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2. 그녀가 골드를 버는 방법.
* * *
시작이 좋다고 마지막마저 좋을 수는 없는 법.
초반에 모든 걸 쏟아 부은 하영은 기적같이 2연속 쓰레기를 뽑았다.
[유연한 남탓.(최하급!)]
[유연한 남탓은 삶을 이롭게 한다.]
[강철 같은 뻔뻔함.(최하급!)]
[난 강철보다 더 뻔뻔하거나 그와 동급이다.]
“선생님들, 이거 제가 선생님들을 탓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하영은 소설 속 내용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유연한 남탓. 강철 같은 뻔뻔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특성들이다.
그러나 독자였던 하영은 이게 얼마나 쓰레기 특성인지 한눈에 알아봤다.
두 특성 다 얼핏 보면 심리전 같은 곳이나 웅변이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쓰일 거 같지만. 실상을 놓고 보면 쓰레기다
액티브 스킬이 사용 시 효과고, 패시브 스킬이 조건을 달성할 때 유지가 되는 버프 느낌이라면. 특성은 상시적용이다. 그래서 특성은 창의 기본 특성처럼 성장보너스가 걸려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선생님들 때문에 제가 남탓쟁이에다가 뻔뻔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책임져주세요.”
하영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저 시스템 창을 볼 엄두가 안 났다. 유연한 남탓은 그렇다 쳐도 저 강철 같은 뻔뻔함은 정말 좋지 않다.
하영은 부끄러운 짓을 해도 최소한의 창피함은 느끼고 있었다.
목석같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아무리 남자라도 노출을 하면 창피함은 느낀다.
골드 때문에, 살고 싶어서 이 몸을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부끄러움을 회피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저 특성을 얻은 지금. 하나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마치 평생 야한 옷을 입은 사람처럼 편안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속옷만 입고 돌아다녀도 사람들의 시선이 엄청 몰리지 않는 이상은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내 인생은 어디까지 가는 걸까.”
하영은 자신을 재워준 나무를 기둥 삼아 추욱 늘어졌다.
특성을 4개나 얻은 지금, 자신이 얼마나 변했는지 실감이 됐다.
“선생님들 앞으로 특성은 뽑지 말까요?”
하영이 비 맞은 고양이처럼 축 처진 목소리로 물어봤다.
솔직히 좀 두려웠다. 실시간으로 누군가가 내 생각을 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전과 다르게 피가 빠르게 흐르는 것 또한 느껴졌다. 이건 꽤 위험하다.
몸이 바뀌어도 나는 정하영이 아닌 나였다. 그런데 특성을 얻은 지금. 내가 과거의 나와 같은 존재인지 의문이 들었다.
낭만검객: 하영아 지랄하지 말고 빨리 결과 공개해라. 오빠 긴장된다.
꿀벌아넣을게 : ㄹㅇㅋㅋ
야스마스터: 나 떨고 있니?
인방인생하급신: 야, 솔직히 답도 없는 특성 2개를 받았는데 잠시 휴식시간 갖는 건 인정해주자.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변함없이 즐거운 시청자들의 채팅에 하영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 강철 같은 뻔뻔함의 시스템 창을 치워버렸다.
혼자서만 진지하게 고민하는 내가 바보 같다고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큰 변화까지는 아닐지도 몰라.’
등급 앞에 느낌표가 붙어있으면 그 등급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더 성장할 수 없다. 즉 저 두 스킬은 최하급에서 더 등급을 못 올리는 개 쓰레기 특성이라는 말이다.
‘지속적으로 내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특성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성장도 못 하는 최하급 특성 2개가 모였다고 해서 내 가치관에 엄청난 변화를 주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이미 자신은 변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하영은 덤덤히 자신을 내려다봤다. 검은색 천 사이로 새하얀 다리 2개가 튀어나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제의 난 쭉쭉 빵빵한 누님들이나 입을 법한 복장을 태연하게 입었었다. 그 또한 이곳에 오기 전까지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행동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의 나라면, 이런 복장은커녕 남자용 치마도 엄두를 못 냈을 거야.’
이처럼 사람은 변한다. 어차피 특성이 아니라도 1년 후의 나는 지금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현재 나의 변화를 받아들이자. 어제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오늘 꿨던 꿈은 과거의 내가 하는 작별 인사였을 지도 모르겠네.”
하영은 쓰게 웃었다. 내가 꿈에서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꿈은 영원할 수 없는 게 당연한데도 그 사실이 묘하게 슬펐다.
천신대가리멈춰: ???: 하영아 나는 수탉크래프트 출시될 때부터 옷 벗기던 남자야. 진짜 나믿고 스트레이트로 5개 연달아 박아봐 이거 지금 확인해야해.
꿀벌아넣을게: 망하면 지금 당장 낭만검객 죽이러 감.
낭만검객: ㄴㄴ 초커 사라고 해서 부정 탄 거임
야스마스터: 지랄 ㄴㄴ
꿀벌아넣을게: 낭만아 너 어디사냐.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하영은 채팅창을 보고 5번째 가챠가 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잘 나왔다면 하영보다 먼저 5번째 가챠의 결과를 확인한 시청자들이 서로 탓하기 바빴을 리 없었다.
‘분명 빨리 옷을 벗으라고 연신 외쳐댔겠지.’
하영은 벗으라고 외치는 채팅을 상상하다 풋 하고 웃었다.
그리고 시스템 창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망한 거 제발 무난한 성장보너스 특성이나 걸렸으면 좋겠다.
[욕망의 꽃(최하급)]
[욕망이 성장한다.]
[사용자의 욕구 확인 중…]
“씨발.”
욕망의 꽃이라니,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는 특성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무슨 특성인지도 설명도 안 나와 있다.
‘이거 진짜 꽝을 뽑아 버린 것 같은데.’
[사용자의 욕구 확인 중…]
[확인 완료.]
[성욕(10), 식욕(50), 명예욕(65), 수면욕(30), 재욕(85).]
[재욕이 가장 높음으로 재욕의 욕망이 심어집니다.]
하영은 떨리는 눈으로 시스템 창을 보다가 성욕이 적다는 곳에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 지금 자신의 이성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흠. 위험해 보이기는 하지만 정확도 하나는 확실 하구만.”
욕망의 꽃, 꽤 믿을 만한 친구였다.
[욕망의 꽃(하급)]
[재욕(85) 씨앗]
[재물을 탐하면 탐할수록 꽃은 성장한다.]
[주의: 등급이 낮아 욕망이 일시적으로 폭발할 수 있다.]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며 평가를 하는 것도 잠시, 특성의 등급과 내용이 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스템 창 옆에 이상한 게이지 같은 게 생겨났다.
[씨앗] =
[발아] 발아 진행 중.
[성장]
[개화]
[결실]
이 변화를 하영보다 먼저 눈치챈 시청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낭만검객: 가보자~ 가보자~
건강한언어습관짝: 자~ 드가자~
내이름은야스머신: 야스! 야스! 야스! 야스!
야스마스터: 내가 나설 시간인가?
꿀벌아넣을게: 하영아. (높은 특성)넣을게~
시청자들의 환호성을 받아서일까. 특성의 변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재욕이 넘쳐 납니다. 씨앗이 욕구를 흡수합니다.]
[욕망의 꽃(중하급)]
그 모습에 시청자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낭만검객: 내 말이 맞지? 내 말이 맞지? 내 말이 맞지?
꿀벌아넣을게: 낭만검객, 넣을게~
소드마스터거품임: 검객, 그는 거품이 아니다.
야스마스터: 내 딸 하영이의 벗 방을 허용한다!
하영은 시스템 창과 채팅창을 번갈아 가면서 확인하며 숨을 죽였다.
만약 이 꽃이 중상급까지 가게 된다면. 나는 뭔지도 모른 특성을 얻은 대가로 옷을 벗어야 한다. 그건 최악 중에서도 최악의 결과다. 그것만큼은 제발 멈춰 줬으면 좋겠다.
[씨앗이 발아되었습니다.]
[욕망의 꽃(중급)]
낭만검객: 자! 드가자! 드가자!
야스마스터: 정하영! 낭만검객! 정하영! 낭만검객!
미션석세스: 여기 낭만 가득한 여자 누구야!
악질방송만보는사람: 네 정하영입니다~
여신따먹고싶다: 하영이의 재욕아! 제발 힘을 내! 한 걸음만 더 앞으로 가면 된다고!
인방인생하급신: 떠올리는 거다! 골드를 탐하던 그 비열한 모습!
“에이, 솔직히 그건 아니지, 내가 얼마나 재물에 욕심이 있다고. 그리고 그건 그냥 살고 싶어서 골드를 원한 그런 욕구일 뿐이야. 재욕과는 상관없어. 난 결백해.”
자신의 특성이 성장하지 못하기를 바라는 하영과 남의 특성이 성장하기를 비는 시청자의 염원이 한곳에 모였다.
[씨앗] =
[발아] =
[성장]
[개화]
[결실]
두 쪽 모두 숨을 참고 시스템 창에 두 눈을 고정했다.
더 오를 것이냐, 말 것이냐. 성장의 단계에서 게이지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최종 확인. 특성소지자님의 단계는 성장 직전입니다.]
[욕망의 꽃(중급+)]
[재욕(85) 성장 직전]
[재물을 탐하면 탐할수록 꽃은 성장한다.]
[성력을 제외한 능력치 성장 10퍼센트 상승.]
“캬! 그렇지!”
중급보다는 높지만, 중상급에는 닿지 못하는 어중간한 단계에서 멈췄다. 하영과 시청자들 은, 고지 앞에서 멈춘 것에 탄사를 터트렸다.
그러나 단 한 명, 자신이 큰일 났음을 알게 된 그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먼저 선빵을 날렸다.
낭만검객님이 10,000골드 기부.
재욕의 악마 하영아! 이 골드를 보고 알 거라 믿는다! 나는 잘 못한 게 없다! 문제는 내가 아닌 저 싸구려 초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