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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93)화 (93/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93화

“소네트, 울어?”

“흐윽…… 레일라.”

소네트가 무너지듯 레일라를 끌어안으며 흐느꼈다. 우는 건 둘째 치고 밤에, 그것도 새벽 3시에, 문을 따고 들어온 소네트가 레일라는 조금 두렵게 느껴졌다.

거기에 그가 몹시 불안정해 보이기도 해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레이니어가 주고 간 반지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직 소네트가 제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다는 걸 떠올리며 레이니어를 부르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그녀로선 이 상황이 이상했다. 레이니어가 불쑥 제 앞에 나타날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긴장한 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나타난 것은 그녀가 슬플 때거나, 위급할 때였으니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을 때 나타나던 사람과 제 정조를 위협하던 사람 사이엔 당연히 거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소네트는 그녀에게 단 한 번도 안정감을 준 적 없었다.

오히려 그의 마음이 진심인 건지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고.

“흐윽…… 레일라…… 제발…… 나를 용, 서해……!”

“소네트, 술 마셨어? 술 냄새가 왜 이렇게…….”

그녀는 그가 말할 때 훅 풍기는 짙은 술 냄새 때문에 더 긴장했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지금은 그가 정말로 위험하게 느껴졌다.

술까지 마신, 우는 성인 남자.

그 성인 남자는 저보다 머리 하나는 큰 사람이었다. 게다가 무인처럼 몸도 커다랗고 근육질에.

결혼 전부터 아이를 만들자던 사람이었고.

“윽, 흐…….”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술에 전 냄새가 나고 있었다. 대체 몇 병을 마셨기에 그가 내뱉는 숨으로도 취할 것 같은 건지.

레일라는 그가 저를 너무 세게 안고 있어서 더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벅차서 터질 것 같은 게 아니라 정말 그가 물리적으로 폐를 터트릴 것처럼 꽉 안아서였다.

“소, 네트……. 잠시만……. 숨이…….”

“흐윽, 흐……. 레일라…….”

그는 더 세게 안기 시작했고.

“어, 얼굴 보여 줘!”

그녀가 비명을 지르듯 그렇게 말하고서야 그는 팔에서 힘을 풀었다. 레일라는 아마 계속 그대로 있었으면 갈비뼈가 부러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증거로 갈비뼈 아래쪽이 너무 아팠다. 위는 말할 것도 없었고.

“레일라…… 나를 용서해, 제발.”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지 알아야 용서를 하지.”

“레일라!”

“용서할게!”

그녀는 그가 또 꽉 안으려는 듯 팔을 뻗자 그렇게 소리쳤다. 용서고 뭐고 살아야 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이대로 또 그에게 안긴다면 갈비뼈가 다 바스러져서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녀는 일련의 상황을 생명의 위협으로 느끼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레이니어까지 나타난다면 정말 곤란했으니까.

“정말?”

“응. 정말.”

레일라는 제 대답이 떨어지자 소네트가 조금 누그러드는 걸 보며 안도했다.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약속해. 정말로 날 용서하기로.”

“그럴게. 근데 무슨 짓을…… 읏……! 아냐! 안 궁금해졌어!”

레일라는 그가 다시 자신을 껴안자 서둘러 정정했다.

“근데 어, 차피 알게 될…… 아파!”

정정이 무색하게도 다시 그가 울자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했건만.

이제는 울기만 하고 덜 세게 안아서인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언젠간 내가 알 텐데.”

“안, 안 들킬게. 그러니까 용서, 해 줘.”

“……그래.”

그녀는 그가 왜 이러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소네트가 그동안 저를 헷갈리게 한 것은 전부 시베르에 관한 일이었다. 어쩌면 시베르와 키스라도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고.

마음으로라도 바람을 피워서, 이제 결혼할 때가 다가오니 미안해진 건가 싶기도 했고.

이대로 소네트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가 제게 대체 뭘 미안해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레일라.”

“응.”

대답을 들은 그가 그녀를 놓아주며 눈을 마주쳐 왔다. 레일라는 아직도 제 허벅지 위에 앉은 채 위협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결혼 전에 아이라도 만들자. 그럼, 너도 나를 용서하게 될 거야.”

“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그래?”

“내가 널 기쁘게 해 줄게.”

레일라는 소네트가 아무렇지 않게 상의를 벗자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팍!

“거기까지.”

소네트는 목 뒤를 내리치는 사람 때문에 그대로 레일라를 누르며 쓰러졌고.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다니, 아가씨는 집도 그리 안전하지 않으신 건 분명하군요.”

레이니어는 아나시스와 있던 일 때문인지 훨씬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소네트의 뒷덜미를 잡아 바닥으로 던졌다.

“소네트가 뭘 잘못한 걸까요?”

“관심 없습니다.”

“그럼 레인은 지금 화난 걸까요?”

“예.”

그녀는 그의 묘한 표정을 보며 역시 그렇구나, 작게 말하고는 그를 빤히 응시했다.

“왜 안 웃어요? 평소에는 웃는 척 잘했잖아요.”

“더럽게 외간 사내의 상의 탈의를 본 게 너무 불쾌해서요. 거기다 아가씨가 요새 더우셔서 그런지 네글리제가 많이 얇군요.”

“아, 미안해요. 보기 민망했겠네요.”

레일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시트를 끌어 올렸다.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닙니다.”

“그럼요?”

“속상해서 말한 거죠. 제 눈에만 보인 모습은 아닐 거 아닙니까.”

레이니어의 말에 레일라는 묘하게 납득했고.

“반지도 안 썼는데 어떻게 왔어요?”

“무서워하셨잖습니까.”

“언제부터 지켜봤어요?”

“레일라……! 나를 용서해 줘! 부터요.”

그녀는 자신이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는 건 하등 쓸모없다는 걸 깨달아서 저도 모르게 볼을 긁적였다.

“애초에 왜 귀족 영애 방 앞에 호위 기사도 없는 겁니까.”

“시베르 언니 방 앞에 있잖아요.”

“지켜야 할 영애는 두 명인데 기사는 고작 둘인가요? 귀족 한 명을 호위할 때는 2인 1조가 기본입니다.”

레일라는 그가 묘하게 화가 많이 난 것 같아서 긴장했다.

“그 점에 화가 난 거예요?”

“그것만 화가 난 것 같습니까?”

레일라는 그가 지금껏 화났던 걸 몇 번 본 적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말로 표정 관리도 못 할 정도로 심각하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 이상했다.

“미안해요. 걱정시켰군요.”

사과를 해야 할 듯한 마음이 들어 건네자, 그는 눈에 띄게 누그러들었다.

“아무래도 아가씨께 제 부하들로 호위를 서게 해야겠습니다.”

“그러지 말아요. 갑자기 변하면 다들 의심할 거예요.”

“그럼 안전하지도 않은데 이대로 두란 겁니까?”

“왜 안전하지 않아요? 제가 위험할 때는 레인이 나타나잖아요.”

그녀의 말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레인이야말로 나타났으면서 왜 바로 안 구해 줬어요?”

“구해 주려 했더니 아가씨가 소네트 브루스와 이상해 보여서요. 잠시 두려웠다가 마음이 동한 건 아닐까 했습니다.”

그의 표정이 참담하게 바뀌었다. 마치 그녀의 연애 전선을 이해하는 듯 말하면서도 비참한 표정이었기에, 레일라는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레인, 저 좋아해요?”

“아뇨.”

“그럼 저 사랑해요?”

“……아뇨.”

레일라는 그가 아니라고 말할수록 더 의심이 들었다.

“정말요?”

“일단 제 방으로…….”

“말해요. 빨리.”

그녀가 추궁하는 목소리에 레이니어는 눈을 피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예, 그러니 가시죠.”

“됐어요. 소네트나 데려가요. 전 여기 있을래요.”

“여긴 발코니 쪽으로 가는 문손잡이가 박살났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주무시겠다고요?”

“거짓말쟁이랑 가는 것보다는 낫죠.”

“파렴치한 사람이 거짓말쟁이보다 낫다는 겁니까?”

“네.”

“아가씨는 왜 화가 나셨습니까.”

레일라는 그제야 저도 화가 났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말을 듣고서야 그녀는 제 기분이 왜 이런지 알 것 같았다.

“말 안 할래요.”

레일라는 감정이 요동쳐서 그런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가슴이 쿵쿵 뛰는데, 더 말하면 참지 못하고 모두 말해 버릴 것 같았다.

“저는 아가씨가 뭘 느끼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말하고 싶지 않아요. 말하면 제가 너무 한심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무슨 말을 하든 한심하지 않습니다. 한심한 건 접니다. 그러니까 제가 매번 아가씨를 놓친 거겠죠.”

“무슨…… 말이에요?”

레이니어는 순간 제가 한 말을 깨닫고는 눈을 크게 뜨며 뒤로 물러났다.

“무슨 말인지 말해 줘요.”

그가 또 손을 튕기려 하자 레일라는 재빨리 그의 손을 잡았다. 레이니어는 양손이 다 잡힌 채 흔들리는 눈빛을 보냈다.

“저는 지금까지 계속……. 이런 상황이 있다는 게 너무 슬펐어요.”

그 눈을 보자 레일라는 제가 느낀 감정을 속절없이 쏟아 냈다. 자신이 먼저 말하면 그도 말할 것만 같아서.

“레인, 저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었잖아요. 거기에 저 스스로 위험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요. 그래서 스스로가 너무 밉고 한심했어요.”

“아가씨가 왜 그런 걸 느끼십니까. 파렴치하고 몰염치한 건 아가씨에게 강요한 사람들인데요.”

“그래도 그 상황은 제가 만든 거잖아요.”

“상황을 만들었으면 강제해도 되는 겁니까? 싫다고 의사를 밝혔는데도? 그런 자들이 지금 정당하다는 겁니까?”

-우르르릉!

일순 밖에 벼락이 치기 시작했다.

-콰쾅!

아주 가까운 곳에 벼락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섬광이 번쩍이며 드러난 레이니어의 붉은 눈에 홀린 듯 레일라는 가쁘게 중얼거렸다.

“레인이 나타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그래서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녀의 말에 레이니어가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날씨는 어느새 다시 맑게 개어 버렸고.

“제가 보고 싶었다고 말해도 레인은 제게 어떤 감정도 없다고 할 거잖아요.”

레일라는 그가 인간의 인지를 뛰어넘은 무언가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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