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4. 문어, 악마, 나. 곤란.
* * *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 직후. 하영의 눈에 대략 30명쯤 되어 보이는 수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마을의 입구 앞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난이도 조정이라지만, 탑에서 지정한 수의 등반자가 올 때까지 문이 안 열리는 건. 좀 어떨까 싶군.”
“내 말이 그 말일세…”
하영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몇 명은 하영이 온 걸 확인하자 바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내가 마지막 등반자였나 보다.
“잘해봅시다.”
“네.”
“무림출신인가. 이거 참 든든하구만.”
“하하. 잘 부탁드려요.”
하영은 친절히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줬다. 힘들고 지쳤지만 최대 7일 정도는 얼굴을 마주 봐야 하는 사람이라 무시하기가 좀 그랬다.
그리고 어차피 올라가다보면 이런 친절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둬야한다.
[당신들은 악마를 잡으러 온 모험가입니다.]
[그리고 현재, 이 마을에는 악마가 살고 있습니다.]
[7일 후면 악마가 미쳐 날뛸 수 있는 마의 밤이 펼쳐지는 상황.]
[당신들은 악마가 모든 사람을 죽이기 전에 악마를 찾아 처치하시면 됩니다.]
[보상 : 생존한 마을사람 한 명당 100코인, 잘 벼린 무기 한 개(최하급~하급)]
[남은 마을사람 수 : 1238명]
하영은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천천히 악마가 사는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평범한데?”
소설에서는 음산한 기운이 풍기는 마을이라고 적혀있었는데, 직접 보고 느끼기에는 유럽 어딘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시골 마을 같았다.
“외국에 온 거 같기도 하고…”
하영은 돌로 포장되어 있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중세시대 도로는 사람의 인간의 변 같은 걸로 더럽다던데. 판타지 세계관이라 그런지 인변은커녕 쓰레기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신기하네.”
그렇게 하영이 걷기 시작한지 10분 쯤 지났을 때였다.
“당신 이름이 뭐지?”
평범한 인상의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묘하게 꺼림칙한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하영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요?”
“그래.”
“정하영입니다.”
“흠. 모험가인가.”
하영의 대답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하영이 살짝 인상을 썼다.
평범한 대화를 한 것뿐인데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마치 동류를 만난 기분이다.
“뭐야, 시발.”
하영은 말없이 자신을 지나쳐 가는 남자를 보며 욕을 내뱉었다.
처음에는 탑을 올라가는 등반자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저런 남자는 아까 본 적이 없었다.
“아. 맞다 참. 여기 거기였지.”
하영은 뒤늦게 이 마을이 무슨 마을인지 떠올렸다.
도로를 따라 걷는 걸음이 빨라졌다.
“빨리 모험가 길드로 가야겠네.”
운이 나빴다. 마을 사람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는 건. 이 마을에서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낭만검객: 마을 사람이 왜 이렇게 음침하게 생김?
야스마스터: ㄹㅇㅋㅋ 난 저 사람이 악마인 줄 알았음.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악마는 정하영인데?
꿀벌아넣을게: 악마가 정하영이 아니라 정하영이 악마임 ㅇㅇ
“역시 선생님. 뭘 좀 아시네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좀 그렇긴 합니다.”
시청자의 말대로 악마는 아니지만, 악마 같은 사람은 맞았다.
하영은 자기가 보고 싶은 거 위주로 채팅을 골라 읽으며 소통을 이어갔다.
성녀혐오함: 성녀 없으면. 난 다시 잠수해봄.
늘잠수하는남자: 나 불렀음?
생존게임좋아요: 생존이 아니라 여행 온 거 같은데, 뭔가 과거 게임의 감성이 느껴져서 좋네요.
야스마스터: 우리 하영이, 내가 지구에 있는 홍콩으로 여행 보내주긴 할거임.
꿀벌아넣을게: 나도 하영이 홍콩 보내줄래.
“여행 보내줄 정도로 골드를 준다는 말이죠? 역시 선생님들!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잊지 말고 나중에 기부해주세요~”
하영은 엘리베이터에서 실컷 채팅을 치고 차분해진 시청자들과 대화를 하며 다시 도로를 따라 걸었다.
인방인생하급신: 궁금해서 묻는 건데, 악마를 잡는 게 목표면 그냥 자결하면 되는 거 아님?
“선생님. 백보 양보해서 그렇게 통과한다 해도. 제가 죽으면 어떻게 탑을 올라갑니까.”
인방인생하급신: 아… 그러네.
바른말만씀: 님 빡대가리임?
인방인생하급신: 니 엄마임 ㅇㅇ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저 놈이 니 엄마면 제는 낳아주신 엄마랑 정신으로 낳은 엄마 두 명 인거네?
건강한언어습관짝: 어머! 바른말님. 엄마가 두 분이라 좋으시겠어요. ^^
“크흠, 선생님들 매너 채팅 해주세요. 여기 그런 방 아닙니다.”
꿀벌아넣을게: 네~ 그런 방 안입니다~
잡담을 시작한 지 10여 분이 흘렀다. 하영은 도로를 따라 걸었던 이유이자 목표였던 건물에 도착했다.
[모험가 길드]
하영은 소설에서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모험가 길드에 들어가, 길드의 접수원을 만났다.
“D급 모험가. 정하영씨 맞으시죠?”
“네.”
“모험가 증. 확인 완료되셨습니다. 묶을 방은 201호를 사용해주세요.”
하영이 모험가 증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확인을 했다며 웃는 접수원.
하영은 그 기괴한 모습을 보고 흠칫했지만. 이내 소설 속 내용을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길드의 얼굴인 접수원 컨셉이라 그런가, 미모가 나쁘지 않네.”
하영은 접수원 여자의 미모를 떠올리며 길드의 2층으로 올라갔다.
숙소와 비슷한 모양새를 갖춘 공간이 보였다.
이 역시 소설에 나온 대로였다.
“실례하겠습니다.”
하영은 수많은 방 중, 201호라고 쓰여 있는 팻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방은 평범한 침대가 방 넓이의 5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작긴 했으나, 안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침대도 푹신푹신하네.”
방에 들어오자마자 손으로 침대를 눌러보던 하영은, 침대가 주는 익숙한 부드러움에 바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푹신함에 몸을 맡긴 채 입을 열었다.
“자! 오랫동안 기다려주셨습니다. 이번 콘텐츠는~ 바로! 무엇이든지 물어봐 주세요! 정하영 편입니다!”
하영은 골드 수급을 위해 입을 털기 시작했다.
피곤한데 무슨 골드 수급 방송이냐 하겠지만. 하영은 피곤할 때도 골드를 수급할 수 있게 미리 콘텐츠를 생각 해둔 상태였다.
“자! 새태창아 너의 차례야!”
「호에에! 상태창 드디어 밖으로 나오는 것이새오?」
“아, 그건 아니고 거기서 묻는 거에 답만 해줘.”
하영은 밖으로 나오려는 새태창을 다른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새태창은 답답한 곳에서 나와 활동하고 싶었으나, 이전에 마음대로 상태창을 먹어서 큰 피해를 줬던 것을 떠올리고는 침울하게 하영의 말을 받아들였다.
「호에애… 알았새오…」
“미안하다. 네가 나오기에는 방이 너무 좁아.”
침대보다 훨씬 큰 새태창이 나오면 방이 가득 차버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편안한 휴식은 물 건너가게 된다.
그것만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크흠. 어쨌든 정하영이란 사람에 대해 궁금한 걸 모두 물어봐 주시면 됩니다.”
하영은 그 말을 끝으로 침대에 누웠다. 행복했다. 푹신한 감각이 등 뒤로 느껴졌다. 삶이 고단하면 잠이 편안하다던데, 왜 그런 말이 도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아! 선생님들 질문은 유료인 거 아시죠? 답변하기 쉬운 질문부터 100골드에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질문도 유료로 받겠다는 주제에 편안히 침대에 누워 방송을 이어나가는 하영의 모습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야스마스터: 뭐야 왜 누워? 물어봐 달라며. 설마 거기를 물어 달라고?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검은콩나물: ??? 왜 누우셨음?
내이름은야스머신: 난 왼쪽 물래.
채팅을 본 하영이 씩 웃었다. 같이 다닌 지 30일이 지나서일까. 시청자들이 자신에 대해 잘 알아가는 것 같았다.
“질문에 답변은 제가 아니라! 새태창이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방밖으로 들리지 않을 선에서 명랑하게 소리쳤다. 하영의 말에 새태창이 당황했다.
「호에에?」
반쯤 설마 했던 채팅창은 하영의 뻔뻔한 모습에 기염을 토했다.
야스마스터: 날먹 ON!
어린이애호가: 와 씨 ㅋㅋ 애가 악마가 아니면 대체 누가 악마임?
악질방송만보는사람: 넌 니 닉이나 보고 와라 ㅂㅅ아
병신을보면짖는개: 월! 월! 월월!
낭만검객: 이제 태어난지 30일 된 아기새도 누워서 막 부려먹네! 대단하다 정하영!
여신따먹고싶다: 미친련… 미친련… 미친련… 미친련…
바른말만씀: 어머~ 쓰니야~ 너 진짜 대단? 하다! 하는 짓이 꼭 앰이가 두 명 같아~
병신을보면짖는개: 월! 월! 월월!
군침도는사람: 바른 새끼는 지가 당한 걸 하영이에게 써먹누 ㅋㅋ
“선생님들. 저 잘 아시죠? 기부 많이 하면 제가 직접 대답해 드릴게요. 골드 좀 많이 뿌려주세요.”
하영은 편안하게 자세를 잡으며 천장 쪽에 있는 채팅창을 올려다봤다.
시선을 돌릴 때마다 자동으로 쫓아 와주는 채팅창 덕분에 방송하기가 편했다.
낭만검객님이 100골드 기부.
정하영의 나이는?
빰빠레 소리에 하영이 눈을 움직였다. 100골드인가. 나이 질문으로 100골드 정도면. 나름 괜찮은 거 같다.
“새태창아. 대답!”
「호애애! 정하영님의 나이는 23살인 것이새오!」
“예 저는 23살이라네요.”
하영은 기부를 받고. 기부 금액에 맞는 내용이다 싶으면 새태창이 들어있는 손을 툭툭 건드렸다.
낭만검객님이 300골드 기부.
남자였을 시절 하영은 동정이었음?
「호에에에! 맞아요!」
하영의 터치를 받은 새태창이 대신 질문에 대답을 했다.
야스마스터님이 1,000골드 기부.
하영이는 처녀인가요?
종종 선을 넘는 질문이 오긴 했으나. 깔끔하게 무시했다. 왜? 알고 싶으면 기부를 더 하던가~
“그래. 이게 옳게 된 내 방송이지.”
하영은 푹신한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편하게 골드를 수급했다.
“선생님들! 그 질문을 마지막으로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콘텐츠가 마무리에 접어들었을 무렵에는 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방송종료 쿨타임도 지났겠다. 오늘은 이만 끝낼게요. 4시간 후에 봬요.”
하영은 방종을 알리는 말을 꺼냈다.
낭만검객 : ??? 아니 한창 중요한 순간인데 이걸 간다고?
야스마스터: 처녀인지 아닌지만 알려주고 끄면 안되냐?
“안됩니다. 오늘 말고도 가끔 또 질문 받을 테니까. 궁금하면 다음에 마저 기부해주세요.”
하영은 부드럽게 그리고 단호하게 거절하며 손을 흔들었다. 방송 최소 시간이 있는 터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 4시간뿐이지만,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시간은 소중했다.
“그럼 4시간 후에 봬요 선생님들!”
하영은 쿨하게 방송을 종료했다.
그렇게 방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하영은 조그마한 창문 밖으로 달을 보며 중얼거렸다.
“6일 전에 잠방으로 골드를 좀 땡 겼으니 당분간은 잠잘 때 마다 방송을 꺼야겠지?”
하영은 어떤 콘텐츠를 해야 골드를 쉽게 덤 많이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남은 마을사람 수 : 123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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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마을사람 수 : 123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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