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9화 (9/85)

〈 9화 〉 2. 그녀가 골드를 버는 방법.

* * *

은은하게 빛나는 달빛을 이정표 삼아 동굴로 향하면서, 정하영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보았다.

시청자들이 내 상황에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현재 상황을 공개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내 행동을 보고 대충 이렇겠구나 하며 나를 이해하려던 시청자들이 내게 더 친근함을 보일 테니까.

‘그렇다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야.’

시청자들은 이제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절박한지, 나에게 그들이 주는 골드가 무슨 가치를 지니는지.

‘이제 시청자들에게 절대 휘둘리면 안 돼.’

내 약점은 전부 드러낸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기 시청자들의 대부분은 나를 인형 삼아서 놀고 싶어 한다. 이는 내가 주도권을 저쪽에 넘기는 순간 큰 문제로 돌변할 것이다.

‘유흥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주도권을 넘기지 않으며 골드를 최대한 뽑아내야 한다.’

나는 골드가 필요하다. 어떻게든 골드로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 나는 소설을 읽어서 알고 있다, 이 몸에 재능은 없다.

주인공이 어떤 몬스터를 1마리 잡아 능력치가 오른다면 나는 같은 100마리를 잡아도 능력치가 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하나 정도는 오를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성장해서는 도망칠 수 없다. 평범하게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평범하게 탑을 올라간다면, 탑을 클리어하기는커녕 중층도 넘기지 못하고 주인공에 잡힐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답은 간단하다. 시청자에게 기부를 유도하면서도 주도권을 넘기지 않을, 방송 컨텐츠가 필요하다.

‘말은 참 쉬운데…’

하영은 시청자들에게 절대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골드를 뽑아낼 콘텐츠를 생각하면서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현대에서 하영이 꿈꿨던 방송은 이런 게 아니었다. 시청자들하고 함께 하하 호호 웃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 그런 방송을 원했다.

그러나 그건 이제 불가능한 꿈이다.

하영은 독해져야 한다. 시청자와 웃으며 즐기는 방송은 안 된다, 서로 교감을 하며, 시청자가 원할 때 받는 적은 양의 골드로는 턱도 없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골드의. 골드를 위한 방송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방송에 게스트는 필요해도 동료는 필요 없다.

“아니, 대체 혼자 어디를 갔다 왔기에…”

동굴 입구에 서 있던 금태양이 말을 걸었다.

금태양의 너머로 환한 빛이 보였다.

금태양은 꽤 오래 나를 기다린 듯, 동굴에 기대어 서 있는 상태였다.

역시 저 금태양은 보기와 다르게 의리가 있는 남자였다. 아니, 오히려 저렇게 생겨서 의리가 있는 건가?

하영은 금발 태닝 양아치의 모습을 한 양아치를 보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뒤늦게 제정신을 차리고 이곳에 온 이유를 처리하기로 했다.

“옜다!”

하영은 창을 들지 않은 손으로 잡고 있던 활을 양아치에게 던졌다.

“우왓, 뭐야 이…… 어?”

금태양은 자기에게 날아온 활을 잡고 당황하다가, 허공을 쳐다보며 얼떨떨한 소리를 내뱉었다.

스킬을 얻었다는 시스템 메시지를 받은 것이 분명했다.

하영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금태양이 무기를 잡은 적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걸로 미안했던 마음의 빚은 무사히 갚았다. 이제 우리는 남이다.

“금태양, 동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나 좀 해줘 봐.”

하영은 동굴의 입구로 걸어가면서 금태양에게 물었다.

“어, 어… 그, 그러니까.”

금태양은 아직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당황한 게 남아있는 듯 말을 떨었다.

하영은 그런 금태양을 보며 차분히 기다렸다.

“저희 생각보다 동굴이 꽤 깊었어요, 솔직히 한 5분만 걸어가도 끝이 보일 줄 알았거든요.”

금태양은 활을 당기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경어로 대답을 하는 거 보니 내가 선물한 활과 능력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한 30분 정도 지났나? 그때쯤 메시지와 함께 고블린이 나타났어요, 처음에는 다들 당황해서 좀 맞았는데. 그 마음에 안 들었던 놈, 그놈이 나서서 고블린을 죽이고 반전이 시작됐어요.”

활을 당기는 시늉하다가 생긴 빛의 화살에 금태양이 깜짝 놀랐다.

크흠, 금태양은 기침으로 무안한 상황을 날려버린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시에 짱돌로 고블린의 머리를 내려쳐 고블린들을 잡고 있었는데, 그놈은 무기 하나 없이 고블린을 잡았어요. 나중에 상황이 끝나고 하는 이야기를 듣자하니 어려서부터 운동 삼아 여러 무술을 배어왔다더라고요.”

“그래서 뭐가 반전인데.”

하영의 말에 양아치는 그때의 상황을 재현이라도 하려는 듯 활을 검처럼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 그 뭐냐. 아! 검! 장검을 들고 나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고블린을 잡아도 꽤 고전했던 놈이 검을 잡자마자 돌변해서 학살하는데… 어우 저는 무슨 무협지에서 나오는 검귀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막 검을 휘두르는데!”

“휘두르는데?”

말을 따라 하는 소리에 금태양의 말이 끊겼다.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친절하지만 어딘가 꺼림칙한 남자의 목소리. 하영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녕, 꽤 많이 다친 거 같은데. 어서 동굴로 들어가자.”

동굴의 반대편에 있는 수풀에서 나온 서준영이 하영에게 말했다.

“으음.”

하영은 그의 모습에 침음을 삼켰다.

흐트러진 복장 하며 왜소한 체격의 여자를 한 손에 껴안고 있는 것이, 풀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강 알 거 같았다.

“거절할게.”

하영은 여자에 대한 욕망을 낮에서부터 서서히 풍기던 서준영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그도 결국 현실을 맛봐 버렸나 보다. 아니, 적응한 건가? 잘 모르겠다.

“후회할 거야. 하영아.”

서준영이 비릿하게 웃으며 하영의 몸 구석구석을 쳐다봤다.

그는 아침과 다르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출했다. 아무래도 고블린을 잡고 얻은 검으로 스킬을 얻자,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린 듯했다.

하영은 그런 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럴 수도 있겠네.’

특별하게 살다 이상한 곳으로 끌려왔다, 그러다 자신이 배워온 것들로 어려운 상황을 해결했다. 그런 모습에 여성도 꼬인다. 쌓여가는 보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다 해결 가능할 것 같다.

‘자신이 무슨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지겠지.’

그러나 그도 탑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진짜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 전까지의 나처럼.

하영은 밀려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준영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을 무시하는 줄 알았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흐 하하! 그래 정하영 네년은 대학교부터 그랬지. 뭐든지 다 자기 밑이라는 듯 도도하게 사람들을 노려보고 다녔어.”

준영이 하영의 찢긴 티셔츠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애도 정하영에게 꽤 쌓인 게 많았나 보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 강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이런 세계 와서도? 정말 이전과 같을 거 같아?”

하영은 준영의 말을 무시하고 동굴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 준영이 소리쳤다.

“그래! 너도 결국 사람이야! 정하영! 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들여! 나의 여자가 되라 이 말이다!”

하영은 준영을 째려보고 있는 금태양을 지나쳐 동굴의 내부를 살펴봤다.

입구에서 좀 떨어진 곳에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금태양 너머로 보이던 환한 빛의 정체는 모닥불이었군.’

아마도 내가 간 이후, 동굴 밖에서 남아있던 사람들이 자신들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근처에서 장작을 모아 동굴 탐사가 끝난 후 불을 붙였나 보다.

‘내가 적응한 사이에 이들도 적응한 건가.’

쓸모없으면 버려진다, 이곳에서는 우리를 지켜주던 법이 없다. 이 사실을 그들도 전부 깨달았다.

‘크게 다친 사람은 없나 보네.’

동굴 내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점점 많이 들려왔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밝은 분위기는 아니어도 침울한 분위기는 아니다.

하영은 바지에서 고블린에게 입은 상처를 치유하다 남은 금창약을 꺼내 동굴 바닥에 놔뒀다.

큰 손해를 보며 남을 도와줄 정도로 정의감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최소한 사람의 도리는 지키고 싶었다.

“그럼 난 이만.”

하영은 자신의 뒤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인사한 후 동굴 밖으로 몸을 돌렸다.

“이게 미쳤나,

몸을 돌리고 걸음을 걷기도 전에 하영의 어깨에 준영의 손이 올라갔다.

“하, 평생 차여본 적 없는 완벽한 나를 대학교에서도 차 놓고 또 내 말을 무시해? 진짜 죽고 싶냐 정하영?”

하영은 그건 내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제정신일 때도 못 믿을 말을 이미 맛이 가버린 사람에게 해봤자 소용이 없을 거라는 걸 깨닫고, 말없이 손을 치웠다.

준영은 하영의 모습에 화가 잔뜩 난 듯했지만,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굴 내부에서는 뭐라 소리칠 자신이 없는 듯,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하영을 처다만 봤다.

다른 사람과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 아직 모든 사람에게 본성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내 완벽한 인생에 두 번이나 오점을 남긴 건. 언젠가 갚아 준다. 기다려라 정하영.”

하영이 준영과 스쳐 지나갈 때, 하영의 귓가에 준영이 작게 소곤거렸다. 하영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응 아니야. 넌 내가 탑 오르는 속도 못 따라와.”

­ 꿀벌아넣을게: 지금 싸우면 질까봐 조용히 중얼거리는 거 봐 ㅅㅂ 뒤끝 미쳤네. 이 정도면 집착임 ㅋㅋ

­ 방송계의유니콘: 처녀 집착 ts 얀데레녀 ㅜㅑ

­ 낭만검객: 개꿀잼이네 진짜 ㅋㅋㅋ

­ 야스마스터: 원래 완벽해 보이는 놈일 수록 틈이 큰 법임ㅇㅇ

­ 미션석세스: 나중에 와서 이게 힘의 차이다 시전해 주나??

­ 야스마스터: 깔보던 이를 내가 압도하는 것. ㅋㅋ 이게 야스지.

완벽해 보였던 사람의 끈적끈적한 질투심. 그 반대되는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극적인 감정. 그건 시청자들을 충분히 만족 시켜준 듯했다.

“선생님들. 재미있으셨다면 많은 기부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또 보러 올게요.”

하영은 동굴 밖 어두운 숲 속으로 사라지면서 웃었다.

별 생각은 없었는데, 정말 좋게 방송 소재를 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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