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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92)화 (92/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92화

소네트가 눈에 띌 정도로 레일라를 피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일라는 아무래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 뭔가가 진행되고 있나 의문을 가졌다.

그래도 명목상으로는 소네트를 사랑하는 약혼녀였고, 결혼식이 두 달 남은 신부였기에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라면 상단으로 갔단다.’

브루스 후작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막상 상단에 가니.

‘소후작께서는 잠시 거래처로 가셨습니다!’

해서 그 거래처라는 곳으로 갔더니.

‘오늘은 안 오셨는데요?’

그래서 레일라는 어쩔 수 없이 소네트가 제게 소개해 주었던 곳, 주소는 휴고에게 건네받았던 세레즈 브루스의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레일라는 그녀가 소네트의 이복동생이면서도 저와 비슷한 머리색과 눈 색을 가졌다는 것 때문인지 조금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실상 레일라 자신은 과거에 아프고 소문 때문에 상처받았을 때는 이 머리색 때문에 밖으로 나오기를 꺼렸다.

분홍색 머리카락은 어딜 가든 눈에 띄었다. 거기에 눈동자 색도 연해서인지 어딜 가든 주목을 받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세레즈도 비슷한 고충을 겪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새언니!”

과연 세레즈는 레일라를 보자마자 기쁘다는 듯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들어서며 레일라는 주변을 살폈다. 소네트가 해 준 것인지 평민이 살기엔 과분했고, 그렇다고 귀족이 살기엔 작은 집이었다.

“어서 와요.”

역시 아직 새언니는 어색한데.

레일라는 애써 웃으며 세레즈가 잡은 손을 꽉 잡았다. 그러고는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세레즈가 레일라를 작은 테이블 옆에 있는 나무 의자로 이끌었다.

“고마워요.”

“어떤 차를 드실래요? 홍차? 캐모마일?”

“홍차로 부탁할게요.”

그러자 세레즈는 익숙하게 물을 올렸다. 레일라 역시 그녀를 도왔다.

자연스레 주도권을 쥔 레일라는 세레즈의 잔에 먼저 홍차를 따라 주었다. 이후 제 찻잔에도 따른 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소네트가 저를 피해요. 어떡하죠?”

소네트가 저를 피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명목상 약혼녀였기에 찾는 척은 해야만 했다.

근래에 시베르와 붙어 있던 것, 그리고 키스하던 모습까지 떠올려 본다면……. 시베르에게 넘어가서 몰래 만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 초기에 했던 계획대로 소네트가 시베르와 이어질지도 모른다.

레일라를 종종 헷갈리게 만들었지만, 소네트의 인성은 원작에 충분히 나온 바였다. 그는 시베르가 평민 출신인 걸 아는 순간 증오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세레즈에겐 잘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긴 했지만.

“혹시…… 제가 들은 소문이 하나 있거든요. 여쭤봐도 될까요, 새언니?”

“아, 네. 물론이에요.”

레일라는 차를 홀짝이며 웃었다. 맛은 없는 홍차라 그런지 웃음이 잠시 사라질 뻔했다.

“새언니가 평민 출신이었다가 귀족가로 입양된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네?”

“……사실 그래서 소네트 오라버니가 피하는 걸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레일라가 당황해 그렇게 묻자 세레즈가 껄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애써 웃었다. 순박한 외모라 그런지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짓자, 레일라는 그녀에게 적의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침착해졌다.

“사실 처음엔 저도 싫어하셨어요. 다만 책임감으로 아껴 주시는 거긴 한데…… 오라버니는 병적으로 평민을 싫어하세요.”

“정말요……? 제겐 그런 티를 안 냈었는데…….”

“어쩌면 이번에 알게 된 걸지도 몰라요.”

“세레즈 아가씨는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나요?”

“새어머니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말해 주셨어요. 저는 한 달에 한 번 브루스 후작가로 가서 생활비를 받거든요.”

레일라는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평민 출신은 레일라가 아니라 시베르이건만.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평민 출신이 아니랍니다.”

“어, 어쩐지……! 새언니의 기품 있는 모습을 보면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세레즈 아가씨도 마찬가지예요. 귀족 가문 자제다운걸요.”

“정말요?”

“네.”

“다행이에요!”

세레즈 자체는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았기에 레일라는 적당히 맞춰 주었다.

“저……. 새언니.”

“네, 아가씨.”

아직 결혼하진 않았지만, 이제 결혼식까지 두 달밖에 안 남았다. 레일라의 주위 사람들은 전부 그녀를 결혼 후의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친근감의 표시이자 그녀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백작가의 영애가 후작 가문, 그것도 중앙 귀족 중에서도 귀족파 2인자의 집안으로 시집간다는 건 정말 큰일이었으니까.

“혹시 결혼하시면요…….”

세레즈가 말을 잇기 어렵다는 듯 눈을 굴리며 찻잔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이윽고 찻잔에서 떨어트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입술을 달싹이며 한숨을 쉬었다.

“저, 저도 데리고 가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사실……. 저도 귀족, 이랑 결혼하고 싶은데…….”

“아…….”

“듣기로는 브루스 후작께서 새언니를 많이 아낀다고 들어서요…… 저도 입적을 해 주시면…… 안 될까…… 해서요.”

레일라가 당황해 바라보자 세레즈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저도 반은 귀족인데…… 이렇게 살고 싶진 않고…… 저도 누리고 싶은 게 많은데…….”

레일라는 문득 세레즈가 시베르와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 기분이 이상해졌다. 시베르도 처음엔 이렇게 착했다. 처음 귀족이 되어 들어왔을 때는 제게 잘해 주기도 했고.

그동안 누리며 살지 못했던 반동일까. 과거를 레일라에게 투영하면서부터 시베르는 그녀를 괴롭히고 학대하기 시작했다.

레일라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를 빼앗고.

그걸로도 모자라 죄다 레일라 탓이라며 힐난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시베르가 아니었다. 레일라는 멋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시베르 일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두렵긴 했어도.

“아가씨는 귀족이 되면 뭘 하고 싶으세요?”

레일라는 불안함을 애써 감추며 물었다.

“집세 때문에 저를 괴롭힌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본보기를 보이고 싶어요. 집이 터무니없이 비싸기도 하고……. 오라버니가 주시는 용돈은 적기도 해서요.”

나온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그래도 반쪽이긴 해도 귀족의 피가 섞였는데, 이렇게 사는 게 안쓰럽기도 해서.

“말씀은 드려 볼게요.”

“고마워요, 새언니!”

“하지만 너무 기대하면 안 돼요. 저도 자신이 없어서요.”

“네! 감사합니다!”

단서를 붙였으나 세레즈는 레일라의 말에 안도하듯 웃었다.

그렇게 레일라는 소네트에 대한 소득 없이 아비에르 저택으로 돌아가야 했다.

불편함만 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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