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95화
“우리 처음을 이런 곳에서 할 순 없죠.”
“이런 곳이 어떤 곳인데요?”
“사내놈이 둘이나 쳐들어왔던 곳이죠.”
“제가 자는 곳인데요.”
“그래도요.”
레일라는 기어이 억지로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보는 데 성공했다. 레이니어는 정말로 참는 듯한 표정이었고, 그의 그런 표정을 보자 그녀는 만족감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사랑하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사랑하는데 다른 남자가 보여요?”
“아니라고 했습니다만.”
“여기가 싫으면 어디가 좋은데요?”
레이니어는 그녀가 제 말을 안 듣는 듯 듣는 것마저도 귀여워서 가슴이 너무 뛰었다. 눈을 크게 뜨며 마치 자신을 시험하듯 말하는 것도 그렇고.
현명한 사람답게 자신이 거짓말을 해도 본심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는 것도.
“좀 더, 아가씨께 어울리는 장소요.”
그는 아주 오래전, 레일라와 처음 몸과 마음을 나누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누가 침실을 이렇게 꾸며요? 정원인 줄 알았네.’
‘꽃 좋아한다며.’
그는 황제궁의 침실에 수많은 꽃을 가져다 두었다. 그녀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지금 안 하면 앞으로도 안 할지 몰라요.”
“그때에도 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도 존중해야죠. 제겐 아가씨께서 기쁜 게 제일 중요합니다.”
“처음인데 제가 기쁠지 안 기쁠지 어떻게 알아요?”
그는 그 말엔 대답하지 못했다.
“얼굴이 왜 이렇게 붉어요? 저 지금 앞에 두고 음란한 생각 했어요?”
“……예.”
그가 순순히 대답하자 레일라는 전의를 잃었고.
“그, 그래요. 잘 자요.”
“예. 아가씨도요.”
그렇게 그의 품에 안긴 채 눈을 감았다. 물론 몸을 감고 있는 시트는 불편했지만, 목 아래에 자리 잡은 팔과 머리를 받쳐 주는 푹신한 베개, 그리고 그에게서 풍기는 햇볕에 말린 내음과 살 내음 때문인지.
그녀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들지 못한 사람은 레이니어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