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남주는 필요 없어 105화
“이상하구나. 네가 아비에르 백작가로 들어간 건 최근일 텐데.”
황제는 레이니어를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너는 어릴 적부터 찾는 여인이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어릴 적부터 좋아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요.”
“얼마나 오래전?”
“모르겠네요. 한 8천 년 정도 되지 않았으려나요.”
“허허허. 농담도 못 하는 녀석이 어울리지도 않게 농담을 하느냐.”
그러면서도 황제는 제 아들의 농담이 재밌다는 듯 자애롭게 웃었다. 그만큼 마음에 드는 여인이란 것일 테고.
황제는 제 아들을 믿었다. 제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을 닮은 아들이었고, 그 아들은 번번이 황제를 도왔다. 비록 음지에서, 그가 살아 있다는 걸 숨겨야 했으나 황제는 제 아들의 유능함도 믿고 있었다.
“얼마나 사랑하느냐?”
“저보다 더 사랑해요. 그녀가 죽으면 저도 죽고 싶을 만큼요.”
“이놈. 아비 앞에서 그게 할 소리더냐?”
레이니어는 제 아버지의 수명을 알고 있었기에, 더 그렇게 말했다. 안심하고 보내 드릴 수 있기를 바랐으니까.
“어쩌면 그녀가 황좌를 달라고 하면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반드시 주겠죠.”
그러자 황제는 그의 예상대로 안도하듯 레이니어를 바라보았다.
“내가 로즈를 그렇게 사랑했었다.”
로즈는 레이니어의 어머니 이름이었다. 그가 회귀하면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어머니.
“역시 저는 아버지를 닮았나 봅니다.”
“우리 둘을 닮았지.”
황제가 앙상하고 마른 손으로 레이니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혹시 황궁에 한번 데려올 수 있겠느냐? 얼굴을 보고 싶구나.”
“어렵진 않을 겁니다.”
“그래, 꼭 보여 주려무나. 그래야 이 아비가 안심할 수 있겠구나.”
레이니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참고로 지금은 소네트 브루스랑 약혼한 사람입니다.”
“……뭐?”
“사정이 있어서요.”
황제는 그 말에 무언가 단단히 꼬여 있다고는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제 유능한 아들이라면, 제가 갖고 싶고 포기할 수 없는 걸 놓칠 리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래. 이 아비는 널 믿는다, 내 사랑하는 아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언젠가는 이해하게 되리라 믿으며 그렇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