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28화 (28/85)

〈 28화 〉 4. 문어, 악마, 나. 곤란.

* * *

“꺄악!”

이른 아침. 하영은 비명소리에 눈을 떴다. 비명이 울리리라 예상 하고 있었기에 당황스럽지 않았다.

“예상대로 흘러가니까.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데.”

하영은 천천히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밖에서는 큰 소란이 일어났는지, 사람들이 이동하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선생님들. 저 일어났습니다. 방송 시작할게요.”

혼란한 밖의 상황과 다르게 차분하게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친 하영은,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하며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을 사람이 죽었음에도 아무런 일 없다는 듯 행동하는 하영의 태평한 모습에 빠르게 채팅이 올라왔다.

­ 꿀벌아넣을게: 하영이가 성장했다?!

­ 야스마스터: 애 맛 가버린 거 아니지? 좀 불안한데.

­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이분 원래 이런 사람 아님?

­ 낭만검객: ㄴㄴ 이게 다 초반에 하영이 잘 키워놓은 내 덕임. 고마워 하셈.

­ 바른말만씀: 고마워 시발아.

­ 아가리롤스타: 뭘 고마워해야 ㅈ같은 새끼야. 내가 다 엎어 키웠구만.

하영은 아침부터 바쁘게 올라오는 채팅을 구경하며 천천히 1층으로 내려왔다.

일어나면 채팅창부터 확인하게 되는 것이, 슬슬 방송과 함께하는 일상에 적응되는 것 같다.

“오. 있다.”

하영은 1층에 내려오자마자 접수실로 향했다.

터벅 터벅.

하영의 걸음은 나비처럼 가벼웠고 달팽이처럼 느렸다.

­ 검은콩나물: 오 드디어 뭔가 보여 주나요?

­ tyam442: 기대가 됩니다.

시청자들은 태평한 하영의 태도에 그녀가 어떤 일을 벌일까 기대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하영이 접수원을 보며 말했다.

접수원은 어제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서있었다.

하영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접수원에게 웃으며 물었다.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이 어딥니까?”

***

“쉽지 않네.”

하영은 모험가 길드 문 앞에 죽어 있는 시체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등반자들이 시체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지만 하영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쉽지 않아.”

접수원과의 대화는 평범했다. 아무런 이상도 없었고, 문제도 없었다.

오히려 접수원은 사람마다 입맛이 다른데 어떻게 가장 맛있는 음식점이 있겠냐며 자연스레 농담을 건네 오기도 했다.

“엇.”

도로를 따라 걷던 하영이 무언가에 걸려 휘청거렸다.

고개를 내려 보니 남자의 시체가 도로에 걸쳐 있었다.

“꺼림직 하더니 잘 죽었다.”

시체의 주인은 어제 하영에게 말을 걸던 마을 남자였다. 하영은 남자의 시체 옆으로 발을 옮긴 후 그대로 걸어 나갔다.

­ 낭만검객: 하영이 오늘 왜 이렇게 여유로움?

“그러게요.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할까요. 한 500골드만 주면 떠오를 거 같기 도한데. 한번 줘 보실래요?”

하영이 이렇게 편안하게 행동하는 이유, 그건 한 가지를 제외하면 전부 소설의 내용대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 낭만검객: 하영이 인성 드러나 버렸고~

­ 아가리롤스타: 뒤지기 싫으면 순수했던 하영이 돌려내라고 낭만 ㅆㅂ련아.

­ 기레기는무슨새일까: 속보) 신입 방송인, 정하영 인성 논란.

“아, 새로 오신 분 반갑습니다. 열심히 살아남아 볼 테니 후원 많이 해주세요.”

하영은 못 보던 닉네임의 시청자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생각했다. 설립 시청자마저 욕할 정도로 내 인성이 나빠진 것일까, 아니면 그냥 놀리는 것일까. 꽤 깊게 생각해봤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어차피 깊게 생각해봐야 좋을 게 없는 의문이다. 그래서 그냥 편한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시청자들도 하영의 무덤덤한 반응에 흥미를 잃은 것인지 조용해 졌다.

단 한 사람을 빼고.

­ 낭만검객: 이게 타락이 아니면 뭐가 타락임!

­ 인방인생하급신: 그럼 너 때문에 하영이가 골드를 밝히게 됐다는 거임?

­ 낭만검객: 애는 원래 이랬음.

­ 꿀벌아넣을게: 그렇게 말하면 어케 알아들어 ㅅㅂ, 재새기 완전 뉴비 절단기네.

“에휴.”

채팅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하영은 재미도 없고, 골드도 될 거 같지도 않은, 인성 떡밥을 조용히 시키게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낭만 선생님, 선생님도. 수탉크래프트에서 적 마린 한 명 죽었다고 난리를 피우진 않잖아요. 이것도 그거랑 같은 겁니다.”

­ 기레기는무슨새일까: 속보) 정하영, 탑에 속해있는 사람은 게임 속 캐릭터와 같다. 충격발언.

“모르면 지랄 좀 하지 마십쇼, 선생님. 죽어 마땅한 놈이라 그런 겁니다. 선생님들도 적 마린은커녕 마린 한 부대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잖아요.”

­ 야스마스터: ㅇㄱㄹㅇ ㅂㅂㅂㄱ.

­ 낭만검객: 그건 맞지

­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 검은콩나물: 마린이 뭐임?

­ 생존게임좋아요: 음. 게임 유닛? 이라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펼 할 거예요.

­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오 님도 수탉크래프트 알음?

­ 생존게임좋아요: 종족 생존 전쟁이라기에 저도 해본 적이 있어서 ㅎㅎ

­ 군침도는사람: 아. 그렇지, 적 유닛이 죽었는데 그걸 왜 슬퍼해 ㅋㅋ 내거면 몰라도…

­ 어린이애호가: 정상인은 내 마린이 죽어도 안 슬픔 ㅇㅇ

­ 소드마스터거품임: 넌 닉네임부터가 정상이 아니라고 ㅅㅂ새끼야. 나랑 같은 정상인인 척하지 마. 역겨우니까.

­ 병신을보면짖는개: 월! 월! 월!월 월으르르릉. 컹!

원초의 계획과 다르게. 난장판이 되어버린 채팅창. 당황할 법도 하지만 하영은 어느새 이 채팅창에 적응해 버렸다.

하영은 익숙해져 버린 채팅 내용들을 보며 과거 인터넷 방송을 처음 보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렇게 추억을 음미 하다 보니 어느새 음식을 파는 집에 도착했다.

하영은 곧 바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적당히 음식을 주문했다. 돈은 부서진 창날로 대신했다.

“선생님들, 그만 싸우세요. 밥 먹을 시간입니다.”

­ 낭만검객: 하영아. 네가 밥 먹는 거랑 우리가 조용히 해야 하는 거랑 뭔 상관이냐?

­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좀 편해졌다고, 우리랑 라이벌 관계를 맺으려 하지 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늘 갑인척하고 있지만 갑은 언제나 시청자였다.

­ 야스마스터: 늦게 방송에온 뉴비새끼가 우리라는 단어 쓰지 마라. 난 급이 다르다.

­ 낭만검객: 잘 들어라 하영아, 방송에서 시청자는 신이다. 시청자가 없으면 방송은 망해.

­ 아가리롤스타: 응 꺼져. 너 하나 없어도 우리 방송 안 망해.

­ 즉석나비탕24시: 그럼 우리가 신이지 ㅂㅅ아 우리가 사람이냐?

­ 악질방송만보는사람: 뭐 시발, 내가 사람인거에 보태준거 있냐.

혼란에 빠져버린 채팅창을 구경하며 하영은 조용히 묽은 스프를 먹었다. 맛은 없었지만, 기운은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역시 사람은 음식을 먹어야 힘이 난다.

­ 바른말만씀: 하영이가 조용히 하라잖아 장애련들아.

­ 검은콩나물: 지금 장애인 무시 발언하시는 겁니까?

­ 아가리롤스타: 그냥 다 닥쳐. 씨발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더라.

­ 병신을보면짖는개: ? 개는 원래 안 건드림.

어느새 접시가 비었다. 하영은 손으로 대강 입을 닦은 후 입을 열었다.

“선생님들. 이 마을에 관한 이야기. 궁금하지 않으세요? 솔직히 채팅창을 보면 좀 궁금해하시는 거 같은데.”

­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솔직히 좀 궁금하다.

­ 낭만검객: 그렇지! 스트리머답게! 너만 알지 말고 우리도 좀 알게 해줘 봐라!

스트리머답게 알려달라고? 하영은 방송을 시청한 기억을 떠올리며 고민했다.

음.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는 스트리머는 본적이 없어서 그런가,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평소처럼 골드나 벌기로 했다.

“궁금하면 500골드. 자세한 내막까지 알고 싶으면 더 많이 기부해주세요.”

­ 낭만검객님이 500골드 기부.

와, 진짜. 골드각 하나 만큼은 일류 스트리머다.

­ 검은콩나물님이 100골드 기부.

제가 방송을 잘 몰라서 그런데, 방송은 원래 이렇게 하는 건가요?

­ 천신대가리멈춰님이 500골드 기부.

그건 모르겠고, 골드나 더 기부해봐. 하영이 입 터는 것 좀 보게.

“아, 많은 기부 감사합니다. 여기요! 추가로 주문할게요! 이 집에서 제일 맛있는 걸로 주세요!”

하영은 쏟아지는 기부에 환하게 웃으며 추가로 음식을 주문했다. 기분이 좋아지니 씀씀이가 커지는 거 같았다.

“그럼 주문도 했으니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선생님들. 아. 한 번만 말 해드릴 테니 집중해서 들어주세요. 2번은 말 못합니다.”

이후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이 좀 꼬였지만, 머릿속으로 일차별로 나눠서 생각한 이후에는 꼬이지 않고 술술 이야기가 나왔다.

[1일 차] 오전까지는 모험가들은 각자도생.

이후 시스템 메시지를 읽고, 모험가라는 게 숙소를 구할 방법이라는 힌트를 깨닫고 모험가 길드에 대거 진입.

[2일 차] 마을사람 두 명 사망 확인.

이후 시체가 발견된 장소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눔. 죽은 사람을 마주했다는 여자 등반자의 증언 등장.

[3일 차] 밤사이에 마을사람 여섯 명 사망 확인.

이번에도 밤사이에 죽은 것으로 추정. 이 사건 역시 죽은 사람을 마주했다는 여자 등반자의 증언이 등장.

악마가 저지른 같은 살인이라 판단한 등반자들이 사람을 나눠 시간별로 순찰하기로 결정.

[4일 차] 잘 기억나지 않지만 꽤 많은 수가 죽어나간걸로 기억함.

마의 날이 가까워질수록 악마가 점점 대범해진다며 주인공이 웃던 게 기억남.

새벽이 오기 직전, 최초로 등반자에서 피해자가 발생. 등반자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음.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도 침착했던 마을 사람들의 묘한 태도와 등반자의 실종. 악마가 산다는 소문까지.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면 선생님들은 다 아시겠죠? 어 음식 왔다.”

어느새 새로 주문한 음식이 온 걸 확인한 하영은 급히 음식을 받으며 입을 다물었다.

이번 음식은 뽀얀 국물에 여러 채소가 들어있는 스프였다.

“와. 드디어 음식다운걸 음식을 먹겠구나.”

방금 먹은 스프가 맹물 수준이라 살짝 의심했지만. 가까이에서 맡아보니 조금 전에 먹은 음식과는 냄새부터가 다른 것이 안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라는 걸 알겠다.

“역시 냄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건가.”

하영은 새로 주문한 스프를 한입 떠먹었다. 스프 가장자리에는 평범한 빵이 반쯤 잠겨있었다.

“보통 판타지 소설들을 보면 빵이 벽돌처럼 단단하다던데 내 이빨 괜찮으려나.”

하영은 빵을 건저 한입 베어 물었다. 맛은 의외로 먹을 만했다.

약간 바게트 느낌이 나는 빵이었는데 꽤 고소했다.

물론 한국에서 먹었던 빵이나 스프에 비하면 형편없는 음식이었으나 이곳에 와서 먹은 음식들 중에는 최고 수준이었다.

힐끔.

빵을 반쯤 먹은 하영은 너무 오래 방송을 내버려뒀다는 불안함에 슬쩍 채팅을 쳐다봤다.

­ 낭만검객: 아. 아이가릿. 난 하영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음.

­ 미션석세스: 이거 보니까 갑자기 치킨 먹고 싶어졌다. 바로 시키고 온다.

­ 인방인생하급신: 난 이미 피자 먹는 중.

­ 생존게임좋아요: 아. 이런 소소한 추리거리를 주다니 굿! 아주 좋아요!

­ 검은콩나물: 방장님 이야기 좀 좀더 해주세요. 뭔지 모르겠음.

­ 건강한언어습관짝: 저도 좀 부탁합니다. 뒷이야기가 궁금하네요.

­ 내이름은야스머신: 후, 중간에 끊기는 야스? 어예 야스를 모르는 것보다 괴로움.

­ 야스마스터: 팩트)다.

채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영의 말을 이해한 자들과 이해하지 못한 자들.

이해한 이들은 대체로 방송을 자주 본 티가 나는 이들이었다.

­ 바른말만씀: 님들. 앰이 없음? 이걸 어케 이해를 못 함? 설명 다 해줬구만.

­ 검은콩나물: 아니, 해주긴 뭘 다해줘. 하나도 모르겠는데.

­ tyam442: 저분들 채팅 넘 무서운 듯 ㅠㅠ

뭔가 불길한 채팅에, 또 갈라치기 해서 싸울 것 같다는 조짐을 느낀 하영은 입에 먹던 빵을 빠르게 삼키며 말했다.

“잠시만! 새로 주문한 음식 좀 먹고요!”

우걱우걱. 하영은 불도저처럼 빠르게 남은 스프를 입에 털어 넣었다. 혼자 작게 중얼거릴 때부터 종업원이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 쳐다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선생님들. 이게 마지막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꺼억. 하영은 빠르게 음식을 다 먹고 트림까지 하는 것으로 식사를 끝 맞췄다.

“크흠, 선생님들이 더 궁금해 하시는 거 같으니까. 성의를 좀 더 표현해주시면 제가 그냥 다 말할게요. 진짜!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합니다. 이번에는 진짜에요.”

­ 야스마스터: 시발 음유시인이 따로 없네.

­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이딴 게 음유시인이면 인간 중에 부자인 사람은 음유시인 밖에 없음.

­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하영은 약 1,000골드 가량을 추가로 갈취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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