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3. 프롤로그
* * *
20일.
검투사의 의지 없이 처음으로 투창을 성공해, 나무를 꿰뚫은 데 걸린 시간이다.
당시 시청자들은 하영이 나무를 꿰뚫는 것에 너도나도 찬사를 보냈다.
그만큼 나무를 꿰뚫는 데 걸린 시간이 재미없고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하긴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나무에 창만 날려댔으니…’
하영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들은 다른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일과를 지켜봤다.
그러니 아무리 지루함을 느껴봤자. 그 지루한 일을 직접 해온 당사자보다 지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내 마음을 시청자들이 이해해준 게 되나?’
하영은 비인간적이었던 시청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이 내 마음을 이해했다? 말도 안 된다. 그들은 날 이해 못 한다. 그리고 이제 나도 날 이해 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하면 안 된다. 나나 그들이 지금의 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순간은, 내가 그들처럼 비정상적인 존재가 되는 날일 테니까.
하영은 픽 웃으며 투창 스킬을 사용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하영의 손끝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눈에 마력이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감각으로 마력이 방출됐다는 것을 느낀 것에 불과했다.
슈웅.
하영의 발밑에 있던 창이 자기 혼자서 떠오르더니 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탁!
명중이었다. 하영은 단 한 번에 투창으로 목표물인 나무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시원하고 명쾌한 한방이었다.
그러나 하영은 그 모습에 만족하기는커녕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마력을 보는 눈이라도 있었으면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었을 거 같은데.’
하영은 너무도 아쉬웠다. 막상 스킬을 잘 사용하는 경지에 도달하니, 연습하면서 못났던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마력이 빠져나온 것은 느꼈지만, 마력이 창에 스며드는 감각은 느낄 수 없었다.
때문에 하영은 얼마만큼의 마력이 창으로 들어갔는지 알지 못했다.
‘그 탓에 종종 미스가 발생한단 말이지.’
투창의 위력은 근력에 비례한다. 그러나 창이 날아가는 거리와 기본적인 속도는 주입된 마력의 양과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즉 하영은 수많은 연습으로 빠져나가는 마력 양을 느끼고, 대강 이쯤 던지면 맞겠거니 하며 감으로 투창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영님. 곧 던전에 진입할 준비가 끝난답니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하영은 고개를 돌렸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조잡한 가죽 갑옷을 입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그래.”
하영은 남자의 말에 짧게 대답하며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창을 주우러 다녔다.
“저도 같이 줍겠습니다.”
남자는 하영의 말에 빠르게 뛰어가 제일 멀리 있는 창을 주우러 갔다.
방금 하영을 지나쳐간 남자의 이름은 정동일.
그는 다른 튜토리얼의 조에 속하는 평범한 일반인이었으며, 하영에게 목숨을 빚진 자였다.
사실 실수로 마력을 과다 투여한 창이 저 멀리 날아가 고블린을 잡은 것에 불과했지만.
정동일은 하영이 사실을 말했음에도 고운 심성 때문인지 동일은 하영을 따라다니며 힘든 일을 대신 해줬다.
“역시 누군가를 부리는 건 편하단 말이지.”
하영은 빠른 속도로 창을 줍기 시작한 동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을 직접 회수할 방법이라고는 직접 주우러 다니는 것뿐인 현재. 체력과 힘이 넘치는 동일은 하영에게 있어 꼭 필요한 인재였다.
“하영님! 이 쪽에 있는 창은 전부 다 주웠습니다!”
저 멀리, 부서진 나무 사이로 창을 들고 있는 동일이 손 인사를 하며 소리쳤다.
하영은 엄지를 척하고 들어올렸다.
“엉 잘했어. 그럼 다른 쪽에 있는 것도 부탁 좀할 게.”
“예! 알겠습니다!”
동일이 크게 대답하며 다른 쪽 숲으로 사라졌다. 하영은 그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동일에는 미치지 못하나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내부터, 호리호리하지만 눈에는 독기가 가득한 여자까지. 온갖 종류의 사람이 모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점심은 뭐야?”
하영은 나뭇잎에 음식을 나누어 담고 있는 소년에게 가서 물었다.
“오늘은 바나나같이 생긴 과일과 당신을 닮아 달곰한 초콜릿이랍니다.”
느끼한 목소리에 하영은 인상을 구겼다. 하영의 말에 대답한 것은 소년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또 너냐?’
지금 들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하영이 남자가 친근하게 굴면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매일 이렇게 장난을 쳐왔다.
‘지금은 기분이 별로인데.’
평소라면 참아 줬겠지만. 오늘은 재능의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인지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우리 조장은 한가한가 봐.”
하영은 힘이 들어가는 주먹을 애써 무시한 채 방긋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봤다.
적대감과 장난스러움이 한 대 뭉친 목소리에 하영에게 말을 건 남성은 진정하라는 듯.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한가한 게 아니고. 조원들의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돌아다니는 거야.”
그의 이름은 김유진. 정동일이 속해 있던 튜토리얼 파티의 리더다.
“우리 조의 메인 딜러니까. 이런 특별대우 하나쯤은 해줘야 하지 않겠어?”
유진은 장난기 많은 사람이지만 하영이 있던 이들의 대장 격 인물이었던 서준영과 다르게 자신을 잘 아는 남자였다.
참고로 하영이 동굴에 돌아가 봤을 때는 모두 자리를 뜬 상태였다.
“그런 건 필요 없어.”
동굴의 모두도, 김유진의 친절도 모두 필요 없다.
하영의 단호한 외침에 유진은 곧바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그래도 점심이 저 메뉴인 건 맞아. 어제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 박스에서 초콜릿이 왕창 발견됐거든.”
“아 그래.”
하영은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닫고 빠르게 태세를 전환한 남자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대단한 남자였다.
“그 왜. 여자들은 초콜릿처럼 달달한 걸 좋아하잖아. 그래서 나도 좀 달곰하게 보이려고 좀 목소리 좀 조정해 봤지.”
“그러냐.”
말도 안 되는 소리었지만.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동일이 말하기를. 그는 이곳이 무언가의 튜토리얼이라는 것을 깨닫고. 빠르게 주변인들을 섭력했다고 한다.
언뜻 보면 서준영과 비슷하지만, 그는 준영과 다른 노선을 선택했다.
앞장서서 의견을 표하기보다는 뒤에서 약간씩 조정만 함으로써 자립심을 키워준 것이다.
‘성격도 좋지만 역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진심으로 남을 위할 줄 안다는 거야.’
무엇보다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이것저것 하지 않고 여자들도 전투에 참여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하영은 마음에 들었다.
‘분명 이 팀에 있는 사람들은 남녀 상관하지 않고 모두 오래 살아남겠지.’
그런 공평함이 이후 파티원들에게 경험으로 남아 그들을 지켜줄 것이다.
하영은 조금 전에 봤던 독기를 품은 눈의 여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각오가 있어야지 탑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하영도 저 여자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각오를 마쳤다.
“하영님! 창 다 챙겨 왔습니다!”
하영이 주변을 돌아보는 사이. 어느새 정동일이 창을 다 모아왔다.
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고맙다.”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영의 말에 아니라며 손사래 치는 동일이었지만. 하영은 동일이 자신을 도와줄 때마다 늘 감사를 표했다.
이는 하영이 빚을 지고는 못사는 사람이었던 점도 있지만, 소설 속 정하영이 했던 일은 하고 싶지 않은 반발 심리가 작용한 것이 컸다.
‘아무리 극한의 상황이라도.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해.’
정하영.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그녀는 정말 썅년이라는 말이 절로 어울리는 여자였다. 여자라는 이유로 특혜는 전부 받아 처먹으면서, 평등을 요구하는 염치없는 여자였다. 그러면서도 강자에 편에 붙어 다른 사람들을 하대했다는 점에서 가장 질이 나빴다.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하영은 굳게 다짐하며 아공간 주머니에 창들을 집어넣었다. 창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집어넣고 싶다 생각한 것만으로 창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것도 참 편리 하단 말이야.’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주머니. 하영은 그 주머니를 위로 던지고 받으며 씽긋 웃었다.
하영이 이 조에 남아 있는 이유. 그건 바로 이 아공간 주머니를 김유진에게서 양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영은 투창을 성공 시키자마자 소설에서 봤던 대로 목표로 삼은 던전이 생성되는 지형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하영이 원하는 특징을 가진 ‘고블린 부락’ 던전은 이미 클리어 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고 뒤늦게 튜토리얼에 소환되는 것은 한 팀이 아니라는 내용이 소설 속에 다는 사실을 떠올렸었다.
‘화풀이로 나무에 창을 던지다가 우연히 정동일을 구했었지.’
하영은 혼자서 뒷정리를 하다 고블린들에게 습격당했던 멍청하지만 착한 동일을 떠올리며 픽 웃었다.
“헛!”
그 모습을 본 동일은 얼굴이 빨개진 체 어디론가 급히 달려갔다.
“큼. 급한 일이 생겼나 보네.”
하영은 급히 발걸음을 옮기다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고도, 곧 바로 다시 일어서서 달리기 시작한 동일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니 웃을 일이 많아졌어.’
역시 혼자 살던 때보다 여러 명에서 모여 사는 게 좋다. 시청자?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봐도 일부 시청자를 제외하고는 정이 안 간다.
낭만검객: ㅋㅋㅋㅋㅋㅋㅋ 하영이 어케하냐ㅋㅋㅋㅋ 이제 하루만 더 지나면 튜토리얼 끝. 지옥 시작인데 ㅋㅋㅋㅋㅋㅋ 수고해라 멀리 안나간다
특히 저 낭만검객은 며칠 전부터 뭐가 그리 좋은지 항상 웃고 있어서 기분 나쁘다.
미션을 성공시켜도 웃고, 실패해도 웃는다.
‘대체 뭐가 저리 신이 나는 걸까.’
하영은 이해 못 할 시청자의 채팅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이해 못할 족속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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