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3. 프롤로그
* * *
무엇을 해도 안 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집안에서 가만히 누워 폰을 하다가도 얼굴에 폰을 맞곤 한다.
하영에게는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파급적인 선택으로 어떻게든 골드를 끌어모아서 3연차를 추가로 돌렸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투창 (하급)]
[손을 대지 않고도 창을 던질 수 있다.]
[투창의 위력은 근력에 비례하며, 일정 마력이 소모된다.]
[빠른 몸놀림(최하급!)]
[일정 마력을 소모해 몸의 움직임을 아주 약간 빠르게 할 수 있다.]
[파이어볼(하급!)]
[마력을 이용해 불덩이를 만든다.]
특성이 잘 안 뽑혀서 스킬로 도망 왔건만, 중상급은커녕 중하급도 하나 건지지 못했다.
우울했다, 그리고 그건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속옷은 둘째 치고 옷도 못 벗긴 시청자들은 연속된 실패에 힘이 빠졌는지 채팅을 잘 치지 않았다.
하영은 축 처진 분위기에 힘을 돋우기 위해 드립을 날렸으나…
“또 망했어? 이젠 아예 전멸을 했다고?”
너무 갑작스러웠던 탓인지, 별 소용없었다.
“…오늘은 날이 아니네.”
드립마저 실패한 하영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하늘 위로 새태창같은 구름 몇 개가 둥둥 떠다녔다.
깨끗하고 푸른 하늘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하지만 솔직히 오래 보기에는 너무 지루한 풍경이었다.
“아, 스마트폰으로 늅튜브 보고 싶다!”
하영은 스마트폰이 그리웠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이렇게 할 일이 없을 때면 자꾸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지구에 있을 때는 1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하늘이었는데, 지금은 하루에도 수십 번을 보는 것 같다.
“…튜토리얼이 끝나면 이런 여유도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편히 쉬고 있지만. 튜토리얼이 끝나는 순간. 지옥 같은 탑의 환경에서 악마 같은 주인공을 피해 빠르게 탑을 올라야 한다.
“현재도, 미래도. 암울하구만.”
하영은 입대를 앞에 둔 사람처럼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내 인생에 암울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첫사랑에게 배신당한 고등학교 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이 지옥으로 떨어진 순간?
어쩌면 너무 오래전이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정답일 수도 있다.
이제 와서는 이것도 다 부질없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원혁은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참 부질없는 인생이었어.’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첫눈에 반한 이에게 거짓으로 고백을 당해 마음을 농락당하거나. 그로 인해 왕따를 당해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갔고.
그렇게 탑이라 불리는 지옥에까지 가게 되었다.
원혁은 지옥에서 만난 첫 동료에게 몬스터 소굴에서 버려졌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구에서 그렇듯 살기위해 아득바득 노력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산 결과가 이거다.
“처참하군.”
나를 사랑해줄 사람 한 명이면 됐다.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거나 하는 거창한 꿈은 꾸지도 않았다.
단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평범하고 안전한 생활을 보내고 싶었다.
“너는 그렇지 않았던 거냐?”
원혁은 자신을 두고 위로 올라간 자신의 연인에게 물었다.
“보미야…”
올라오는 핏물을 뱉어 가며 완성한 말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적막했다. 인생의 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지 몰랐다.
기억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 하나 없이. 이렇게 끝이 날지는 몰랐다.
“씨발…”
원혁은 눈물을 흘리며 마음처럼 뻥 뚫린 가슴을 매만졌다.
자신의 연인이 남긴 상처였다.
상처는 어찌나 크게 뚫렸는지 자신의 손으로는 구멍을 다 막을 수도 없었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높은 체력과 자신의 특성이 아니었으면 즉사해도 문제없을 큰 상처였다.
고통 역시 클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원혁은 고통을 억제해주는 스킬 덕에 몸이 괴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찢어질 듯 아팠다.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 구멍이 뚫렸어도 이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을 거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럴 줄 알았으면! 정신 강화 스킬을 너에게 넘기는 게 아니었다. 프롯!”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 가장 친했던 동료에게 말을 걸어도 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활을 든 사람은 깃털 달린 모자를 착용해야 한다며 착용했던 그의 모자만이 바람에 흔들릴 뿐이다.
“하…”
소리친 대가로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죽음이 가까워졌다. 몸이 점점 차가워지는 게 느껴진다.
“안 돼. 안 된다고… 제발!”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
원혁은 어떻게든 일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잘려나간 두 다리를 대신해 한쪽밖에 없는 팔로 땅을 짚으려 했다.
잘려나간 부위에서 피가 흐르고 가슴에서 시체의 악취가 올라온다.
무리였다.
이런 망가진 몸뚱이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진짜… 진짜. 이렇게. 끝이라고?”
원혁의 흐릿한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목소리가 더 나오지 않았다. 핏물이 역류한 탓이었다.
계속 배신당하면서도 살아가려 한 이유.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이유가 다음 층에 있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계단만 올라가면. 한 번만 더 포기하지 않으면. 지금껏 그래 왔던 대로 행동하기만 하면. 그러면 되는데.
너무… 너무 멀다.
계단도. 행복도. 내게는 너무…
‘덧없는 꿈이었나.’
눈이 감긴다. 앞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바람의 소리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정신은 그보다 더 아득히 먼 곳으로 향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이라도 보며 울분을 토하고 싶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너무 늦었다.
‘그래. 너무 늦었다.’
거짓된 고백에 놀아난 것도. 그로 인해 왕따를 당한 것도.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이 지옥에 끌려온 것도. 수 없이 배신을 당해가며 이들만큼은 날 배신하지 않을 거라 굳게 믿었던 것도. 전부.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 상처를 견디기에는. 지금껏 흘려온 피가 너무 많다.
모두들 참고 견디라고, 시간이 약이라며 앞으로 걷기를 강요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람은 앞만 보고 살 수는 없다. 다른 곳으로 세기도 하고 뒤로 걸어보기도 하며. 가끔은 지나온 길을 다시 걸어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걷던 길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도… 한 번쯤은 괜찮을 것 같다.
아니. 완전히 엇나가 보고 싶다.
나에게 잘못한 이들에게 그 잘못에 대한 대가를 가차 없이 치르게 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원혁은 피로 범벅이 된 손을 최대한 높이 뻗어 하늘을 쥐려 했다. 닿을 리 없는 발버둥이었다.
‘인생은 너무… 허무하구나……’
하늘에 닿지 못한 원혁의 발버둥은 그대로 끝났다.
결국 반전은 없었다.
그런 줄 알았다.
***
[소원의 부적]
소원을 이루어 드립니다.
원을 이뤄주는 대신 대가로 약간의 불행이 찾아옵니다. [대가로 능력치와 스킬 그리고 특성이 선택되었습니다.]
백 개로 이루어진 백색의 탑. 백백탑에서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소원 사용자: 이원혁.
원혁은 자신의 손에 있는 부적을 만져봤다. 처음부터 내가 들고 있던 부적이었다. 20살로 회귀한 내가 지닌,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적.
“묘하군.”
첫사랑에게 배신당한 과거도. 대학교에 붙은 현재도. 이전과는 다른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이 부적만큼은 내 기억과 다르다.
이런 건 구매한 적도, 본적도 없다.
게다가 탑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니. 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원혁은 내가 있던 탑이 백백탑이라는 곳인지도, 이런 아이템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99층에 오른 도전자임에도. 보기는커녕 소문조차 들어 본 적 없다.
그런데 이 부적을 사용한 사람은 나라고 한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원혁은 현대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탑에서 와 같았다.
“하지만 이젠 괜찮아.”
원혁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뚫린 가슴도, 잘려버린 팔과 다리도 모두 멀쩡했다.
마치 없었던 일이 된 것처럼…
“아니, 없어지진 않았다.”
원혁은 제 생각을 부정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팔과 다리 모두 멀쩡하지만. 가슴에는 이전과 다르게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절대 메울 수 없는 거대한 구멍이.
“몸은 과거로 돌아왔어도. 마음은 과거로 돌아오지 못한 건가.”
그래도 상관없다. 믿음에 배신당한 그때와는 다르다. 내 몸은 움직여진다. 튼튼한 육체도. 쌓아온 스킬도. 나를 지탱해준 특성도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우선은 건강한 육체라도 만들어야겠어.”
원혁은 자신의 축 처진 뱃살을 주물렀다. 원래부터 좀 통통한 편이긴 했지만, 고3 시절에 놀고먹었던 게 타격이 좀 컸다.
조금 전까지 근육질 몸매를 가졌었던 탓에 그게 확실히 느껴졌다.
“갈 길이 멀구나.”
원혁은 달력에 적어 놓은 소환 당한 날짜를 확인했다. 정확히 딱 30일 남았다. 이 시간 안에 육체를 단련해야 한다.
“기다려라. 백층으로 이루진 백색의 탑.”
복수자가 올라간다.
피도 눈물도 전부 99층에 두고 온 잔인한 복수자가.
나를 배신하고 기만한 모두에게 돌아간다.
무슨일이 있어도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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