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2. 그녀가 골드를 버는 방법.
* * *
“레벨이 증가한다고?”
옷이나 갈아입고 잠을 자려던 하영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하니 채팅창을 바라봤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영이 읽은 ‘2번째 탑 등반은 복수와 함께’라는 소설에서 시스템은 레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조금 전까지 활기 넘치던 음성이 힘을 잃고 흐릿해졌다. 생각지도 못한 단어의 등장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영은 이 상황을 설명해줄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채팅창을 훑어봤다.
방송계의유니콘: ??? 2일 차 만에 2레벨이 되는 스트리머? 이거 실화냐?
낭만검객: 와, 첫 시청자로서 너무 자랑스럽다. 다 컸네 우리 씹년 ㅠㅠ
미션석세스: 그만큼 너희가 골드를 뿌렸다는 거야 ㅂㅅ 새끼들아 ㅋㅋ
아가리롤스타: 응 너 빼고 다 뿌려~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하영은 멍하니 채팅창을 바라봤다.
채팅의 대화들로 봐서는 다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한 것 같았다.
‘아니 자기들끼리 알면 뭐하냐고.’
레벨업한 본인은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방송 시스템이 돌아가는지도 모르는데. 부외자는 전부 이해한 상황.
하영은 불친절한 시스템과 시청자들에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알려준 것부터 정리를 해보자.’
하영은 묘하게 자신의 신경을 건드는 채팅창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가 사라지기 전까지 계속 메시지들을 보며 머릿속에 정보를 욱여넣었다.
‘…확실한 것 위주로 외워두자.’
무언가 특별한 걸 달성하면 경험치를 얻거나 레벨이 올라간다. 레벨이 올라가면 시청자 수와 일일 기부 한도가 올라간다. 지금으로써 확신한 정보는 이것들뿐이다.
무엇을 해야 레벨이 올라가고 얼마나 올라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 아니, 성격 한번 급하네.”
순식간에 시스템 메시지가 사라졌다. 별로 볼 것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장문으로 된 시스템 메시지였으면 중간에 멍때리느냐 읽지도 못할 뻔했다.
낭만검객님이 100골드 기부.
아쉽지만. 입을 옷이 정해졌으니 어서 탈의하자.
이제는 익숙한 빵빠레소리, 하영은 기부메시지를 보며 방긋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히지 못하게 됐으니, 내가 옷을 벗는 순간이라도 보고 싶었나 본데… 어림도 없는 말이다.
“아, 그럼요 당연히 벗어야죠!”
하영의 말에 시끄럽던 채팅창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천신이 조용히 하라 해도 시끄럽게 굴던 악질 신들을 하영은 말 한마디로 조용해졌다. 그 만큼 그들은 지금 최대한 집중하고 있다.
“자, 그러면 윗옷부터 벗어보겠습니다.”
하영은 너덜너덜해진 상의를 잡고 살짝 올렸다. 옷이 지나간 곳 아래로 흰 피부가 드러났다. 하영은 상의를 계속해서 올리다가 가슴 부분이 드러나기 직전에 손을 멈췄다.
“아! 제가 또 실수할 뻔했네요!”
하영은 채팅창을 보며 살짝 손을 놨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제가 옷을 벗는 모습을 보시려면 하튜브 프리미엄을 구매하시기 바랍니다.”
낭만검객: 그게 뭔데 시발아!
응 나도 몰라.
씨익, 하영이 크게 미소를 지으며 상점 쪽으로 손을 옮겼다.
「후드 달린 평범한 로브 760G」
빠르게 후드를 구매했다, 구매하자마자 손위로 검은색 로브가 떨어졌다. 하영은 잽싸게 움직여 로브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
그런 하영의 모습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방송계의유니콘: 어? 어? 화나네?
낭만검객: 아니 시2발 하튜브 프리미엄이 뭔데 씨팔련아.
미션석세스: 하. 이 썅년 방송제목값 지대로네. 괜히 썅년이아니야.
아가리롤스타: 하영님. 하튜브 프리미엄이라는 것을 구매하고 싶습니다. 제발 팔아주세요.
꿀벌아넣을게: ㅋ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스마스터: 하. 어질어질하다 그죠?
하영은 난리가 난 채팅창을 보며 미소를 유지했다.
당황한 하영을 두고 아는 거 나왔다고 자기들끼리 신 나게 떠든 것에 대한 복수였다.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 복수한 이후에 남는 건 허무함뿐이라던데, 다 거짓말이다.
복수를 이룬 하영의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쉽다. 복수물만 수년을 봐온 나로서는 더 큰 사이다가 필요했다.
“하튜브 프리미엄이 뭐냐면요… 네! 알려 드렸습니다!”
하영은 얄미운 사람 특유의 그 익살스러운 모습과 목소리를 그대로 따라 했다.
천신대가리멈춰: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ㅅㅂ
인방인생하급신: 하튜브 프리미엄에 대해 아는 신 없음? 여기 다 ㅂ신임?
여신따먹고싶다: 이 씹련 그냥 생각나는 데로 내뱉은 거 아님?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ㄹㅇㅋㅋ ㄹㅇㅋㅋㄹㅇㅋㅋ ㄹㅇㅋㅋ ㄹㅇㅋㅋ ㄹㅇㅋㅋ ㄹㅇㅋㅋ ㄹㅇㅋㅋㄹㅇㅋㅋ ㄹㅇㅋㅋ ㄹㅇㅋㅋ
하영은 채팅으로 도배되기 시작한 채팅창을 무시하고 상태창을 이용해 무복에 관한 것을 검색했다.
이미지가 없었기에 복장의 이름과 설명, 그리고 착용 시 얻을 수 있는 효과로 옷을 추려냈다. 얼마나 비싼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능력치가 낮은데다, 특출한 특성 하나 없는 사람이었기에 착용 가능한 옷 자체가 적었다. 덕분에 명품이라 불릴 만큼 비싼 옷은 상태창(새)이 알아서 걸러줬다.
‘망한 RPG 특, 장비에 능력치나 필요 스킬 같은 무언가 조건이 걸려있음.’
마음에 드는 옷을 찾는 중간에, 적은 수의 옷을 보고 얼마나 내 기본 능력치가 낮은지 깨닫게 되어 한숨이 나왔지만, 골드로 스킬이나 능력치를 구매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남아있었기에, 지금은 좋게 넘기기로 했다.
‘덕분에 금방 쇼핑이 끝날 것 같으니까. 좋게 받아들이자.’
그렇게 엄선한 결과. 하영이 구매할 옷이 결정됐다.
“자! 모든님! 이 옷 어떻습니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하영이 손가락으로 자신이 고른 옷을 가리켰다.
「관능적인 검은색 무복 B타입(여성, 한벌 옷) 15,600G」
문파 표시가 없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무복을 강한 노출로 살린 복장.
단아한 천과 천 사이로 보이는 다리는 그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신비한 힘으로 옷이 자동으로 깨끗해진다.
착용 시 민첩+4, 체력+2.
착용 제한 없음.
무언가 불길 한 단어가 여럿 들어가 있긴 하지만, 착용 제한 없고 2만 골드 이내의 상품 중 이것보다 내게 더 좋은 것은 없다.
모든것은순리대로님이 15,600골드 기부.
험험, 내가 다리를 좋아하는 것을 어찌 알고…
기부메시지를 본 하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옷이 안 되면 이것보다 만 골드가량 가격이 낮은 옷을 구매해야 했기에 정말 긴장을 했었는데, 다행히 합격인가 보다.
‘정하영 씹년아. 좋은 각선미 고맙다. 순리선생 가슴이 아닌 다리를 좋아해줘서 고맙소!’
하영은 저 시청자가 다리를 좋아하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럼 이 감사한 마음을 담아 구매하겠습니다.”
무사히 옷값이 들어온 걸 확인한 하영은 망설임 없이 옷을 구매했다.
로브를 구매했을 때처럼 손 위에서 구매한 옷이 천천히 내려왔다.
분명 같은 연출임에도, 이전과 다르게 비싼 아이템이라 그런지 무언가 엄청난 보물을 하사받는 느낌이 들었다.
“크! 감사합니다! 모든 선생님! 정말 잘 입겠습니다!”
하영은 자신의 손에 떨어지는 옷을 중간에 낚아챘다. 그다음 어떻게 생긴 옷인지 확인하기 위해 옷을 쫙 펼쳤다.
“……?”
옷의 형태를 확인한 하영이 얼빠진 표정으로 옷을 바라봤다.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감았다가 떴지만.
옷은 같은 형태를 유지 하고 있었다.
“아니 이거 이상한데? 무림인이 입는 옷이라더니, 아래쪽이 옆트임 치마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찢어져 있는데? 이거 입고 어떻게 싸워요?”
하영의 손에 들린 복장은 언뜻 보면 중국식 원피스라 볼 수 있는 평범한 치파오와 비슷했지만, 허리 아래부터 양쪽으로 깊게 찢어져 있는 것이 도저히 사람이 입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와 씨, 가만히 서 있어도 다리가 다 안 가려져.”
자신의 옷 위로 무복을 대본 하영이, 옷을 착용한 모습을 상상하며 중얼거렸다. 이런 옷을 입고 29일간 싸우며 생존해야 한다니. 정말 가슴이 벅차 온다.
“하, 모르겠다.”
이걸 진짜 입어야 하나 살짝 고민이 들었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여기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이 꿀 콘텐츠효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건 절대 안 되지. 하영은 눈물을 머금고 로브 속으로 무복을 가지고 들어가서 그대로 옷을 착용했다.
처음 입어보는 옷인데다 로브 속이라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입는 거라 많은 불편함이 있었지만, 오랜 시간을 투자한 끝에 겨우 착용할 수 있었다.
“크흠, 겨우 다 입었습니다.”
시청자들을 오래 기다리게 한 것에 살짝 무안해진 하영은 슬쩍 고개를 틀어 채팅창을 쳐다봤다.
낭만검객: 아, 빨리 공개해 씹련아!
아가리롤스타: 하영님, 진짜 여론 안 좋습니다. 빨리 공개해주세요.
꿀벌아넣을게: 빨리 벗어! 빨리 벗어 !빨리 벗어! 빨리 벗어!
야스마스터: 천신이시어, 오늘 한명 더 올라갑니다.
천신대가리멈춰: 아! ㅅㅂ 천신 욕 마렵다!! 썅년아! 내 안의 자아가 폭발하기 전에 빨리 로브 벗어!
채팅창을 본 하영의 피부가 조금 창백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병림픽을 펼치던 채팅창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유일한 자신의 편, 아가리롤스타마저 빨리 로브를 벗으라며 채팅을 치고 있다. 심각함을 깨달은 하영이 말과 행동을 서둘렀다.
“자, 그럼 공개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로브를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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