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4. 문어, 악마, 나. 곤란.
* * *
될 때까지 뽑는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스킬은 기회를 전부 소진한 상황.
하영은 고민했다. 그러다 특성 알약은 기회가 5번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히 새태창을 불렀다.
그리고 특성 알약을 구매하기 위해 구매창을 열어 달라 하려 했다.
그러나 하영은 선뜻 특성을 구매할 수 없었다.
무언가를 다루게 해주거나 지식을 추가시켜주는 스킬과 다르게 특성은 내 본질이 바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이나 행동을 변화시켰다.
원래 내 몸이라면 모를까,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내 사고 방식과 기억뿐인 지금, 내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르는 특성을 구매하는 것은 내게는 너무 큰 도박이었다.
‘악마와 관련된 스킬이 너무 많이 나온 것도 좀 그래.’
막말로 남자 정기를 흡수하는 특성 같은 게 나오고, 성적취향인 부분까지 건드려 동성애자로 만들면. 하영은 서큐버스나 다름이 없어진다.
‘그건 안 되지.’
하영은 고개를 흔들어 특성을 구매하고자 하는 유혹을 이겨냈다. 자신은 정상적인 평범한 남성이다. 예쁘고 참한 여자랑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 거다.
가챠의 유혹을 이겨내고 정신을 차린 하영은 고개를 돌려 채팅창을 바라봤다. 채팅창은 서로를 탓하며 싸우는 채팅들로 한 가득이었다.
‘큰일이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채팅창의 분위기는 위험하다. 물론 과열된 분위기 자체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위기에 빠져 큰 기부를 유도 하거나 할 수도 있어 좋게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 까지나 내가 방송을 잘 유도할 수 있을 때에 한해서다.
이전과 다르게 시청자가 많아진 지금, 하영은 채팅창의 분위기를 완벽히 유도할 자신이 없다.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하영은 눈동자를 굴렸다. 이 상황을 반전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상황을 반전시킬 것을 떠올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하영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중급은 세상의 중심이라는 등급의 줄임말이 아닐까요? 그래서 뽑기 어려웠던 거죠.”
결국 하영은 아무 말이나 지껄이면서 생각할 시간을 벌기로 했다.
낭만검객: 그럼 중상급은. 세상의 중심보다 위라는 뜻임?
악질 시청자라 할 수 있는 낭만검객이 미끼를 물었다. 운이 좋았다. 이 시청자는 워낙 적대적이라 좀 더 적대감을 쌓아도 문제가 없었다.
하영은 얼굴에 영업용 미소 띠며 말을 이어갔다.
“바로 그거에요! 정확히 보셨어요!”
꿀벌아넣을게: 아니. 솔직히 이건 낭만새끼 잘못 아님? 저번서부터 자꾸 한 번에 해야 한다고 ㅈㄹ하는데 수상함.
“그것도 맞아요! 뭘 좀 아시네요!”
한번 입을 털기 시작한 하영은 필사적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러다 혼란스러운 채팅창의 분위기에 편승해 은근슬쩍 편을 갈랐다.
적군은 상황을 이렇게 만들 것에 일조했다 볼 수 있는 악질중의 악질 시청자들이었다.
“아니, 이거 한 번씩 가챠를 했으면 그. 그… 뭐냐… 확률이 균등하게 분배되어 더 높은 확률로 중급을 얻을 수 있던 거 아닙니까?”
아무생각 없이 급하게 말한 터라 횡설수설한 게 티가 났지만, 괜찮았다.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즐기는 일부 시청자들과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연속 가챠를 한 것에 불만이 있던 시청자들이 하영을 도와줬다. 유연한 남탓도 미약하지만 힘을 보탰다.
“솔직히 말해보세요. 한 번에 먹으라 하신 분들. 천신님과 짜고 주작 쳤죠?”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응 아니야. 그렇게 따지면 네가 더 수상해. 옷 벗고 돌아다니는 게 싫어서 주작친거 일수도 있잖아.
“하. 수상하긴 뭐가 수상해요. 선생님. 저는 스킬 가챠가 망하면 인생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이에요.”
꿀벌아넣을게: 뉴비 분탕 ㄴㄴ. 하영이 말이 맞다.
아가리롤스타: 하영이는 잘 못 없음 ㅇㅇ
“하. 선생님들 저 진짜 억울합니다. 막 눈물이 앞을 가려요.”
하영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억울하다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진짜. 스킬 가챠를 망친 원인이 나다 싶으신 분들은 다 기부해주세요. 지금 기부하면 용서해 드릴게요.”
하영은 유연한 남탓과 뻔뻔함이라는 특성의 도움과 뻔뻔한 성격으로 이 위기를 모면했다. 이에 골드들이 수고했다며 하영의 품에 안겼다.
인방인생하급신님이 500 골드 기부.
하영이도 피해자라 이 이상 투덜거리면 뇌절이긴 함. 사실 제일 화가 나는 건 하영이 본인이거든 ㅋㅋ
“맞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움의 의미로, 감사의 백덤블링 5번 돌겠습니다.”
열심히 말을 하며 온몸으로 제 생각을 표하는 하영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달랬다.
어린이애호가: 그래,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야스마스터: ㄴㄴ 이건 19금 안 먹이려고 천신이 모니터링 하면서 확률 주작 하는 거임. 우린 전부 피해자임. 그러니까 위에만 이라도 벗어 줘봐.
천신대가리멈춰: 천신(경고 5회)
군침도는사람: 재는 이제 천신만 꺼내도 경고를 처 먹네 씹 ㅋㅋ
그러다 어쩌다 불이 붙은 천신에 관한 내용이 채팅의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낭만검객: 앞으로 천신님은 그 신으로 하겠습니다.
야스마스터: 그 신 수준. 보였죠?
꿀벌아넣을게: 그 신 ㅋㅋㅋㅋㅋㅋ 이제 이름도 부르면 안 되네 ㅋㅋㅋㅋㅋㅋㅋ
천신대가리멈춰: 아아. 드디어 세상이 옳게 흘러가기 시작한 것인가?
폭발할 것처럼 난리를 피우던 채팅창은 천신이 잘못했다는 여론으로 가득 찼다.
하영은 천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벌을 내리지 않을지 몰라, 조마조마한 상태로 그 채팅들을 바라봤다.
이러다 방송 시스템을 관리하는 존재에게 찍히면 정말 답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분위기를 말릴 깡다구가 있지도 않았다.
낭만검객: 아 시원하다.
천신대가리멈춰: 이제 좀 마음이 편해지네.
야스마스터: 이게 야스다.
즉석나비탕24시: 폭군 뒷담화 24시. 종료 ㅋㅋ
다행이 천신 대란이 종료 될 때까지 방송에 천신이 찾아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이걸로 일단 시청자들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한시름 놓아도 되겠어.’
하영은 상황을 무마하고 좋은 여론도 되찾았다는 것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가챠가 망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기회를 전부 소진하고도 중급을 하나도 못 얻은 게 너무 뼈아픈데.’
특히 주인공인 이원혁이 중층부터 중급 이상의 스킬들로 도배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얼마 없는 기회를 날렸다는 것은 꽤 큰 타격이었다.
‘세계가 바뀌어도 고달픈 조연의 삶은 변하지 않는 건가.’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면 확률이 소수점 자리의 끝을 달려도 쉽게 뽑아내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하영이 빙의한 소설의 주인공인 원혁도 처음 겪는 시련에서 우연이라는 말 한마디로 기연을 쏙쏙 빼먹었다.
하지만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그런 대박을 터트렸다는 건 들어 본 적 적다. 그리고 하영도 살면서 대박을 터트려 본 적이 없다.
운으로만 판단해 보면 하영은 어딜 가나 있는 평범한 시민 A였다.
‘뭐, 주인공에게는 내가 평범한 시민 A가 아니라 천하의 죽일 쌍년이겠지만 말이야…’
하영은 막막해진 자신의 미래에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후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냉정하게 현실을 판단한 하영은 기존에 있던 것들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추가적인 공격 수단이나 방어 수단을 구하지 못한 만큼 더 노력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하영은 창과 관련된 수련에 추가적인 숙련도를 부여해주는 창의 기본을 믿고, 가격이 제일 싼 창 마구 구매했다.
그리고는 방안에서 두 개의 창 이상을 한 번에 투창하는 연습하기 시작했다.
좁은 방안의 특성상 창을 날리는 것까지는 연습하지 않았다. 마력을 넣고 빠지는 감각을 외우기 위해 공중에 창을 떠올리고 다시 떨어트리는 것만을 반복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같은 연습만 했다. 화장실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하영도 사람인지라 맑은 공기도 마시며 밖에서 연습하고 싶기는 했지만, 악마에게 공격 수단이 들킬까 봐 그러지 못했다.
끼니는 잔뜩 구매해놓은 빵으로 대강 때웠다. 물은 튜토리얼때 강물을 큰 나뭇잎에 담아 저장해둔 게 아직 남아있었다.
제일 문제였던 시청자들은 땀으로 옷이 젖는 하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주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연습의 시간이 흘렀다.
***
악마가 사는 마을에 7번째 날이 밝았다.
하영은 창문 밖으로 오는 햇살을 받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만족스러운 미소의 끝에는 공중을 떠다니는 3개의 창이 있었다.
“이 정도면 2층 수준으로 격하된 악마에게 지진 않겠지.”
자신에게 속한 마력에 한정하여 더 쉽게 조종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마력 조종의 기초를 얻은 덕분에 수련한 기간에 비해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비록 직접 창을 날려보지 못해 창 하나를 날렸을 때와 위력이 다른지 확인은 해보지 못했지만, 기존에는 창을 하나씩 투창하는 게 최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선생님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피로만 풀고 바로 행동에 나서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하영은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빨간색 달이 세상을 덮은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