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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100)화 (100/108)

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100화

“모든 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레일라는 아비에르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지쳤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시종 아니고 의사로 온 거군요?”

레일라는 사용인들의 에이프런이 아닌, 의사의 흰 가운을 입고 있는 레이니어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제는 그가 그녀의 방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도, 그녀 역시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자신이 나신으로 있더라도 그가 제 허락 없이는 손끝 하나 대지 않을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달아날 사람은 오히려 제가 아니라 레이니어일 게 뻔했다.

분명, 여유로운 척 웃으면서도 한방에 계속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온 게, 안도가 들면서도 답답했다.

“이제 정말 소네트와 결혼까지 한 달 남았어요.”

그녀는 그 말을 하고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누워 버렸다.

“결혼을 깨 드릴까요?”

“아뇨. 시베르 언니와 소네트는 별다른 조짐이 없던가요?”

“조짐이 있던 걸 말하면 제게 상을 주실 건가요?”

“어떤 상을 받고 싶죠?”

“그러고 보니, 황후가 비셔스 은행에 돈을 예치하면 목욕 시중을 들게 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거 취소할게요.”

레일라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레이니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픽 웃었다.

“화도 안 나나요?”

“화가 나긴 하지만 안도도 되네요. 저는 솔직하게 말해, 아가씨의 목욕 시중만은 못 들 것 같거든요.”

“엉큼해.”

“저도 짐승 새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레일라의 옆으로 앉았다. 레일라는 그가 앉으면서 침대가 살짝 움직이자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른 소원을 빌죠.”

“들어줄 거라고 생각해요?”

“아가씨께서는 들어주시겠죠.”

그가 화내지 않는다는 게 의외로 놀랍진 않았다. 레일라라고 그가 화난 걸 본 적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매번 화가 날 때도 웃고 있었다. 티 내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웃는 건 분명했지만, 저를 두렵게 한 적은 없었고.

“아래에서 봐도 참 잘생겼네요.”

그러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이내 다시 웃었다.

“아가씨도요. 누우니 훨씬 아름답습니다.”

그가 그런 낯 뜨거운 말을 해서인지, 레일라는 조금 안정을 찾고 있었다. 요 근래 들어 소네트가 이상하긴 했다. 그런데 미리 판을 짜 둔 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걱정스러웠다.

소네트는 지금까지의 남자들과 다르게 시베르에게는 그리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그가 좋은 사람인 건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고, 중요한 순간에는 시베르의 곁에 있었다. 그러면서 저를 종종 위협적으로 대했고.

실상 소네트 정도면 괜찮은 남편감일 수도 있다. 그녀가 겪은 수많은 쓰레기 같은 남자들에 비한다면.

하지만 레일라는 정말로 결혼이 다가오자 심란했다.

어차피 귀족은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하고, 귀족의 의무만 다하면 정부를 두고 살아도 그만이었다. 그러나 소네트라면, 결혼한 뒤 저를 가둬 두고 정부는커녕 사람조차 만나기 어렵게 만들 것 같다는.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종종 농담처럼 했던 말들이 어쩌면 진심이 아닐까 싶을 때도 많았고.

“레인. 이리 누워 봐요. 레인 팔이 좀 있으면 좋겠네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레이니어가 그녀의 목 아래에 제 팔을 밀어 넣고는 누웠다.

서로를 마주 보며 누운 두 사람은 묘하게 감정을 공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가씨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요.”

“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해요?”

“저는 아가씨의 선택을 가장 존중합니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시든 좋으니 행복해지시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그가 묘하게 제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어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쩌면 서운한 것 같기도 했다.

“제가 생각하는 미래에 레인이 없다면요?”

“그러면 죽고 싶을 것 같네요.”

“그런데 왜 제게 함께 있을 미래를 말하진 않나요?”

그녀의 말에 레이니어가 그녀의 귓가를 간질이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저는 언제나 바랍니다. 그리고 아가씨가 저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옆에 있을 겁니다.”

“……정말요?”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의 반문에 레일라는 조금 안도했다.

“만약 제가 소네트랑 결혼하기 싫다고 결혼식장에서 달아나자고 하면요?”

“그럼 같이 달아나야겠네요.”

“그럼…… 제가 레인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하면요?”

“저처럼 조신하고 괜찮은 남자가 별로 없긴 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레일라가 그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어쩐지 가슴이 콩콩 뛰는 것 같았는데, 제 심장 소리 이외에도 그의 쿵쿵 뛰는 요란한 심박도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요?”

“저는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준비만을 해 두었죠.”

“그럼 황제가 되면 다를까요?”

“네. 그때는 아가씨께 어울릴 사람일 것 같습니다. 아니, 그때도 어쩜 부족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말에 레일라는 손끝으로 레이니어의 입술을 훑었다.

“저한테 그렇게 예쁘게 말해도 좋을 일 없어요.”

“지금도 너무 좋은데 더 좋을 일이 또 있겠습니까?”

그의 말에 레일라는 픽 웃었다.

“제 손가락 먹어 볼래요?”

그녀의 말에 그가 레일라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이로 자근자근 씹더니 이내 입술로 훑었다.

“어떤 맛이에요?”

“좀 더 먹어 봐야 알 것 같은데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레일라의 허리를 꼭 안으며 그녀에게 안겼다.

레일라는 그런 그의 머리통을 안았는데, 그의 귀가 제 심장 바로 위에 있어서 숨 쉬는 게 조금 버거웠다. 그러나 그대로 꼭 안은 채, 그가 주는 안정감을 기억하려 하고 있었다.

“레인은 황제가 되면 후궁은 몇이나 들일 거예요?”

“후궁을 들일 바엔 평생 홀로 살고 말죠.”

그녀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나 이내 그가 입을 맞춰 오자, 그게 진심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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