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4. 문어, 악마, 나. 곤란.
* * *
화가 나다가도 빵빠레 소리만 들려오면 저절로 기분이 풀린다.
화를 내다가도 반사적으로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 보면, 몸이 학습을 해버렸나 보다.
‘창피하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골드가 없으면, 골드를 벌지 않으면. 불안함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이게 직업병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하영을 방 안에서 나와 거리로 나갔다. 모험가 길드의 상주중이던 등반자의 대부분은 이미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끔찍하군.”
“2층이라도 악마는 역시 악마인가…”
하영은 소란을 떨고 있는 등반자들을 지나쳐 가며 주변을 살폈다. 조각난 시체의 잔인함과 고약한 악취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죽어야 할 사람임을 알아도 막상 이런 광경을 목격하면 마음이 조금은 아파져 온다.
“이봐! 어제 그 남자 못 봤어?”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았다. 이 익숙한 느낌은 설마… 하영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를 잡은 사람을 바라봤다.
하영의 키만 한 지팡이, 마법 등반자치고 튼튼해 보이는 체격. 어제 나에게 지혜를 나눠준 그 헌팅남이었다.
“누구를 말하는 거야?”
하영은 어깨에 올라가 있는 손을 털어내며 말했다. 나를 여자로 봤다는 것에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그에게는 도움을 받았다. 간단한 질문이라면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 왜. 나한테 아부 떨던 남자 있잖아.”
헌팅남은 어제 어깨를 으쓱대던 장소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녀석. 자기도 그걸 아부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나. 생각보다 뻔뻔한 놈이네.
“못 봤어. 왜 그러는데?”
하영은 모르겠다는 듯 말을 했지만. 사실 대강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가 됐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는 건, 악마에게 살해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게, 어제 새벽에 다른 동료랑 순찰을 나갔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말이야…”
역시. 내 생각대로 인가.
하영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 조각들을 가리켰다.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저 시체 중 하나일 것이다.
하영의 행동에 남자의 눈이 살짝 떨렸다. 저 조각난 시체들 중에 동료가 있다는 사실은 쉽게 믿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에, 에이 그러지 말라고 무서우니까.”
남자는 그럴 리 없다며 말하면서도 시체를 뒤져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옷가지 같은 걸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어, 어?”
만나지 별로 안 된 느낌이었는데도, 반응이 큰 걸 보니 아무래도 나를 헌팅 하는 것을 포기한 후, 자신에게 아부 떨던 남자와 같은 팀을 이루려 했었나 보다.
“…”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기 시작한 남자의 눈을 보니 좀 미안했다.
“그… 아니다.”
하영은 옷가지를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보고 있는 남자에게 너무 상심하지 말라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사과를 하려니 입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강철 같은 뻔뻔함.(최하급!)]
[난 강철보다 더 뻔뻔하거나 그와 동급이다.]
특성의 탓이었다. 하영은 필요 할 때 효과가 없으면서 이럴 때만 존재감을 뽐내는 특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허 역시 특성 탓이었나.”
[유연한 남탓.(최하급!)]
[유연한 남탓은 삶을 이롭게 한다.]
하영은 급히 장소를 벗어났다.
***
“자, 선생님들 보셨습니까? 제가 말한 대로 마을 사람들도 많이 죽었고, 등반자에서도 사망자가 나왔죠?”
이 마을에서 제일 어두운 골목길. 하영은 그곳에서 예상대로라며 웃었다.
낭만검객: 사탄이 누님 하겠다. 이 씹련아 ㅋㅋ
검은콩나물: 아니 하영님, 남이 알던 사람이 뒤졌다니까요? 이거 웃을 일이 아닙니다.
아가리롤스타: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어. 너무 신경 쓰지 마.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와, 괜히 악마가 아니누 ㅋㅋ
인방인생하급신: 왜 썅년의 방송 생존기가 방제인지 딱! 알아버렸고!
생존게임좋아요: 이제 좀 재미있어지는 듯해요 ㅋㅋ
채팅창을 본 하영이 살짝 울컥했다. 이건 정말 내 탓이 아니라 매우 억울했다.
“아니. 진짜 억울하다니까요? 저는 제 잘 못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방치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려 했다니까요?”
낭만검객: 이걸 특성탓을 한다고? 유연한 남탓 성능 미쳐버렸다.
야스마스터: 마 두 특성 모두 살아있네!
하영은 고개를 저었다. 말이 안 통한다. 내가 죽인 것도 아닌데 자꾸 엮어서 몰아갈려 하는 게 보였다.
“아니, 이제 다들 아시잖아요. 이건 보상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니까요?”
기레기는무슨새일까: 속보) 정하영. 죽을 만하니 죽은 거다. 충격 발언. 2층 만에 인성 드러나다.
바른말만씀: 와 시발. 이년은 뜬 다 ㅋㅋ ㄹㅇ 뻔뻔한 게 개꿀잼이누.
검은콩나물: 등반자들에게만 슬쩍 알려서 밖으로 안 나가게 하면 되는 거 아님?
아가리롤스타: ㅋㅋ 하영이 가서 말해봤자. 듣지도 않을 듯.
낭만검객: 귀찮아서 같은 동료를 죽여? 이게 악마가 아니면 뭐임?
억지로 엮어진 문제에 해명을 하던 하영은 검은콩나물의 채팅을 보고 그대로 침몰해버렸다. 솔직히 내 잘못이 없진 않았다.
“에헤이! 다 아시는 분들이 이렇게 나오면 저 섭섭해요?”
닉네임은10글자까지: 악마 그는 하영인가? 악마 그는 하영인가? 악마 그는 하영인가? 악마 그는 하영인가? 악마 그는 하영인가?
천신대가리멈춰: 도배하지 마! 씹년아! 하지만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군침도는사람: 우효! 뻔뻔한 하영이 겟또다제~
누가 봐도 장난삼아 자신을 놀리는 채팅창의 모습에 하영은 한숨을 내쉬며 아공간에서 빵을 꺼냈다. 순간 내가 진짜 악마 같은 놈이 된 건가 싶어서 식겁할 뻔했다.
“오, 아직도 빵이 맛있네.”
하영은 빵을 한입 베어 물고, 감탄을 내뱉었다. 구매한 지 하루가 넘었는데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어제보다 더 딱딱해지지 않았다.
‘혹시 아공간 주머니 속의 시간은 멈춰있는 건가?’
하영은 아공간이라는 공간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빵을 맛있게 먹었다. 탄수화물을 먹으니 기분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방송계의유니콘: 와 시발. 우리도 사람이 죽으면 죽었어? 왜 죽었지? 이러는데. 이년은 죽었어? 빵 맛있네! 이 지랄 하고 있네, 시벌 ㅋㅋ
야스마스터: 하영님 피도 눈물도 없는 게 서큐버스 같네요. ㄷㄷ
여신따먹고싶다: 왜 서큐버스죠? 피도 눈물도 없는 여신 같은 건 안 되나요?
성녀혐오함: 이 여자. 성녀로서는 어떨까?
인방인생하급신: 이 씹련들 ㅋㅋ 하영 방송 뉴비도 아니고. 악마의 피가 흐르는 썅년이 어케 여신이 되고 성녀가 되누! 생각을 해봐라 이거야!
즉석나비탕24시: 악마신 버려? 마신 버려? 마족은 생명도 아니야?
병신을보면짖는개: 왈! 왈왈!
빵을 먹으며 채팅을 보던 하영은 점점 산으로 가는 분위기에, 먹던 빵을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채팅이 심상치 않은 것이. 슬슬 메인 콘텐츠를 풀 시간이 가까워 진거 같았다.
“어허. 선생님들 억까하지 마세요. 어제 설명 다 들어 놓고. 이러면 섭섭합니다.”
기레기는무슨새일까: 속보) 정하영, 뒤질만하니 뒤졌다.
모든것은순리대로: 낭자, 본좌는 사람의 죽음이 저렇게 쉽게 다뤄질 게 아니라 생각하오.
“네네 맞습니다. 사실 제가 나쁜 놈이에요.”
하영은 채팅에 소통하면서도, 최소한의 손해로 이들의 불만을 달래줄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더 쉽게 악마를 잡기 위해서는 전력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떠올랐다.
이거다. 해답을 찾은 하영이 얕게 미소 지었다.
“오케이 알겠습니다. 제가 그럼 이번에는 저번과 동일한 조건으로 스킬 가챠 하겠습니다. 대신 이번에는 제 골드로 쓸게요. 이건 진짜 대 출혈 이벤트인 거 아시죠?”
하영은 진짜 큰마음을 먹고 세일을 결심한 가게 사장처럼.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떨어뜨렸다.
미소를 짓다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 너무나 작위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낭만검객: 난 늘 하영이 편이었어.
모든것은순리대로: 하영아 사람은 원래 죽는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야스마스터: 이 씹련들! 억까 멈춰!
사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자기 골드로 구매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하영의 방송에 너무 깊게 발을 들인 흑우 시청자들은 혜자라며 급히 여론을 돌리기 시작했다.
기레기는무슨새일까: ?? 그게 뭔 개 소리임?
스킬 가챠 이후에 들어온 시청자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바리를 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분위기에 편승했다.
기레기는무슨새일까: 속보 ) 정하영. 사실 날개 없는 천사.
그 모습에 하영은 언제 괴로워했냐는 듯, 채팅창을 보며 웃었다.
“진짜. 선생님들. 저한테 잘해 주셔야 합니다. 세상에 이런 놈 없어요.”
***
어느새 저녁이 되어버린 201호의 숙소 안. 하영은 멍하니 채팅창을 바라봤다.
이게. 시발 말이 되냐 천신 십ㄹ…(경고 4회)
로직 공개해 씨발련들아!
아니. 하. 어이가 없다. 그죠?
쩦. 이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여신님. 이 쓰레기 같은 자본주의 세상을 불태워 주세요.
하. 스킬기부 마렵다. 이 이상 좋은 스킬 기부하면 노잼일 거 같아서 안 하면서도, 자꾸만 스킬 기부하고 싶다 생각하는 내가 바보 같다.
조금 전과는 명백히 다른 채팅창의 분위기. 하지만 이는 당연한 모습이었다.
하영은 끔찍한 악몽을 꾸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게 현실일 리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하영은 지난 시간을 떠올려 봤다.
시청자들의 환호 속에 스킬 가챠를 시작한 것까지는 좋았다.
어떻게 가챠를 해야지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서로 의견이 갈려 투기장이 열렸고.
시청자들은 각자 자신의 의견에 무게추를 실기 위해 하영을 끌어들이려 했고 덕분에 기부를 두둑이 받았다.
그래, 딱 거기까지는 최고였다.
“씨발. 가챠 확률표 공개해…”
[마력 조종의 기초(하급!)]
[자신의 마력을 더 쉽게 조종할 수 있게 해준다.]
[집중력 향상(최하급!)]
[마력을 운용할 경우 집중력을 약간 향상시킨다.]
[자가치유(하급)]
[치유력을 약간 향상시켜준다.]
[동일한 스킬 존재 확인.]
[기존에 있던 스킬의 숙련도로 흡수됩니다.]
[자가치유(하급)]
[자가치유(하급)]
[자가치유의 등급 상승]
[자가치유(하급) > 자가치유(중하급)]
[악마의 기운(중하급)]
[악마외 종족만 획득 가능]
[악마의 종족이 아니라도 마기 능력치를 다룰 수 있게 해준다.]
[마기 폭발(하급!)]
[일정 마기를 소모해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를 증가시킨다.]
[십자베기(하급)]
[마력을 소모해 빠르게 십자모양으로 벤다. 위력은 낮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검만 있다면 사용할 수 있다.]
같은 스킬이 3번 나오는 것? 묘하게 악마가 생각나는 스킬들의 이름? 다 이해하고 참을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일반 스킬 알약. 10,000골드 구매 가능 개수, 전량 소진.」
하지만 모든 기회를 소진했음에도 중급 스킬은 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다.
“가챠… 이걸 만든 생물은… 존재해서는 안 될 생물이다.”
콘텐츠 돌려막기를 시전한 자의 비참한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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