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4. 문어, 악마, 나. 곤란.
* * *
하영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런 짓을 하면 후폭풍이 올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천신대가리멈춰님이 3,000골드 기부.
에라이 ㅂㅅ련 그걸 진짜 하냐 ㅋㅋㅋㅋㅋㅋ
생존게임좋아요님이 4,000골드 기부.
더 빨리 도망가세요! 이러다 죽겠어요!
낭만검객님이 3,000골드 기부.
아니 씨발! 하영아 여기서 뒤지면 진짜 안 된다! 진짜 여기서 뒤지면 ㅈ노잼이야!
“새태창아! 빨리 더 빨리 날아!”
하영은 새태창의 등 뒤에서 거센 바람을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시발. 정하영 이 미친년 때문에!’
원래 계획은, 문어, 아니 대머리에게 한마디 한 후, 사람들이 벙찐 틈을 이용해 도망가는 것이었다.
자신은 있었다.
탑의 1층, 선택의 탑.
이곳은 3개의 탑을 하나 선택해 올라갈 수 있는 곳이다. 끝까지 올라간다는 가정하에, 무려 얻기 힘들다는 그 ‘스킬’을 하나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선택의 탑. 층 이름에 걸맞게 도전자는 탑에 오르지 않는 선택도 가능하다. 도시의 중앙에 있는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하영은 이를 노리고 대범하게 나온 것이었다.
스킬 하나를 얻을 수 있다고? 그런 스킬쯤은 한 10일 정도 방송하면 구할 수 있다. 운 나쁘면 1년은 고생해야 하는 탑이랑은 효율이 다르단 말이다.
“새태창아 저쪽이야!”
「호애앵!!」
하영은 새태창을 타고 도시의 중앙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낯선 도시의 모습에 조금 혼란을 느끼긴 했으나, 괜찮았다. 둥근 원형의 도시 구조상 빠르게 중앙이 어디인지 눈치 챌 수 있었다.
“계집년! 지금 잡히면 내 애완동물이 되는 걸로 봐주도록 하겠다!”
“지랄을 해라 씨발놈아!”
새태창이 진화해서 날아가는 속도가 빨라진 덕분에 중간에 길을 잃었음에도 여유가 있었다.
하영은 우뚝 솟은 3개의 탑을 바라봤다. 소설에 나온 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묘하게 가슴이 설렜다.
“아쉽다. 골드 때문에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조금은 편히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웅장한 탑의 모습에 하영은 안타까움을 흘렸다. 사실 조금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한번 만지고 도망가기에는 대머리가 너무 만질만질했다.
오랫동안 만져 버린 것은 전부 그 대머리 문어 때문이다.
“교활한 놈! 일부러 대머리가 돼서 나를 노린 게 틀림없어! 이 악마 문어 아주 괘씸하네!”
하영은 분괴했다.
나를 잡으러 오는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더 빠르다는 것도 실수라면 실수였다.
“좀 천천히 따라오면 안 되냐!”
분이 폭발한 하영이 밑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들에 입장에서는 죄를 저지른 이를 체포하러 오는 것이었지만. 하영은 그저 억울할 뿐이었다.
솔직히 자기가 피해를 본 것도 아닌데. 좀 천천히 따라와도 되는 것 아닌가?
“순순히 잡혀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화풀이 대상이 된단 말이다!”
음. 그러면 인정이지. 하영은 자신을 따라오는 이들과의 대화를 포기했다. 빠른 인정이었다.
빰빠밤!
그때 익숙한 소리가 하영의 귓가에 들려왔다. 하영은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악질방송만보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상태창은 사용하기 싫다며.
“윽!”
갑작스러운 기부 메시지 공격. 해둔 말이 있던 하영은 공격을 맞고 순간 뇌가 정지했다.
하지만 뻔뻔함의 특성 효과로 극복했다.
“선생님. 어차피 떠날 층이잖아요. 그럼 보여줘도 되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인방인생하급신: 그럼 무림에서는 실력의 3할을 숨긴다는 건?
이어지는 시청자의 공격. 하영은 채팅을 보고 침착하게 생각을 굴렸다. 그리고 떠올렸다. 자신의 상황을.
“실력을 전부 보여줬어? 그러면 상점에서 골드로 새로운 3할을 보충하면 돼! 깝치지마! 골드는 신이고 나는 무적이야!”
하영은 새태창을 붙잡고 있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는 듯, 당당하게 나오는 하영의 태도에 시청자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방인생하급신: 아ㅋㅋ 들어보니 맞는 말이네.
야스마스터: 인정코정입니다~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skaw375: 이분 은근 똑똑한 듯.
어린이애호가: 아 맞제~ 힘을 다 보여줬으면 다시 키우면 대제~
***
“하. 잡히는 줄 알았네.”
다음 층으로 가는 공간 안. 하영은 그곳에서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다리로 달려온 것이 아니었음에도, 엘리베이터 근처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다리가 떨려왔다.
“한국에서 문 바로 닫기 버튼 연타 신공을 배워두길 잘했어.”
어느 정도 숨을 고른 하영은 머리에 난 식은땀을 닦으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새태창 덕분에 추격자보다 빠르게 도착하긴 했으나. 엘리베이터가 공중이 아닌 땅에 있는 바람에 순간 잡힐 뻔했다.
엘리베이터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추적자들은 죽자 사자 쫓아온 탓이었다.
“분명 잡혔으면 좋은 꼴을 못 봤겠지.”
하영은 엘리베이터 창문 밖으로 매섭게 자신을 노려보던 눈동자를 생각하며 오한에 떨었다.
“으, 악마 같은 놈들.”
하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눈동자였다.
낭만검객: 악마는 너잖아.
미션석세스: 탐욕의 악마ㄷㄷ
내이름은야스머신: 나 대머리인데 하영이 범하러 가도 됨?
병신을보면짖는개: 월! 월! 월월!
야스마스터: 아ㅋㅋ 대머리는 ㅇㅈ이지
악마라는 말에 건수를 잡은 시청자가 하영을 억지로 까려고 했다.
요즘 자극적인 걸 별로 안 보여줬더니 참을성에 한계가 왔나보다.
‘흐. 이래서 자극적인 방송은 양날의 검이라 하는 거구나.’
폭발할 듯한 민심을 보며 하영은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골드가 잘 벌리는 자극적인 방송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골드의 노예였다.
‘중후반부터 튜토리얼에서 다 같이 행동했으니. 10일 정도는 참아 준건가…’
하영은 유신 일행과 있었던 10일을 떠올리며 살짝 미소 지었다. 생각해보니 이 악질시청자들이 꽤 오래 참았다, 싶었다.
‘앞으로는 좀 느리게 올라가더라도 혼자 안전하게 올라가자.’
아무전조 없이 오는 지진처럼 흔들리기 시작하는 채팅창을 보며 하영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최대한 혼자서 탑을 올라가야겠다고.
바른말만씀: 이 악마년! 네가 내 아기씨를 모두 죽였어!
야스마스터: 죽인만큼 낳아라!
채팅을 보며 다짐을 마친 하영은 튜토리얼에서 생긴 나름의 짬으로 그들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특단의 조치로 자신에게 친화적인 여론을 조정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곧 있으면 2층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그런 부끄러운 짓을 2층에 먼저 온 사람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끔찍했다. 여자들은 불결하게 처다 볼 것이고 . 남자들은 하영을 보며 밤에 자기 위로를 할 것이다.
그건 절대 안 된다. 하영은 생각을 마치고 행동에 나섰다.
“아, 선생님. 제가 어떻게 악마입니다. 전 날개 없는 천사예요.”
하영은 자신의 머리에 천사의 링이 있다는 듯.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서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렸다.
여신따먹고싶다: 이거 나랑 하고 싶다는 싸인 맞지?
올라오는 채팅에 하영의 어깨가 움찔했다. 실수였다. 이 방에는 여신 추종자 있었다.
여따먹. 그는 여자 천사가 여신으로 진화한다고 믿는 신이었다.
“그, 그렇지! 성자! 아니 이 몸은 여자니까… 성녀급으로 착한 인성을 가졌다는 말이…”
성녀혐오함: 성녀급으로?
“…선생님들 그냥 악마 놈으로 어떻게 타협해주시면 안 될까요?”
말 한마디 하기 무섭게 올라오는 갈고리에 하영이 백기를 들었다. 지금은 심리적으로 너무 지친 상태였다.
낭만검객: 악마녀라고 인정하자.
야스마스터: 괘씸한 악마년. 이거 귀하네요.
천신대가리멈춰: 자꾸 은근슬쩍 남자라고 생각하는 거 보니까. 내 분신으로 자기가 여자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결국 하영은 포기했다. 엘리베이터가 다음 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가끔은 이렇게 하고 싶은 채팅을 전부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나 싶었다.
***
[2층 이야기가 선택되는 중.]
2층으로 올라가다가 멈춘 엘리베이터 안. 하영은 두 손을 잡은 채 하늘에 기도했다.
“제발 지구, 아니! 한국의 동화 같은 게 걸리게 해주세요!”
2층은 이야기의 탑과 비슷했다. 공상의 이야기를 무대로 시련이 진행된다. 공상의 이야기 속에는 하영이 알고 있는 동화부터 하영이 모르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까지 모두 포함되어있다.
[이야기가 선택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하영은 긴장한 채 다음 메시지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2층 : 악마가 사는 마을]
[잠시 후 2층의 문이 열립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본 하영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지구의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하영은 악마가 사는 마을이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날먹 개꿀. 이게 소설 빙의지. 이제야 좀 빙의다워졌구만.”
악마가 사는 마을.
그건 주인공이 12층에 겪었던 이야기의 무대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