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3. 프롤로그
* * *
튜토리얼에 진입한 지도 10일이 지났다.
그 동안 하영은 기부받은 골드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모아두었다.
지금 있는 스킬과 특성으로도 당분간은 문제없기에 굳이 사용할 필요를 찾지 못한 것이다.
낭만검객: 아직 갈 길이 멀긴 하다.
이제는 익숙해진 닉네임에 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이유도 이유였지만. 사실 골드를 사용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번에도 미션 실패네요.”
하영은 저 멀리 홀로 서 있는 나무를 바라봤다. 무언가에 긁힌 상처들로 빼곡한 나무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워 보였으나. 부서지진 않았다.
낭만검객: 10번 던져서 나무 부수기 미션 실패 ㅅㄱ
실패를 알리는 채팅에 하영이 연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 나무가 부서지지 않은 이유. 그건 곧 하영이 골드를 사용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다.
“에휴.”
하영은 창을 줍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연속된 미션 실패 때문인지 발걸음이 무거웠다.
“파이어볼은 나무 근처에도 못 가고. 투창은 계속해서 스쳐 지나가기나 하고. 진짜 답이 없네.”
하영은 풀이 탄 흔적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창피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무 근처에 불에 탄 흔적이 없어서 티가 안 나긴 하지만, 사실 하영은 투창 미션을 받기 이전에 파이어볼로 나무 불태우기 미션도 받았다. 단지 나무 근처로는 불덩이도 튀지 않았을 뿐이다.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진짜 미안한데. 너는 ㄹㅇ 답이 없다. 사람새끼가 맞긴하냐?
낭만검객: 아닥해라 뉴비야.
꿀벌아넣을게: 뉴비는 뒤지기 싫으면 그냥 ㄹㅇㅋㅋ 만 치라니까? 애는 멍청하고 쓸모없는 게 매력이야~
야스마스터: 그래도 얼굴과 몸은 쓸 만함.
기존, 아니 방송 설립 때부터 방송을 본 설립자가 돼 버린 시청자들이 나를 포장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악질의 말은 사실이다.
정하영. 애는 소설 속에서 언급됐던 것처럼 재능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리고 그건 몸을 차지한 나도 마찬가지다.
정하영이 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과 특성을 다 다루기는커녕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수준으로 재능이 부족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마음처럼 따라지지 않았다. 다, 이 망할 놈의 몸 때문이었다.
적어도 정하영이 아닌 나에게 마법이나 무예 둘 중 하나라도 재능이 있었으면, 정하영의 저주받은 재능을 어느 정도 커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이 답 없는 상황을 보완할 방법은 명중률에 보정을 주는 특성이나 스킬. 또는 재능에 관련된 특성뿐이다.
“창은 수준은 낮지만, 보조해주는 게 특성이 있어서 괜찮아질 거 같기는 한데… 파이어볼은… 하아.”
투창 솜씨도 맨 처음에는 파이어볼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파이어볼 과 다르게 투창은 창의 기본이라는 특성이 숙련도 보정을 해주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이는 벌어졌다.
그래도 검투사의 의지 덕분에 전투를 치룰 때만큼은 그 언제보다 잘 움직여 주었기에.
손안에서 흘러내리는 모래같은 감각에 의지하며 수련 했기에.
나무 근처로라도 창을 던질 수 있게 되었지만.
‘이런 작은 보정은 주인공의 재능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
재능 덩어리인 주인공이 내가 10일간 해낸 성과를 10분 만에 얻어 갈 걸 생각하니 배가 아팠다.
“아. 주인공이 재능이라도 없었으면 그나마 할 만했을 텐데.”
진심이 가득 담긴 하영의 투덜거림에 궁금증이 유발된 설립 시청자가 질문했다.
하영에 대한 것을 대부분 알고 있는 설립 시청자였기에 하영이 자주 언급하는 주인공에 대해 궁금증이 돋은 것이다.
낭만검객: 여기 세계의 주인공이 얼마나 썌길래 그렇게 한탄 하냐?
인방인생하급신: 그건 나도 좀 궁금하긴 하다 ㅇㅇ
그 말에 하영은 잠시 소설 속의 내용을 생각하다 대답했다.
“주인공이 회귀했다고 했죠.”
낭만검객: ㅇㅇ
“개가 회귀한 시점이 튜토리얼이 막 시작된 시점이거든요?”
말하다 말고 잠시 뜸을 들였다. 골드를 달라는 신호였다. 하영은 종종 이런 식으로 조금씩 골드를 모으곤 했다.
야스마스터님이 100골드 기부.
아 빨리 말하라고 궁금하다고!
생각 보다 빨리 올라온 기부 메시지. 시청자가 기부 타이밍을 빠르게 눈치 챌 정도로 골드를 많이 빼 왔다는 사실에 하영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이 정도 속도면. 나 완전 골드만 밝히는 년으로 보이는 거 아니야?’
정답이었다.
하영은 앞으로는 좀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하기로 했던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능력치도 일부만 가져온 주제에 재능과 경험으로 다 패고 다닙니다.”
낭만검객: 아ㅋㅋ 한마디로 부캐로 깽판 치는 고인물 같은 거네.
인방인생하급신: 그럼 인정이지.
“문제는 그 고인물이 좋은 보상마저 다 독점한다는 거죠.”
이야기를 하는 사이, 하영은 어느새 목표로 삼았던 나무에 다다랐다.
즉석나비탕24시: 그럼 튜토리얼에서 죽이면 되겠네.
낭만검객: 30일마다 들어온 대잖아 ㅂㅅ 련아. 30일 동안 성장하고 나오는 8톤 트럭을 얇은 벽으로 어떻게 막아 ㅋㅋㅋ
야스마스터: 재 중간에 들어온 애라 그런 거 모름 ㅋㅋ
꿀벌아넣을게: 뉴비 커여워~
뉴비 시청자의 질문에 하영은 날 하나가 살짝 뭉개진 삼지창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긴 한데. 아시다 시피 저랑은 회차가 달라서…”
튜토리얼에서 성장하기 전에 처리 하는 것.
그것이 하영이 주인공을 죽일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이긴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튜토리얼은 탑의 창시자를 제외한 최고 권력인 탑의 의지마저 건들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_ 낭만검객: 그러면. 만약에 주인공이 지구에서 있을 때로 회귀하거나 2회차가 아닌 다회차 회귀면 어떻게 함?
워작 소설과 다르게 주인공이 더 이전으로 회귀하거나 여러 번 회귀한다고?
하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그 질문에 욕을 내뱉었다.
“으, 씨발. 그런 끔찍한 말은 하지도 마세요. 선생님.”
천재적인 재능과 많은 양의 경험으로 금방 성장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더 준다니. 그건 밸런스 붕괴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여기 보이시죠? 저 소름 돋은 거?”
하영은 닭살처럼 소름이 돋은 팔뚝을 보여주며 투덜거렸다.
낭만검객: 아니ㅋㅋ 그래서 어떻게 되냐고 ㅋㅋ
평소 같았으면 하영의 투덜거림에 끝날 대화가 오늘은 끊어지지 않았다.
낭만검객: 어디까지나 만약에 이야기니까. 어떻게 되는지 한마디만 해줘.
오늘따라 유난히 집요한 채팅에 하영은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낭만검객님이 100골드 기부.
빨리 말해줘! 씹년아!
야스마스터님이 100골드 기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빨리 말해봐.
“어~ 기부 감사합니다!”
유도하지 않은 기부, 오랜만에 받아본 그 달콤함에 기분이 살짝 좋아진 하영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만약 그러면 전 주옥된거죠. 아마 빡쌔게 도망 다녀도 지금 저의 상황으로는 역부족일 걸요?”
말을 마친 하영은 별소리를 다 하게 한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그러자 낭만검객이 홀로 웃었다. 왜 웃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선생님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뭐 좋은 일 있어요?"
***
과거로 돌아와도 사라지지 않은 것은 기억뿐만이 아니다.
탑의 시스템 또한 정상적으로 잘 남아있다.
그렇기에 나는 첫날부터 몸을 단련시켰다.
“후우!”
주변 사람들이 미친 사람을 본 것처럼 쳐다봐도 멈추지 않았다.
첫날에 한 손에 들려있던 10kg짜리 덤벨은 이미 배의 무게에 달하는 바벨로 바뀐 지 오래였다.
[근력이 상승했습니다.]
비록 시간은 적으나 지구에 있던 시절로 회귀해서 다행이었다. 만약 튜토리얼이 시작한 때로 회귀했으면 이 정도의 성장 속도를 이룩하는 것은 무리였을 게 뻔했다. 그곳은 능력치를 키우기보다는 경험을 쌓는 곳이었으니까.
[체력이 상승했습니다.]
첫 날은 헬스장에서 운동했었다. 하지만 지구에서의 근육 단련을 위한 운동이 아닌. 오로지 능력치를 올리기 위한 운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급히 바벨을 마련해야 했다.
[내구력이 상승했습니다.]
하긴 아령도 아니고 무거운 바벨을 검을 휘두르듯이 휘두른 건 내가 봐도 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미 9일간 오를 대로 오른 능력치는 잘 오르지 않았다.
“바벨 원판을 추가해야겠군.”
원혁은 능력치가 오르는 속도가 줄어드는 걸 느끼자마자 바벨 봉에 새로운 바벨 원판을 추가시켰다. 이렇게 쉽게 다음 단계로 옮겨 갈 수 있는 것이 현대의 운동 기구의 장점이었다.
‘이제 100kg인가.’
이번 바벨의 무게는 100kg. 그것을 한쪽 팔에 각자 하나씩 들고 검처럼 휘둘렀다.
탑 안에서는 구하기 힘든 운동 기구와 영양소 넘치는 식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원혁에게 있어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그리고 원혁은 기회를 잡을 줄 아는 남자였다.
만약 원혁이 기회를 놓치는 바보였다면 탑에서 처음 배신을 당한 날 죽었을 것이다.
여하튼 원혁은 말도 안 되는 성장을 이륙해내고 있었다.
“앞으로 20일. 많이 웃어 둬라.”
원혁은 이를 악물고 바벨을 움직였다. 지친 탓에 안 그래도 무거운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원혁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들고 있는 무게가… 곧 너희가 느낄 괴로움의 무게다.”
힘이 빠지려 할 때면 분노를 일깨워 억지로라도 움직였다. 내구력을 빠르게 키우기 위함이었다.
[내구력이 상승했습니다.]
원혁은 몇 번 휘두르자마자 오르기 시작한 내구 능력치에 이가 다 보일 정도로 크게 미소 지었다.
벌써부터 20일 후가 기대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