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29화 (29/85)

〈 29화 〉 4. 문어, 악마, 나. 곤란.

* * *

[당신들은 악마를 잡으러 온 모험가입니다.]

[그리고 현재, 이 마을에는 악마가 살고 있습니다.]

[7일 후면 악마가 미쳐 날뛸 수 있는 마의 밤이 펼쳐지는 상황.]

[당신들은 악마가 모든 사람을 죽이기 전에 악마를 찾아 처치하시면 됩니다.]

5일차 아침. 원혁은 마을의 입구에서 봤던 시스템 메시지를 떠올리며, 온종일 고민에 빠졌다.

마을 사람이 대량으로 죽고 나서야 급변하는 마을 분위기. 그리고 시체를 남기지 않은 등반자들. 원혁은 이 점이 수상했다.

‘한두 명 정도는 죽어도 문제없을 거라는 분위기였어.’

거대한 도시에서도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으면, 최소한 작은 혼란이라도 발생하는 법이다.

그런데 작은 마을인 이곳은 어떤가.

마을 특성상 서로서로 알고 지내는 것이 분명 할 텐데도, 살인이 발생한 둘째 날, 아무렇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을 보면 마치 평범한 일상을 보는 듯했다.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마저 문제가 되는 게 살인인데, 작은 마을은 살인 사건이 터져도 평화롭다? 이건 명백히 문제가 있다.

“처음 살인이 일어난 날과는 명백히 다른 분위기야.”

원혁은 도로에 주저앉아 차분히 주변을 살폈다. 낮인데도 사람은 돌아다니지 않고, 들려오는 것은 등반자들의 이야기 소리뿐. 마치 죽은 도시에 방문한 모험가가 된 기분이다.

‘한 명 정도 죽은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는 건가…’

시체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험가 길드의 정문 앞. 시체는 그곳에서 발견됐다.

“모험가 길드라…”

모험자로 있어야 하는 등반자들의 위치상. 확실히 등반자들이 먼저 발견하기 쉬운 곳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보기 어려운 곳은 아니었다.

모험가 길드가 있는 곳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도로 한가운데였다. 마을 사람들이 못 보고 지나칠 리 없었다.

“그런데도 혼란스러워하는 건 마을 사람들이 아닌 등반자들뿐이었지…”

원혁은 혼란에 빠졌다. 언뜻 보면 속수무책으로 마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이. 일이 꼬여가고 있는 것 같은데. 탑을 오르며 성장한 그의 직감이. 경고하지 않고 있었다.

‘회귀하면서 감마저 잃어버린 건가?’

아니면, 이 마을에 무언가 비밀이 있는 건가.

사람 한두 명 정도의 죽음은 가볍게 받아들이는 마을 분위기. 여자 모험가를 본 인물들 위주로 일어나는 살인 사건. 거기에 사건은 꼭 새벽에 일어난다.

“등반자가 죽였다면 분명 말이 나왔을 거야. 이들은 모험가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마을 사람이 같은 마을 사람을 죽였을 거라는 이야기인데… 이러면 마을 사람이 대량으로 죽고 마을 분위기가 변한 게 말이 안 된다. 애초에 같은 마을 사람이 많은 수의 마을 사람들을 소리소문 없이 죽인다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그렇다면 범인은 악마인가. 그것도 최근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원혁의 눈이 밝게 빛났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자신을 제외한 등반자를 전부 죽이면 된다. 악마는 그중에 있다.

***

모험가 길드의 2층 숙소.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하영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주인공의 생각은 대강 들어맞았어요.”

악마가 사는 마을.

사실 이 마을은 이익을 위해 마을을 방문하는 이들을 인신매매하는 집단의 모임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악마가 산다고 헛소문을 내 잦은 실종의 원인을 만들려 했다. 증거도 없는 허접한 소문이었지만, 정보의 이동량이 그리 좋지 않은 시골 마을이었기에 가능할 줄 알았다. 실제로 반 정도는 성공하긴 했다.

문제는 명예, 업적을 원하는 모험가들에게도 이 소문이 퍼졌다는 것이었다.

“우연히 얻은 기회에 인신매매의 맛을 알아버리긴 했으나, 평범했던 마을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힘을 기르는 모험가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죠.”

그들은 모험가들의 눈에 피해 조용히 인신매매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주목표가 되는 것은 비교적 힘이 적은 여자 모험가들이었다.

그들이 대놓고 싸우기에는 비교적 약한 여자 모험가들도 너무 강했기에, 그들은 적당한 실력의 모험가를 아침에 물색해서 밤에 급습했다.

마을에 만만한 모험가들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소문 덕에 끊이지 않고 모험가들이 방문했기에 공급은 충분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지만. 이들은 운이 꽤 좋았어요.”

이 일에는 이 마을의 모험가 지부도 관여되어 있었다. 중간부터 이 마을의 실체를 알게 된 그들은. 색을 탐하는 악마가 나타났다며 소문을 더 크게 퍼트렸다. 그리고 중간에서 여러 이득을 취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꼬리가 밟히지 않았다.

“하지만 운이 좋은 마을에도 끝은 찾아왔습니다.”

­ 미션석세스: 진짜 악마가 찾아 왔네. ㅋㅋㅋ

­ 아가리롤스타: 와. 그럼 나쁜놈들을 많이 살릴수록 더 많은 코인을 받는 거였어? 뒤통수가 얼얼한데.

­ tyam442: 거짓말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제대로 보셨어요! 그게 이 이야기의 포인트에요!”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인신매매하는 마을에서, 악마가 산다고 헛소문을 내 실종도 처리하고 인신매매할 모험가도 불러왔다가. 진짜 악마가 모험가 인척 마을로 흘러들어왔다는 어린이 동화 이야기.

그것이 악마가 사는 마을의 정체였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지구에서도 양치기 소년이라고 꽤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요.”

결론을 낸 이후로도 하영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골드를 받은 만큼. 재미를 주기 위해서였다.

­ 낭만검객: 아. 나 그거 알음. 비슷하긴 한 듯.

­ 검은콩둘기: 어디를 가나 비슷한 이야기가 돌기는 하죠.

­ 야스마스터: 세상사는 게 거기서 거기긴 하지.

­ tyam442: 그게 뭔 이야기임?

­ 야스마스터: 아! 양치기 소년 모르시는구나! 양치기 소년이 무슨 이야기냐면…

시청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영은 그 모습을 보며 침대에 누웠다. 더 이야기해봤자 그들의 이야기 흐름만 깰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골드 받은 만큼은 했다.’

서로 대화하기 바쁜 채팅창에 만족한 하영은 침대에 누워 휴식을 즐겼다. 이렇게 편히 있을 때마다 한국에 있을 때가 생각났다. 정말 그리운 과거였다.

‘앞으로도 이런 나날이 반복된다면 좋겠지만… 시간 관계상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겠지.’

하영은 그날 탑에 오르고 나서 제일 편한 시간을 가졌다.

***

늦은 저녁 시간. 침대에서 일어난 하영은 식당에서 가져온 빵으로 저녁을 때웠다.

“이 빵은 스프가 없어도 먹을 수는 있네. 부서진 창날들로 구매 할 수 있으니, 갈 때 좀 챙겨가야겠어.”

하영은 살짝 부풀어 오른 배를 만지며 말했다. 시청자들은 하영이 식사를 마친 것을 보자마자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식사하는 것에 상관없이 마구 채팅을 쳤겠지만. 하영의 노력이 통한 덕분에 밥 먹을 때만큼은 최대한 건드리지 말자고 약속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 낭만검객: 그런데. 이렇게 편히 쉬고 있어도 됨? 악마가 욕망 가득한 사람을 먹고 성장하면 어떻게 하려고.

­ 건강한언어습관짝: 마을에 있는 나쁜 놈들도 잡아 주세요 ㅠㅠ

­ 야스마스터: 건강님. 그렇게 부탁하는 거 아님. ‘나쁜 놈 한 명 잡을 때마다 ~~골드’라고 부탁하는 거임 ㅋㅋ

­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아! 사실 12층에서 시련을 할 때의 주인공은 몰랐지만, 추후 알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악마를 빨리 잡자는 채팅에, 하영은 까먹고 말하지 않은 소설 속 상황을 마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욕망을 탐하는 악마가 80% 이상의 마을 사람을 탐할 경우, 형태가 변하는데. 그 악마를 잡으면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걸 목표로 노리고 있습니다.”

­ 낭만검객: 그게 뭔데?

“궁금하면 10,000골드!”

­ 낭만검객: ㅋㅋㅋㅋㅋㅋ ㅈㄴ 비싸네.

물론, 골드를 때려 박으면 그 질문에 대해 먼저 답변해 줬다.

­ 군침도는사람님이 100골드 기부.

그럼. 강해진 악마는 어떻게 잡을 거 누?

“여러분들에게서 골드를 수급해서 강해져야죠.”

­ 군침도는사람: 이거 완전 골드착취녀네;

­ 야스마스터: 처녀인가요?

기부하면 다 대답하는 모습에. 중간마다 자꾸 이상한 걸 묻는 질문이 오긴 했으나. 이번에도 하영은 그런 질문은 다 무시했다.

아니, 애초에 하영은 정하영에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섣불리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시청자의 질문에 대답하려면 자신보다 더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새태창이 필요했다.

­ 건강한언어습관짝: 나쁜 마을 사람들 죽일 때마다 100골드씩 드릴게요. 꼭 좀 죽여주세요.

“아.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습니다.”

정의를 요구하는 질문에는 당연하게도 응했다. 얼마 전까지 하영은 성격 좋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저런 나쁜 놈들은 정의구현을 하고 싶은 게 당연했다.

“그러니까 기부는 하실 필요는…… 있겠죠. 말씀하신 금액의 딱 절반. 두당 50골드만 받을게요.”

살짝 정신이 맛이 가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 낭만검객: 근데 자신 있는 거 맞음? 악마가 얼마나 강해질지 알고? 나 진짜 너 죽으면 화나서 돌아 버릴 수 있음.

­ 야스마스터: 오… 웬일임?

­ 아가리롤스타: 나한테는 스윗 어쩌구저쩌구 하더니… 너도 드디어 하영이의 불쌍함을 깨달은 거야?

­ 낭만검객: 그건 아니고, 그런 게 있음 ㅇㅇ

­ 바른말만씀: 세탁기 돌리기 시작했죠? 역겹죠?

­ 내이름은야스머신: 엄마가 2명인 분은 좀 닥쳐주면 안 됨?

하영은 활발하게 타오르기 시작한 채팅창을 보며 미소 지었다.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이런 상황에서 질문 콘텐츠를 열어야 골드를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하영편! 이번에는 특별히 제가 직접 알려 드립니다!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모르는 거 빼고 전부 답해 드립니다!”

­ 방송계의유니콘님이 500골드 기부.

처녀인가요?

“몰라요.”

­ 꿀벌아넣을게님이 200골드 기부.

지금까지 자기 위로의 시간을 몇 번이나 가지셨나요.

“몰라요.”

­ 악질방송만보는사람님이 50골드 기부.

아는 게 뭐임?

“시청자 여러분을 잘 압니다.”

하영은 그날도 골드를 뽑아내며 일과를 마쳤다.

***

아침이 밝았다. 창문 사이로 들어온 햇빛에 눈이 뜨였다.

하지만.

들려와야 할 비명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3일 차] 사망자 없음.

예언에 가까운 미래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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