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8화 (8/85)

〈 8화 〉 2. 그녀가 골드를 버는 방법.

* * *

난 내가 방송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영에게 빙의 된 순간, 채팅을 보고 느꼈던 내 솔직한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혼란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고, 혼란했던 감정은 점점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는 어설프지만, 최대한 방송을 해보려고 열심히 발버둥쳤다.

결과는 매우 좋았다.

현대에서 방송에서 봐왔던 그대로 따라만 해도 주어지는 달콤한 보상들.

우연히 얻은 것이 생각지도 못한 이득을 가져오는 선순환의 반복.

상황이 좋게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이 방송의 시청자는 내 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 생존게임좋아요: 탑등반 한다 해서 왔습니다, 현재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나요?

­ 낭만검객: 뉴비 어서오고.

첫 전투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청자들이 많이 악질이긴 해도, 위험한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해줄 것이라고.

내 자신을 버리지 않더라도 열심히 방송하면 아무것도 잃지 않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아니었다.

모두 잘못된 생각이었다.

­ 미션석세스: 아 뉴비가 꼴잘알 고블린을 봤어야 했는데 ㅋㅋ

­ 야스마스터: 그만큼 썅년이 꼴린다는 거지.

­ 생존게임좋아요: ㅠㅠ 아쉽네요, 이전에 보던 애가 쫌 더 빨리 죽었으면 봤을 텐데.

­ 낭만검객: 아ㅋㅋ 그럴 수 있지, 앞으로라도 놓치지 마셈 애 하는 거 보면 개꿀잼임.

­ 꿀벌아넣을게: 앞으로 놓치기는 뭘 놓쳐 오늘 방송 첫날이야 병신아 ㅋㅋ

새로운 시청자가 다른 시청자와 대화하는 평범한 상황에서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에 방송을 진행하던 사람이 빨리 죽었어야 했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방송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송하는 사람이 플레이하는 게임 캐릭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동시에 채팅이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이해가 됐다.

저들은 생존 방송을 하는 방송을 보는 게 아니라, 생존 방송을 하는 게 컨셉인 게임의 중계방송을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채팅이 이렇게 지저분한 거였다.

수위 높은 채팅방에서 게임 캐릭터에게 섹드립 한다 해서 뭐라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아니라고? 아닌 게 아니다. 실제로 나를 욕하는 건 괜찮아도 천신이라는 존재는 욕할 수 없다. 아마 섹드립도 마찬가지겠지.

지금까지는 이 악물고 모른척했지만, 이게 현실이다

­ 낭만검객: 빙의 1일 차임, 그런데 소설 속에 빙의했다는 듯.

­ 생존게임좋아요: 와 듣기만 해도 개꿀잼이네요, 더 설명 좀 해주세요. ㅋㅋ

­ 꿀벌아넣을게 : 방장아 저 머저리 뉴비에게 현재 상황 설명 좀 해줘.

하영은 멍하니 올라오는 채팅들을 바라봤다.

새로 들어온 시청자가 하는 채팅을 보고, 처음 보는 게임을 하고 있는 스트리머의 방송에 들어와 무슨 게임이냐고 묻고 답하던 내 모습이 겹쳤다.

“아.”

하영은 이곳에서의 자신의 첫 기억을 되돌아봤다.

뭔가 익숙한 채팅들의 연속, 난 그걸 처음 본 순간 내가 알던 것을 발견하고 환호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환호할 것이 아니었다.

현실에 지쳐 TV를 보지 않게 된 내가 본 방송이라고는 평소에 취미로 즐겼던 게임에 대해 방송하는 게임 스트리머 뿐이었으니까.

찰칵, 모든 퍼즐이 서서히 맞춰지기 시작했다.

­ 생존게임좋아요: 와, 무슨 상황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방장님 외형이 되게 귀엽고 예쁘게 잘 뽑힌 건 알겠네요! ㅋㅋ 운이 좋으신 듯.

미친 소리를 자연스럽게 하는 이들이다, 아침에 올라오던 채팅과 별다를 바 없다. 분명 그럴 터인데.

왜,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 여신따먹고싶다: 이 방에 일찍 들어온 너도 운이 좋은 듯, 이 집 컨텐츠 맛집임 ㅋㅋ

­ 낭만검객: 솔직히 애가 좀 어리바리하긴 한데 재미있는 건 ㅇㅈ.

­ 야스마스터: 재미있는 게 아니라 야스하고 싶은 거겠지 ㅅㅂ련아 ㅋㅋㅋ

가끔씩 무섭다고 생각했던 채팅들이 재밌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해하려 할 땐 이해 못 했던 그들의 감정이 조금이 남아 이해가 됐다.

그들에게 나는 엔터테인먼트다. 쉽게 즐길 수 있는 오락적 여흥 거리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좋다고 웃으며 기부를 요구하는 것, 이 모두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유흥 콘텐츠다.

저들에게 있어서 나는 방치형 게임의 게임캐릭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난 무사히 적응을 마쳤다. 생존할 최소한의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다.

***

­ 낭만검객: 야야, 뉴비 시청자 나가겠다! 빨리 설명해!

대답을 재촉하는 채팅, 하영은 손에 들린 창을 휘두르며 말했다.

“…아니, 하루 동안 열심히 굴러서 심신이 지친 사람한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라는 건 좀…

­ 닉네임은10글자까지님이 100골드 기부.

뉴비, 환영, 설명, 필요. 빨리.

"아. 선생님 그러시면 제가 뭐가됩니까!"

설명을 재촉하는 기부에 하영의 눈이 흔들렸다.

시청자들이 나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 온건, 내가 주인공인 생존 게임에 몰입하기 위해서다.

즉 이번에 들어온 시청자는 방송에 몰입하여 내게 즐거움을 찾고 싶어 한다.

‘시청자 뽑기 운이 좋네.’

막말로 지금 당장 내가 억울하게 죽어도 저들은 아무 상관없다.

새로운 게임 방송을 찾듯이 새로운 유흥거리를 찾으러 가면 되니까.

하지만, 나는 죽으면 그대로 끝이다. 그 뒤는 영원한 노리개 엔딩 하나뿐이다.

“아이고 통큰 첫 기부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영은 동굴로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창을 휘두르는 것도 중단했다.

깨닫고 보니 주변은 이미 완벽히 어두워졌다.

현대의 지구라면 지금도 낮처럼 빛으로 넘쳐나겠지만, 이곳은 내가 살던 지구가 아니다.

“큼. 큼 그러니까 말이죠?”

하영은 목을 가다듬으며 슬며시 주변을 둘러봤다.

벌레 소리는커녕 자그마한 인기척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벌레 소리 하나 나지 않는 밤의 숲.

이 말이 안 되는 상황에 낯선 곳이라는 것이 확 와 닿았다.

­ 야스마스터님이 100골드 기부.

나도. 궁금. 설명. 빨리.

“아 이것 참. 이렇게까지 원하면 어쩔 수 없죠. 하하.”

하영은 기부 메시지를 보며 쓰게 웃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거다.

“저는 소설 속 썅년으로 빙의 됐습니다.”

하영은 새로 들어온 시청자를 위해서 열심히 입을 움직였다.

기존에 했던 것들은 물론, 설명하지 않았던, 속으로만 생각했던 미래의 이야기도 설명했다.

그래야지 시청자들이 썅년이 생존하는 이 게임방송에 조금이라도 몰입을 더 할 수 있을 테니까.

“제가 진행 중인 1차 튜토리얼은 30일 동안 생존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는데요.”

“30일마다 생존한 모든 이들이 탑의 1층으로 옮겨짐과 동시에 새로운 인원이 들어와요”

­ 생존게임좋아요: 바로 다음 애들이 들어오는 구조?

“네, 그리고 썅년이 321번째 소환, 회귀한 주인공이 322번째 소환이라 저는 빠르게 탑을 올라가야 합니다.”

­ 생존게임좋아요: 와, 촉박해서 꿀잼이겠다 ㄷㄷ

­ 낭만검객: 아니 ㅅㅂ 이 재밌는 걸 지 혼자만 알고 있었네.

­ 꿀벌아넣을게: 아ㅋㅋ 알고 싶으면 성의(골드)를 보이라고.

하영은 채팅을 읽어 보며 궁금한 것들을 친절히 하나하나 말했다.

그때 귓가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뜻하면서도 듣기 좋은 미성에 하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 아가리롤스타님이 10,000골드 기부.

하영아 멘탈 잡자. 우리 이제 시작이다. 함 가보자.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 채팅을 보고 상황을 이해했다. 이건 날 응원하는 거다.

­ 아가리롤스타: 다른 방송 염탐해보니 방송 기본 설정이 10,000골드부터 음성 기부가 가능하더라고.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해도, 이미 무너져버린 마음으로는 이해 못 할 상황, 하영은 잘 적응한 것에 시청자가 크게 만족한 것이라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 낭만검객: 이 새끼는 아까부터 계속 스윗한척하네 ㅅㅂ련 ㅋㅋ 외형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냐?

다른 채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아가리롤스타: 응 내 맘, 내 골드 쓰는 재미야. 꼽으면 꺼저~

­ 낭만검객: ㅋㅋ시발.

이들이 나를 단순한 유흥거리로 본다면, 나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유흥거리를 주면 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나는 힘을 더 얻지 못할 테고 그렇게 되면. 주인공에게 잡힌다.

잡힌 후에는? 소설대로 온몸을 유린당하다 고기 방패로 쓰이고, 이후 분양되거나 영원한 노리개 엔딩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유흥거리를 찾아만 준다면.

인간성과 내 성 정체성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부분을 남기고 다 버린다면.

나 역시도 시청자들에게 맞춰 이 몸이 평범한 게임 캐릭터라고 사고방식을 바꿔버린다면.

탑을 끝까지 올라서 지구로 귀환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 아가리롤스타: 하영아 내일 너 한도 돌아오면 또 쏴줄게. 힘내자.

가능하다. 아가리롤스타같은 마음씨 좋은 큰손 시청자만 잘 유지 시킨다면.

­ 아가리롤스타: 이제 동굴 쪽이나 보러 가자.

아가리롤스타의 채팅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가장 골드를 많이 가져다주었으니까. 오늘은 그의 말이 진리고 정답이다.

­낭만검객: 고블린 더 안 잡음? 솔직히 창술 조언 듣고 실력 좀 좋아진 거 같은데.

“꼽으면 아시죠?”

­ 낭만검객: ㅋㅋㅋㅋㅋㅋ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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