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3. 프롤로그
* * *
내가 회귀를 하게 된 이유는 뭘까.
운동을 하면서도 원혁이 가장 많이 생각하던 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에 대한 해답은 쉽게 낼 수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던 그 생각을 뒷받침해줄 근거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인생은 질문의 연속인데. 내 질문은 왜 늘 답이 나오지 않는 걸까.”
답 없는 질문에 허탈해진 원혁은 고개를 들어 한국의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별 하나 없이 홀로 빛나는 달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것 같았다.
주변을 비추는 저 달도. 홀로 과거에 떨어진 나도. 모두 여기 있음이 분명한데. 잘 느껴지지 않았다.
원혁이 지구에 오고 나서 느낀 감정은 분노, 공허, 당황 이 세 가지뿐이었다.
그러나 20일의 시간이 지난 지금. 원혁에게 남은 것은 분노도, 공허함도, 당황도. 아닌 지독한 허탈함이었다.
원혁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아무리 봐도 가슴을 뚫은 구멍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분노하려 해도. 인간의 기억은 자꾸만 흐려졌다. 죽을 때까지만 해도 기억나던 그 개 같은 상황이 시간이 흘러갈수록 하나둘 잊혀졌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무언가를 잊은 것만 같다.
탑에서 꿈꾸던 평화로운 생활에 의지가 흔들려 목표가 희미해진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튜토리얼 때부터 회귀가 진행됐다면. 최소한 분노라도 간직한 채 탑을 오를 수 있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탑은 평화로움과 거리가 먼 곳이니.
그러나 그건 어디 까지나 상상의 이야기. 오지 않을 과거였다.
“그리고 내가 겪은 미래 역시. 오지 않겠지.”
지구에서의 악연이었던 첫사랑. 정하영을 제외하면 모든 배신이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린 것처럼…
“그러고 보니 정하영도 탑에 끌려갔었던 거 같긴 한데… 첫 복수의 목표로 삼아볼까?”
원혁은 학창시절 그녀의 미모를 떠올렸다.
잡티 없는 흰 피부, 날카로운 고양이 상의 그녀는 학교 내 남학생들의 영원한 검은 꽃이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그 누구도 쟁취할 수 없는 꽃이기도 했다.
“아니 차고 넘칠지도 모르겠어.”
그런 꽃을 꺾어 가지고 놀면 분명 이 허탈함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원혁은 크게 웃으며 다시 달을 올려다봤다.
정하영은 시작이었다.
원혁은 아직까지 뼈아픈 배신을 했던 이들의 얼굴과 몸은 기억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복수할 예정이다.
비록 지금은 흐릿한 목표 탓에 방황하고 있기는 해도. 현재의 나를 이루는 근원은 어디 까지나 복수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잘한 복수에까지 모든 것을 걸 거냐고 물어본다면… 솔직히 손해가 좀 크다 싶으면 하지 않을 것 같다.
“지구의 평화로움을 다시 느끼고 싶으니까.”
빈껍데기 같은 평화라도 좋다. 좋아하는 사람과 평화를 누리자는 생각은 포기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 아니다. 현대의 평화로움과 간편함. 그리고 재미다.
띠리링.
원혁의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10일 전에 시작한 신작 모바일RPG게임의 길드 메시지였다.
낭만검객: 원혁님 빨리 좀 오셈. 지원 필요함.
원혁은 빠르게 스마트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워너혁: 조금 있다 들어갈게요. 지금 좀 타이밍이 안 좋아서.
낭만검객: 바쁜가 보네 ㅋㅋ
워너혁: 기분이 안 좋은 거긴 한데. 상황도 좀 그렇긴 하네요. ㅋㅋ
원혁은 쓰게 웃었다. 사실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긴 하다.
원혁도 10일 전까지는 허탈해하면서도 복수를 위해 하루 22시간 쉬지 않고 운동했다.
사실상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능력치를 키운 것이다.
“탑을 올라가는 RPG라… 인간이 상상력이 풍부하긴 해.”
운동의 시간을 줄여서까지 이 게임을 하게 된 이유. 그건 레벨을 올려 능력치를 올린다는 것을 제외하면 10여 년간 원혁이 오르던 탑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탑의 내용이나 몬스터는 좀 많이 다르긴 하지만…”
탑을 오른다는 것 하나만으로 탑과 복수에 미쳐 있던 원혁의 호기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띠리링.
다시 한 번 울리는 스마트폰의 소리. 원혁은 폰의 화면을 쳐다봤다. 이번에도 역시 길드 메시지였다.
낭만검객: 그 10일 전에 말한 세상에 복수 어쩌고저쩌고하는 소설은 어떻게 됨.
“10일 전?”
10일전이면 한참 복수에 미쳐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다.
“…다시 떠올려보니 매우 부끄럽군.”
원혁은 자신의 흑역사를 건드는 길드장의 메시지에 작게 몸서리쳤다.
복수하는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낀 게 아니라, 이걸 모르는 사람에게 말했다는 것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이었다.
워너혁: 아. 그건 좀 그만 이야기해주세요. 솔직히 좀 창피해요.
낭만검객: ㄱㅊ 다 말해 보셈.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도와줄게. 나 이런 내용 엄청 좋아함
자신의 복수를 도와준다는 말에 원혁이 쓰게 웃었다. 자신이 복수를 얼마나 잔인하게 하려는지 알면 도망갈 사람이 저리 말하니 좀 웃겼다.
워너혁: 형, 아무리 형이라도 제 복수를 도와주실 수는 없을 걸요?
낭만검객: 아니, 아는 사람 이야기 같아서 들어 주고 싶어서 그래.
워너혁: 솔직히 맨 정신으로 할 이야기는 아니라.
낭만검객: 에이 조금만 해줘.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음. 그냥 ‘사랑했다던 사람들’ 위주로 해주면 충분함 ㅋㅋ
워너혁: 아. 에반데.
낭만검객: 해줘.
집요한 길드장의 메시지. 원혁은 길드장이 원래 짓궂은 사람이라는 걸 그간의 기억으로 알고 있었기에. 말을 돌리는 걸 포기하고 말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답했다.
워너혁: 이 이상은 물어보면 화낼 겁니다.
낭만검객: ㅇㅋㅇㅋ 이해했음. ㅋㅋㅋㅋ
길드장의 메시지에 원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원혁의 인간성이 여러 차례의 배신과 가혹한 탑의 환경으로 박살이 나긴 했지만. 관계없는 사람에게까지 화풀이할 정도로 성격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할 수는 없지. 배신자들이라면 또 모를까.”
정하영처럼.
***
원혁이 길드장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은 지도 9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원혁은 몸도 마음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드디어 내일인가.”
육체 관련 능력치는 어느 정도 매 꿨다. 복수심도 다시 충전했다. 지구의 평화로움이 그리울 것 같기는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원혁이 내일 탑에 소환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까.
“내 인생을 망친 주범들, 너희만큼은 꼭. 내가 복수한다.”
운명을 바꾸지 못하듯. 숙명 또한 바꾸지 못한다. 평화로움에 무뎌진 검이라도. 사람을 죽이는 것에 문제는 없다.
원혁은 앞으로 그 사실을 증명할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되겠지.”
무뎌진 검으로 죽을 때 더 아픈 법이라는 사실을.
원혁은 검은색 캐리어에 필요한 물건을 담았다.
스마트폰, 충전기, 식칼, 식량. 등등 많은 것이 캐리어 안에 들어갔다.
“소원의 부적…”
원혁은 캐리어의 마지막 공간에 소원의 부적을 넣었다.
필요 없는 것을 굳이 가져갈 필요는 없지만, 시작을 함께했으니 끝도 함께 하고 싶었던 과거의 간절한 마음을 부적에 담았다.
이로써 탑에 갈 준비는 완료했다.
“오늘 밤. 튜토리얼로의 이동이 시작된다.”
원혁은 고개를 돌려 창문 쪽을 쳐다봤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이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중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건. 좀 부러운데.”
원혁이 꿈꾸던, 목숨 걱정 없는 삶. 그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다.
원혁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꿈의 풍경을 차분히 눈에 담았다.
튜토리얼로의 이동은 사람이 잠들고 나서 시작된다.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아마 자면서 무언가를 들고 자는 사람은 없어서가 아닐까 싶긴 하지만, 이건 어디 까지나 추측이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아.”
첫 소환 때. 원혁은 속옷만 입고 자다가 팬티 바람으로 탑에 소환 당했다.
덕분에 튜토리얼에서 파상풍에 걸려 죽을 뻔했다.
“그런 억울한 최후는. 이젠 사양이야.”
오늘 밤 원혁은 이 캐리어를 손에 든 채로 잠에 빠질 예정이다.
튜토리얼의 공간으로 소환될 때 같이 소환될지는 미지수지만, 시도를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포기조차 할 수 없으니까.’
원혁은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은 채 침대에 걸터앉았다.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귓가에 울렸다.
째깍 째깍.
빨라지는 듯한 시계 초침 소리에 캐리어를 잡은 손에서 땀이 마구 흘렀다.
탑에서는 늘 지구에 있기를 꿈꿔 것만, 정작 지구에서는 탑을 위해서만 살다 갔다.
그래서 그런지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하루정도는 마음 편히 쉴 걸 그랬다. 탑 생각이 나는 게임을 뒤로하고, 능력치를 위해 하는 운동을 잊어버린 채. 아까 본 연인처럼 평화로운 삶을……
아니, 안 된다.
도저히 연인이 생기는 상상을 할 수가 없다.
같이 손을 잡는다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여자 친구라 생각했던 이들에게 배신당했던 것이 떠오른다.
꺼진 줄 알았던 불씨에서 피어오르는 불처럼. 그들이 있는 탑에 돌아간다 생각하니 다시 분노가 끌어 올랐다.
“후우……”
원혁의 손이 갑작스러운 분노에 반응해 떨렸다.
하지만 원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분노를 차갑게 식히며 돌아올 허탈함을 기다렸다.
“난 충분히 기다렸다. 그러니 너희들도 기다려라.”
원혁은 깊은 상처를 입힌 녀석들에게 복수한 후, 맛볼 행복한 미래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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