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7화 (7/85)

〈 7화 〉 1. 1차 튜토리얼

* * *

[손에 창이 들려 있습니다.]

[검투사 창술(하급)이 발동됩니다.]

[체력+5, 근력+5, 민첩+5]

[창의 움직임이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검투사의 의지(특수)가 발동됐습니다]

[적이 죽지 않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창을 휘두르게 됩니다.]

“으음, 뭔가 방송시스템을 먼저 봐서 그런가. 감흥이 없네요. 역시 선생님들의 방송 권능이 최고입니다! 하하하!”

­ 미션석세스: ???: 고블린의 무기에 스킬이 들어있어서 빈 슬롯을 어쩌고저쩌고~

­ 인방인생하급신: ㅋㅋㅋ 고블린들의 무기에 스킬이 잠들어있었는데요? 우연히 상점에서 구매한 무기에도 스킬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응 그럴 리 없죠? 또 잘못된 설명 이였죠?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 여신따먹고싶다: 시발! 지랄 났다! 정하영!

­ 낭만검객: 시2발 ㅋㅋ 대체 제대로 아는 게 뭐냐. 너 소설 제대로 읽기는 했냐?

하영은 눈을 뜬 장소에서 본 메시지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본 탑의 시스템에 두 눈을 깜빡였다.

소설에 들어온 게 실감이 난다거나, 이렇게 가까이에서 나만 볼 수 있는 창에 신기함을 느끼기에는 이미 더한 것을 본 후라 그런 거 같았다.

“그래도 내가 강해 졌다는 건 알겠어.”

하영은 삼지창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고 있으면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갔었는데, 이제는 큰 힘을 주지 않아도 창을 들 수 있었다. 이상했다.

하영은 하급 스킬치고 너무 좋은 스킬의 성능에 의문을 느꼈다.

“하급 스킬이 이렇게 능력치를 많이 올려주는 건 처음 보는데.”

주인공이 가성비 스킬이라며 챙겨갔던 하급 스킬마저, 증가시켜주는 능력치의 총합이 10인 판국에, 이 스킬은 총 합이 무려 15였다.

평소라면 좋은 게 좋은 거로 생각하며 넘어갔겠지만, 소설 속에서 특수 스킬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 터라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찜찜했다.

게다가 검투사 창술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은 스킬이 아닌 터라 더욱 그랬다.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라 주인공인 이원혁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 낭만검객: 지랄하지 말고 빨리 대답하라고 씹년아. 언제까지 생각만 처 할 건데.

하영은 찝찝함을 털어 버리기 위해 창을 강하게 휘둘렀다.

슝, 조금 전에 창을 휘둘렀을 때는 잘 들리지 않았던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을 가르는 시원한 소리에 하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영은 한눈에 봐도 성장한 자신의 힘에 감탄을 터트렸다.

“와, 치유 스킬에 이 정도 힘이면 굳이 동굴로 돌아갈 필요 없겠는데요?”

하영은 스킬에 이상함을 느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변화한 육체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작은 몸통에서 이런 힘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의문이 들 정도로 온몸에서 힘이 넘쳐흘렀다.

지금이라면 고블린과 싸워도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잠깐, 고블린?’

하영은 고블린이 이제 막 생성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고블린, 초록색 소인으로 성욕이 강해, 종종 다른 종족의 여성을 범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자, 즉 고블린은 적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머리가 알 수 없는 고양 감으로 가득 찼다.

[고블린은 적입니다.]

[주변에 적이 있습니다, 적을 처치하십시오.]

온몸의 피가 끓어올랐다.

창을 들고 있는 하영의 손이 작게 떨렸다.

빨리 이 창을 적에게 휘두르고 싶었다.

“아……”

하영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폭력적인 감정에 당혹감을 느꼈다.

그러나 당혹감을 덮고도 남을 만한 큰 투쟁심이 같이 피어올랐기에 당혹감은 금방 사라졌다.

적을 죽이고 살아남는다.

살아남으려면 적을 죽여야 한다.

적을 죽여야 안전한 장소가 만들어진다?

“이건 또 뭔…!”

하영은 창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최소한의 정신은 유지하려 애썼으나, 고블린이 적이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몸과 마음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창, 창을!”

뒤늦게 창을 던지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이 하영을 완전히 잠식했다.

“아….”

감정이 고조되어 폭발하려던 그 순간, 화살이 하영의 머리 근처를 스쳐 지나갔다.

하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고블린이었다.

활을 든 고블린 한 마리와 돌멩이를 들고 있는 고블린 두 마리, 총 세 마리의 고블린이 눈에 들어왔다.

“고블린.”

고블린과 마주한 순간부터 심장이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전신의 혈액이 마구 요동쳤다.

동시에 시야가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점처럼 보이던 동굴이 보이지 않았다.

고블린의 옆에 있던 나무가 자취를 감췄다.

내 눈앞에 있는 풀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

주변 풍경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고블린만이 내 눈에 비췄다.

하영은 몸이 시키는 대로 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제일 앞에 있는 고블린에게 던졌다. 동시에 하영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슝, 빠르게 날아가는 삼지창의 뒤를 하영이 쫓는다.

“키엑!”

멍청하게 서 있던 고블린 한 마리가 창에 맞았다.

창에 몸이 꿰뚫린 고블린은 비명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다 숨이 끊어졌다.

하영은 고블린이 죽는 모습을 보며 황홀감을 느꼈다.

이 황홀감이 계속 유지됐으면 했다. 하지만 황홀감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빠르게 줄어들었다.

초초함에 하영의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다.

다리가 그만 달리라고 고통을 호소했지만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투에서 상처를 입는 건 당연하니까.

“키엑!”

활을 든 고블린이 하영의 접근을 막기 위해 열심히 화살을 날렸다.

하영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화살을 피하며 빠르게 접근해갔다. 화살이 스쳐 지나가도 절대 멈추지 않았다.

“키엑! 키엑!”

살육만을 위해 살아가는 악귀 같은 하영의 모습에 겁먹은 고블린은 마구잡이로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슈웅.

고블린의 눈먼 화살 중 하나가 하영의 왼쪽 눈을 노린다.

하영은 이번에도 최소한으로 몸을 움직여 피하려 했지만, 몸의 속도가 마음처럼 따라 주지 않았다.

“큭.”

결국 화살이 왼쪽 눈 위로 스쳐 지나갔다, 지나간 자리에서 곧바로 피가 흘러나왔다.

하영은 눈에 피가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왼쪽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고블린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눈에 상처를 입긴 했으나 성공적으로 고블린에게 접근한 하영은, 죽은 고블린에게서 창을 빼냈다.

촤악, 창이 고블린의 몸에서 나오는 것과 동시에 주변으로 대량의 피가 튀었다.

주변에 있던 탓에 옷에 꽤 많은 피가 튀었지만 하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적의 피를 봤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돌을 들고 있는 고블린은 그런 하영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다.

저건 악마였다, 우리를 죽이기 위해 지옥에서 온 악마.

고블린은 돌마저 던져버린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키, 키엑!”

활을 든 고블린이 도망치는 고블린에게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입이 움직이는 것보다 먼저 하영의 창이 고블린의 머리를 꿰뚫었다.

후우,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는 하영.

이번에는 처음 창을 던졌던 순간을 교훈 삼아 움직이는 적에게 투창을 시도했다.

“흡!”

도망치는 고블린을 삼지창이 바짝 뒤쫓았다.

“키엑!”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기며 이동하던 고블린의 다리 한쪽이 날아갔다.

하영은 다리가 잘려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고블린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키에엑! 켁! 키에엑! 켁! 키에엑! 켁!”

실성한 사람처럼 하영을 보며 무어라 외치고 있는 고블린, 하영은 망설임 없이 주변에 떨어져 있는 창을 들고 고블린의 목에 박아 넣었다.

[적으로 지정된 이들은 모두 토벌했습니다.]

[첫 전투 보너스]

[검투사 창술(하급)이 검투사 창술(중급)로 진화합니다.]

[검투사의 의지(특수)가 On/Off 가 가능해졌습니다.]

[손에 창이 들려 있습니다.]

[검투사 창술(중급)이 발동됩니다.]

[체력+10, 근력+5, 민첩+5]

[창의 움직임이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

“…시발 사람을 뭐로 보는 거야.”

정신을 차린 하영은 시스템 메시지를 욕을 내뱉었다.

검투사 창술, 하급치고 말도 안 되게 능력치를 올려줘서 당첨 스킬을 얻었나 싶었더니,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하자 스킬이었다.

“…미치겠네.”

하영은 상처가 남은 왼쪽 눈가를 만졌다.

금창약을 발랐음에도 상처는 낫지 않고, 피는 계속 흐르고 있었다.

“최하급이라 그런지 효과도 별로 없네, 하. 하하.”

상처에서 느껴지는 쓰라림에 하영이 손을 뗐다. 그러자 상처에서 피가 더 나왔다.

피는 하영의 손가락을 타고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통증 완화스킬을 뚫고 나오는 아픔과 끝없이 흘러내리는 피, 왼쪽 눈을 실명할 뻔했다는 게 뒤늦게 실감이 됐다.

“생명을 건 전투는 무섭네요. 선생님들.”

현대에서 평범하게 살던 하영으로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런데 선생님들. 이거 저만 그런가요? 아니면 전투를 처음 겪은 사람들은 다 똑같나요? 왜 기분이 좋죠?”

피가 묻은 하영의 손이 작게 떨렸다. 전투로 인한 두려움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은 좋았다. 좋아도 너무 좋았다.

인간과 비슷한 생명을 해쳤음에도, 스킬을 꺼버렸어도 아직 남아있는 전투의 여운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더 강한자를 죽이고, 피를 묻히고, 피를 흘리고 싶었다.

애써 침착하게 말하려 해도 고양감에 말이 많아진다.

“선생님들. 선생님들? 하하하. 이거 이상한데요? 너무 두려워요.”

하영이 두 손으로 자기 머리를 끌어안았다.

무서워졌다. 큰 상처를 입을 뻔했어도 미소를 짓는 나의 얼굴이, 느껴지는 열기가. 그리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 상황이.

“이상해요. 이상해. 선생님들 이거 이상해요. 무언가 잘못된 거 같아요.”

기억 속의 내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기억 속의 나와 다른 행동을 하면. 그건 정말 내가 맞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섬뜩함에 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양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렵고 섬뜩한데 기분이 좋다.

“와 진짜 여러분 이거 보세요, 눈 없어질 뻔한 거.”

하영은 상처 자국이 남은 눈을 매만지며 억울한 척 시청자들에게 호소했다.

­ 야스마스터님: 아니 단점을 보완했으면 됐지, 뭐 이렇게 오래 억울해 하냐.

­ 방송계의유니콘: 고블린이 너무 불쌍해ㅠㅠ

­ 아가리롤스타: ?? 고블린이 뭐가 불쌍함, 나는 하영이의 눈이 실명되는 줄 알고 얼마나 식겁했는데.

­ 방송계의유니콘: 내가 언어 좀 하는데 마지막에 죽은 고블린 암컷 범한다! 라는 말만 반복하다 죽음ㅠㅠ

­ 미션석세스: ㅋㅋㅋ 아니, 다급하게 외치길래 살려 달라 하는 줄 알았는데 씹 ㅋㅋ 고블린의 생존 본능은 성욕이었누 ㅋㅋ

­ 꿀벌아넣을게: 됐고 빨리 동굴로 가자. 나 걔네들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 닉네임은10글자까지: 다 죽어있으면 레전드.

­ 미션석세스: ㅠㅠ 죽은 고블린을 위한 미션 건다, 죽은 고블린과 야스하면 1,000골드.

시청자들의 채팅을 본 하영이 허탈하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 하. 하하하! 하하하하!”

영구 신체 결손이라는 위험한 일을, 반강제로 당할 뻔했음에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이런 방송이 한국에 있던가? 아니 없다.

[주의: 정신력이 0이 되었습니다. 휴식을 권고 드립니다.]

여긴 한국이 아니다. 그리고 난 내가 아니다. 내가 쌓아온 것들도, 가치관도 모두 쓸모없다.

여긴 그런 곳이다.

­ 낭만검객: 고블린에게 몸 줄 거면. 나한테도 좀 대주면 안 되냐?

­ 꿀벌아넣을게: 올ㅋ 하영이 싸움 좀 하네. ㅇㅈ

­ 야스마스터: 내가 먼저 예약했다. 검객 씹년아~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막 태어난 아이나 다름없다.

이런 곳에서 날 이끌어줄, 키워줄 사람은. 아니 존재는…

“선생님들…”

­ 모든것은순리대로: 힘에 취하는 것은 좋지. 그러나 약한 힘에 취하는 것만큼 꼴불견인 것은 없으니. 내 낭자에게 특별히 도움을 주겠소. 오늘 죽인 고블린 한 마리당, 창술의 기초를 하나 알려주도록 하지.

적응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끝난다. 죽음으로도 도망치지 못한다.

이게 내가 살아가야 할, 생존해야 할 세계다. 믿을 건 방송밖에 없는 내가 생존할 방법은.

“선생님들… 저희 고블린 좀 더 죽이다 갈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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