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3. 프롤로그
* * *
“모두 조심하세요.”
유진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의식해서 작게 말했음에도 그들은 모두 유진의 말을 캐치해냈다.
“훌륭합니다.”
일행의 모습에 만족감을 느낀 유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모두 작은 소리에도 반응할 수 있도록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떨어져있는 유진에게도 느껴졌다.
‘다들 대단하네.’
일행의 맨 뒤에 서 있던 하영은 그들의 모습에 감탄했다.
지금까지는 별생각 없었지만, 이날이 오고서야 겨우 깨달았다.
‘과거에 봤던 책에 의지하여 미래의 일을 떠올리며 사는 나와는 달라. 이들은 미래를 보며 현재를 보고 살아가고 있어.’
지금까지와 다르게. 하영이 이번에 들어간 던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이었다.
회귀한 사람도 아닌데 아는 던전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지금껏 돌아왔던 던전이나, 튜토리얼에서 겪은 상황은 모두 책으로나마 간접적으로 체험해본 곳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검투사의 의지도 꺼놓은 상태다.
‘이 사람들은 이런 긴장감을 매번 느끼던 거였나?’
그렇기에 하영은 처음으로 긴장을 했다.
하영은 입에 모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곧바로 입에 다시 침이 모였다. 침은 삼켜도 긴장감은 삼킬 수 없었다.
‘긴장을 풀 방법이 없을까.’
알 수 없는 미래, 미지라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하영은 창이 들어있는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큰 도자기의 입구 같은 주머니의 입구 속에서 창이 하나 툭 튀어 나왔다.
하영은 익숙한 손길로 창날을 만지작거렸다. 차갑고 단단한게 느껴졌다.
‘좋네. 좋아.’
무기를 만지고 있으니좀 괜찮아지는 거 같기도 했다.
두려움과 긴장감에 벌벌 떨면서도, 하영은 주변의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쉬지 않고 주변을 탐색했다.
‘큰일이다, 다 수상해 보여.’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의 숲. 언뜻 보면 평범한 나무처럼 보이는 이상한 모양의 나무. 하영은 이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지금이라면 그 느끼한 말도 여유 있게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영은 조여 오는 긴장감에 숨이 막힐 거 같았다.
삶을 포기 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삶에 대한 집착이 하영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치유할 수단은 있지만. 머리가 잘려나가면 즉사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하영은 부디 쉬운 적이 나오길 빌었다.
그 순간이었다.
“여기 시체가 있어!”
이름 모를 남성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모두 진형을 유지해!”
유진은 사람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큰 소리로 소리쳤다. 그러고는 남성이 가리킨 방향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겉보기에 부패는 일어나지 않았어. 죽은 지 얼마 안 된 거 같아.”
유진은 손으로 시체의 코 부분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던 하영은 궁금증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시체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죽음에 익숙해진 하영이었지만 아직까지 사람의 시체를 직접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 움직이시면 안 되는데.”
근처에 있던 정동일이 말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탑을 오르다 보면 지겹도록 봐야 할게 시체였다.
그러니 비교적 안전한 지금, 미리 시체에 봐둬서 잔인한 것에 대한 면역을 키우는 게 좋았다.
생존게임좋아요: 에잉 쯧쯧 인간 시체가 뭐가 그리 신기하다고 호들갑이야. 내가 볼 때는 고블린과 별 다를 바 없구만.
고블린의 시체? 많이 보긴 했지만. 고블린은 인간에 가까운 생물일 뿐 인간이 아니었다.
“…저건.”
약간은 들뜬 기색으로 시체에 다가가던 하영의 얼굴이 놀라 굳었다. 딱 봐도 심각한 시체의 모습에 눈이 갈 곳을 잃었다.
“아는 사람인가 봅니다.”
시체를 살피던 유진이 물었다.
“아뇨.”
하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영이 놀란 이유는 시체를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영은 조금 더 시체에 가까이 갔다. 말라가는 피의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 하영은 혼란을 느꼈다.
하영은 자신이 시체를 본 순간 강한 연민을 느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제 죽음을 두려워했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될 정도로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최소한 두려움은 느껴야 할 텐데. 정말, 정말 신기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영의 두 눈이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자신이 지구의 평범함에서 벗어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요…”
유진은 혼란스러워하는 하영의 모습에 아는 사이라 오해를 한 것 같았다. 그는 자리를 이탈한 것에 아무 이유도 묻지 않을 테니 집중해달라며 부탁을 해왔다.
하영은 그의 정중한 부탁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격적인 사실에 조금 전까지 두려움을 느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체 일행을 따라 걸었다.
“뒤에 분들은 잠시 눈을 감아도 좋습니다.”
일행의 맨 앞에 있던 유진이 다시 말했다. 이에 하영의 앞에 있는 여성 중 몇 명이 눈을 감았다.
하영은 그와 반대로 눈을 최대한 크게 떴다. 이번에는 무언가 감정을 느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니었다.
서로 손을 잡고 죽어 있는 시체,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고깃덩이가 되어버린 시체, 등등.
절대 아무렇지 않을 광경이 아니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간과 고블린 두 사체 모두 다를 바가 없었다.
낭만검객: 순리아재 컨셉 ntr 당함?
모든것은순리대로: 이봐 검객이. 난 아재가 아니다. 그리고 컨셉도 아니다.
생존게임좋아요: 누군가의 죽음은 좋은 긴장감이 돼죠! 이제야 좀 볼만해지겠네요! ㅎㅎ
채팅의 말대로 오히려 기분 좋은 긴장감이 샘솟았다. 마치 어려운 게임에 도전하는 같은 기분. 하영은 인정해야 했다.
그에게 남은 건 희열과 공포를 포함한 몇몇의 감정. 그 이외의 인간성은 이미 바닥을 기고 있었다.
이건 현재 자신의 몸을 게임 캐릭터라 생각하며 희열을, 그리고 탐욕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가리롤스타: 하영님 눈 감아요 ㅠㅠ 이런 거 보지 마셈.
꿀벌아넣을게: ㄹㅇ 무섭자너~
채팅을 보며 하영은 웃었다. 비인간적이라 생각했던 그들의 채팅이 자신보다 인간적이었다.
‘하하. 그렇구나.’
소설 속 주인공이 왜 비인간적이었는지 알 거 같았다. 생명체를 죽이고 생명의 죽음에 무감각해진다. 이건 정말 겪어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모르는 묘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주인공은 배신까지 당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해.’
하영은 자신이 당할 잔인한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과 비인간적인 시청자들 탓에 빠르게 인간성이 무너졌을 뿐, 다른 사람과 같은 정상인이라며 자기를 위로했다.
‘내 선택은 절 때 틀린 게 아니야. 이게 정답인거야.’
프롤로그가 끝나가고 있었다.
***
맨 처음, 던전에 들어오면서 느꼈던 하영의 걱정과는 다르게. 던전의 클리어는 너무나도 쉬웠다.
독침이나 화살 같은 원거리 공격은 나무를 쪼개 만든 나무 방패를 든 이들이 전부 막았고. 공격은 하영을 비롯한 원거리 딜러들이 전부 처리했다.
컨트롤 타워 같은 유진의 역할도 매우 컸다.
‘나만 바보 됐네.’
하영은 이번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배분받은 검은 창을 보며 쓰게 웃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영이 지금까지와 다르게 상황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아무 정보 없이 던전을 클리어하던 유진의 판단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튜토리얼의 마지막 밤을 위하여!!”
유진의 큰 외침에 드디어 이 생활이 끝났음을 실감한 이들이 서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중에는 감정이 벅차올랐는지, 펑펑 우는 사람까지 속출했다.
하영은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서 검은 창에 대해 시청자들과 대화했다.
자신은 튜토리얼이 끝나면 탑에 천천히 올라가야 하는 저들과 달랐다.
그들은 위험하다 싶으면 아예 탑에 정착해서 살 수도 있었지만. 하영은 목숨을 걸고 빠르게 올라가야 했다.
생존게임좋아요: 좋은템은 아닌데, 좀 쓸 만할 듯. 튼튼하게 생겼음.
낭만검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행복한 시간 다 끝났죠? 망했죠?
아가리롤스타: 저 새끼 왜 저럼?
바른말만씀: 냅두셈 ㅈ병신임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시청자들과 조용히 떠들던 하영이 자꾸 물을 흐리는 낭만검객에게 따졌다.
“낭만님. 님은 앞으로 아무 이유 없이 웃기 금지입니다. 저 내일 상태창 얻으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말 좀 들으세요.”
진지한 목소리로 경고하는 하영의 말에 잠이 깬 새태창이 손안에 있는 상태로 말했다.
「저 불렀새요?」
“아니야. 새태창은 계속 자도 돼.”
「호애애… 알았새요.」
하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새태창에게 자라고 했다. 급변하는 목소리에 일부 시청자들이 놀라움을 표했다.
낭만검객: 어, 이건 좀 무섭다.
생존게임좋아요: 이, 이런 것도 좋아요!
아가리롤스타: 귀엽던 내 하영이 돌려내 씹알련들아!
꿀벌아넣을게: 내 잘못은 아닌 듯함 ㅇㅇ
그런 시청자들의 반응에 하영의 볼이 살짝 빨개졌다. 별일 아닌 것 같은데, 저렇게 크게 반응을 하니 뭔가 묘하게 창피했다.
“이, 이건 새태창은 내가 숨겨둔 비장의 수니까! 누가 듣기 전에 빨리 조용히 하라고 시키려고 그런 거야!”
하영은 손과 발짓까지 해가며 자신의 무해함을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놀릴 기회를 잡은 시청자들은 그런 하영의 반응에 기뻐할 뿐이었다.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언냐… 나 좀 소름 돋았어.
즉석나비탕24시: ㅇ, ㅇㅈ.
내이름은야스머신: 내 고추가 안서.
바른말만씀: 그건 병원가 ㅂㅅ아.
야스마스터: 하영이가 좀 무섭긴 해 ㅇㅇ
“그 왜 무림인들은 자기 실력 3할을 숨겨 둔다고들 하잖아요?”
모든것은순리대로님이 500골드 기부.
낭자는 좀… 무섭구려.
놀림 당한다는 걸 깨닫지 못한 하영은, 필사적으로 변명했지만. 찐퉁 무림인의 변명 막기에 한 번에 침몰해 버렸다.
“……이제부터 금칙어를 지정하겠습니다. 첫 금칙어는 ‘하영이 무섭다’입니다. 참고로 비슷한 어조로 말하는 것도 안 됩니다.”
하영은 축 처진 상태로 중얼거렸다.
“저 진짜 선생님들에게 마저 그런 말 들으면 무너져요.”
튜토리얼의 마지막 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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