혼인 귀족 영애였다. 약혼녀까지 있는 자신과 깊이 연관될수록 그녀의 손해일 테니까.
무슨 일이 생겨도 혼처가 막히는 쪽은 자신이 아니라 시베르 쪽이 확실했다.
그래서였던 걸까.
그는 정말 묘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에선 레일라의 열다섯, 데뷔탕트 때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의 그는 정말이지, 충격을 받았다는 말에 더 가까웠었다.
“저쪽이 그 레일라 영애인가 봐.”
소네트는 레일라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그녀의 상냥한 미소, 그리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지끈거렸다.
이때는 사교계에서 레일라가 출현한 첫날이었기에, 그녀를 둘러싼 어떠한 소문도 없었다.
그녀의 결이 예쁜 분홍 머리카락과 빙하의 단면처럼 찬란한 하늘색 눈도 그러했다.
그는 제 이복동생의 그 색을 시시하게 느꼈을 때와 다르게도 그녀를 처음 봤을 때는 찬란하다 생각했다.
마치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가슴을 내리누르는 무게감에 그는 사로잡혀 있었다.
머리에 꽂고 있던 보석이 잔뜩 박힌 나비 모양 머리핀도, 한 쌍인 듯 보이는 귀걸이까지 너무 잘 어울렸다.
레일라는 정말 아름다웠다.
분명 그랬건만.
“윽……!”
그는 격통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이게 무슨……!”
소네트는 깨어나자마자 보인 광경에 기함했다.
기절하기 전 그는 분명 시베르에게서 벗어나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약에 취한 손발이 너무 무거웠고, 그렇게 기절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헐벗은 채로 침대에 누운 제 모습이었다.
그는 제 옷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침대 아래에 뭉텅이로 뒤섞인 옷이 보였다.
거기에, 끔찍하게도.
“……소네트?”
제 옆에 누운 시베르까지.
“잘 잤어?”
“X발.”
소네트는 난생 처음으로 욕이란 걸 내뱉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그런 경박한 말을 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난 처음이었어. 너도 처음이라고 했지?”
소네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재빨리 바지에 다리를 욱여넣었다.
“어디 가? 나 이렇게 두고 갈 거야?”
“닥쳐.”
그는 재빨리 바지의 버클을 잠그고는 내의도 입지 않고선 곧장 외투를 입었다.
“야! 너 정말 이렇게 갈 거야? 날 이렇게 두고?”
그는 레일라와의 파혼은 살면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소네트!”
하지만 소네트는 시베르를 두고 달아나듯 그렇게 방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오늘 일은 없던 거야.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내 눈앞에 뛰지 마. 더러운 여자야.”
“소네트……!”
“다시 내 눈에 띄면 죽일 거야.”
시베르가 상처받은 척하며 그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이미 그녀가 일어났을 즈음엔 소네트는 달아나듯 저택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가 완전히 나가자 시큰둥한 표정이 된 시베르가 픽 웃었다.
“우습네. 멍청하기는.”
시베르는 어젯밤 소네트가 저항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 몸에 손대면 죽여 버릴, 거야…… 이 미친 여자야.’
소네트를 만지는 것도 어려워 옷만 간신히 벗겨 둔 채 그렇게 침대 위에 널브러뜨려 두었다.
뭘 하려고만 하면 제정신도 아니면서 깨어나 날을 세우고는 물어뜯을 듯이 저항했으니까.
약의 효과 때문에 그것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저항해 봤자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씩 웃었다. 그러고는 옷만 대충 걸쳐 입고선 제 아버지인 아비에르 백작에게 곧장 이 일을 알리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