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2. 그녀가 골드를 버는 방법.
* * *
‘싸구려 초커?’
기부 메시지의 말에 하영은 자신의 목에 손을 올렸다.
부드러운 천의 느낌이 목 주변에서 느껴졌다. 목에서 느껴질 리 없는 그 감촉에 하영이 정신을 차렸다.
“아니, 잠깐만 이거 뭐야.”
눈을 부릅뜨고 채팅을 노려봤다. 생각해보니 살짝 괘씸했다. 정신이 취약한 틈에 이런 고약한 것을 목에 감게 하다니.
“어허, 잠기운이 미약하게 남아있을 때 이런 짓을 하시면 안 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쁘지 않았다. 게임으로 치면 노력 없이 장비를 얻은 셈이니까.
야스마스터님이 500골드 기부.
난 모르는 일이야 용서해줘.
“큼. 성의가 가득하니, 이번만 봐 드리겠습니다.”
화난척하며 조금이라도 더 골드를 땅겨오려던 하영은, 골드가 들어오자마자 태도를 180도 바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꿀벌아넣을게: 믿고있었다고~
이중인격 같은 하영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신박 자극을 원하던 이들에게. 이런 뻔뻔한 모습이 오히려 더 잘 통했다.
괜히 자극적인 방송이 한국에서 유행을 탄 게 아니었다.
낭만검객: 역시 재욕의 악마 하영이야! 고맙다!
야스마스터: 재욕의 악마! 재욕의 악마!
꿀벌아넣을게: 정하영 그녀는 악마인가?
미션석세스: 탐욕 ON
재욕의 악마라… 왠지 주인공에게 순살 당할 거 같은 이름이라 꺼림칙하다.
뭔가 있어 보이는 네임이라 묘하게 중2병의 잔재를 건드리기 까지 한다.
“선생님들. 그 재욕의 악마라는 말은 하지 말죠. 그거 사실적시 명예훼손입니다.”
저런 불길한 말은 계속해서 듣고 싶지 않다. 가뜩이나 주인공에게 강제로 범해지다 죽는 역할인데 악마속성까지 붙으면… 나락 확정이다.
“어우 씨. 소름 돋아.”
하영은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에도 한번 든 생각은 머리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주인공의 적, 여 악마, 19금 소설 빙의.
이 모든 게 한데 모이니, 자꾸만 애완동물 엔딩으로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독자라도 저런 나쁜 캐릭터는 강제로 범해서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달라고 작가님에게 빌 것 같았다.
즉석나비탕24시: 이년 자꾸만 딴생각하네. 방송이나 진행해.
여신따먹고싶다: 애는 다 좋은데 딴생각이 너무 많음. 그 탓에 방송 흐름이 자주 끊김.
눈에 들어온 채팅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 잡생각이 많아지는 게 하영의 나쁜 버릇이었다.
회사에서 할 일이 없었을 때 딴생각을 하며 지내던 게 버릇으로 남은 것인데… 이게 결국 이렇게 업보로 돌아오나 보다.
‘다시 지구로 돌아가면 앞으로는 자제해보도록 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
그런 다짐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이 목소리, 잊고 있던 나의 상태창이었다.
「호애애. 상태창 힘든 것이 새오!」
새의 모습을 한 상태창, 새태창. 그녀가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긴 어제도 오래 유지는 못 했던 걸로 기억한다. 소설에서 나오는 상태창과 다르게 생물ㄴ같은 게 상태창의 역할을 하는 거라 여타 다른 상태창들처럼 오래 펼쳐두는 건 힘들 것 같다.
“새태창아. 이제 그만 해도 될 거 같다. 수고했어.”
「호애애!」
하영의 칭찬에 신이 난 새태창이 글자를 전부 집어삼키고 괴음을 질렀다. 예쁜 여자 목소리로 저런 소리를 외치다니. 정말 목소리 낭비다.
“자.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영은 새태창이 글자를 빨아들이는 것을 보고 마무리 멘트를 던졌다. 아쉽지만 새태창도 더 상점을 유지하기 힘드니 오늘 과소비 콘텐츠는 여기서 종료해야 할 거 같았다.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아. 이대로 끝임?
군침도는사람: 군침이 싹… 돌다 사라졌누…
즉석나비탕24시: 이게다 고양이 귀를 안 달아서 그럼 ㅇㅇ
병신을보면짖는개: 월! 월! 월월!
하영의 말에 콘텐츠가 끝난 걸 깨달은 뉴비 시청자들이 아쉬움을 내뱉었다.
‘너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어제 방송을 본 기존 시청자들은 내가 이런 방송을 이어갈 거라고 확신하기에 조용했지만.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이들은 그걸 모르기 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 같았다.
하영은 그들에게 내일 또 할 테니 진정해 달라는 말을 하려 했다.
한 채팅을 보기 전까지는.
여신따먹고싶다: 낭만검객 밥버러지련아! 하영이가 용서해도 나는 용서 못 한다 현피뜨자 씹련아!
다른 시청자를 탓하지만 어디까지나 장난임이 확실한 채팅.
그 채팅이 머리에 닿은 순간, 하영의 본능이 속삭였다. 수금 타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낭만검객: ㄷㄷ 아니 그러지마 이 썅년 또 개같은거 할 거 같아.
하영은 자신의 변화를 순식간에 눈치챈 채팅을 보며 쓰게 웃었다.
역시 최초로 내 방송을 본 시청자라 그런가. 내 변화를 빠르게 깨닫는다.
저 시청자는 첫 전투에서도 내 상태를 가장먼저 알고 웃었을 게 분명했다. 괘씸하네.
“아니, 선생님들 생각해보니. 부정을 타긴 좀 탄 거 같아.”
하영은 채팅을 주시하며 말했다.
괘씸하긴 하지만 여론이 안 좋으면 빠르게 발을 빼서 무마할 생각이었다.
즉석나비탕24시: 이게 맞지, 초커에다가 고양이 귀가 한 세트인데 초커만 사서 부정 탄 거임.
병신을보면짖는개: 월! 월! 월월!
낭만검객: ㄹㅇ 내가 말한 타이밍에 5번 바로 연속으로 먹었어야 했음.
유연한 남탓 스킬이 있는 덕분일까. 어제보다 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영은 서로 탓하며 난리가 난 채팅을 보며 자본주의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여기에 떡밥을 좀 뿌리면 내가 원하는 상황이 나올 것 같다.
“선생님들. 솔직히 나는 이제 별 상관없거든? 근데 부정 타서 내가 벗는 걸 못 본 사람들은 좀 불만이 있을 것 같아.”
하영은 일부러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새태창에게 다가갔다. 흑우들이 생각하기 전에 빠르게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새태창아!
「호애애!」
“내가 낭만검객님에게 내가 화를 낼 확률은?”
「0퍼센트 새오!」
즉답이었다.
하영은 0퍼센트라고 말하는 순간 ‘이거 한번 화를 내서 운명을 바꿔봐?’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그래도 만 골드나 기부했는데 화를 내는 건 아닌 거 같아서 넘어갔다.
“그러면…”
하영은 말을 흐렸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였다. 낭먼검객님에게 화난 시청자가 몇 명이냐고 묻거나, 초커를 구매하게 주도한 야스마스터에게 죄가 있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도 되지만. 그건 하수였다.
새태창이 힘들어하는 걸 보아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난 저 2명에게만 기부를 받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흐름을 끊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뜸을 들여, 왠지 나한테 화살이 돌아올 거 같다고 느끼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건 시선이다. 올라오는 채팅 하나하나에 시선을 전부 공평하게 줘야 한다. 그러면 2명에게 뜯는 것보다는 적은 골드겠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기부를 해 올 것이다.
낭만검객님이 100골드 기부.
솔직히 목을 조인다고 가챠가 잘될 리 있냐고 아 ㅋㅋ
바른말만씀님이 100골드 기부.
초커 사자고 한 새끼 엎드려뻗쳐 씨발럼아.
야스마스터님이 100골드 기부.
나만 초커 사자고 한건 아님.
꿀벌아넣을게님이 100골드 기부.
솔직히 내 잘못은 없다 ㅇㅈ?
미션석세스님이 100골드 기부.
아니, 솔직히 우리 문제는 아니지 ㅋㅋ
방송계의유니콘님이 100골드 기부.
저게 맞지. 이건 위쪽에서 확률 조작한 거임.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빵빠레 소리가 계속 들린다.
하지만 하영은 아직 배고프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까, 초커 사자는 사람은 잘못이 없긴 해.”
낭만검객: ??? 만 골드 기부한 나는 뭐임 ???
“아니, 내 말을 잘 들어봐요 선생님. 솔직히 저 알약이 문제에요, 21세기인데 확률 공개를 안 한다? 이거 주작 냄새가 풀풀 나지 않습니까?”
하영의 말에 채팅이 빠르게 올라간다. 여기까진 예상 대로다.
낭만검객: 그러네, 확률표가 없어? 이거 백퍼센트거든~
야스마스터: 맞아 저 알약이 문제야 이거 확률 공개해야 해 ㅇㅇ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검은콩나물: 천신은 로직을 공개해라!
소드마스터거품임: 확률 공개를 하지 않았다? 뻔하다~ 주작이다~
악질방송만보는사람: 헐, 언냐. 나 머리가 띵했어.
바른말만씀: 그럼 머리 박고 뒤져 ㅅㅂ년아.
하영은 채팅을 보며 큰 미소를 지었다.
이게 유연한 남탓? 나쁘지 않을지도.
이 정도 여론이라면 조금 더 골드를 벌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영은 채팅의 흐름이 멈추기 전에 이어서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우리 한 번만 더 해보자.”
낭만검객: ???
야스마스터: 특성 그만 뽑는다며.
방송계의유니콘: 우리 상태창좀 살려주자. 애가 힘들어 죽으려 한다.
인방인생하급신: 같은 날 똑같은 거 2번 하는 건 좀 노잼이긴 해 ㅇㅇ
시청자의 아우성에 하영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유연한 남탓으로도 한계가 있나 보다.
‘하지만 걱정 할 건 없어.’
게임에서 흑우짓을 많이한 나는 어떻게 해야 흑우가 돈을 쓰는지 알고 있다. 똑같은 콘텐츠에 흑우가 돈을 쓰는 것을 망설인다면. 이전보다 더 좋은 걸 풀면 된다.
“이번에는 특성이아니라, 스킬로 하자. 게다가 이제 부터는 중상급 스킬만 떠도 속옷까지 전부 벗을게. 어때?”
하영의 파급적인 말에, 흑우들이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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