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4. 문어, 악마, 나. 곤란.
* * *
빨간색 달.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는 못한다. 소설에서는 저 달이 뜨기 전에 이야기가 끝났으니까.
하지만 저 달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알겠다. 많은 시간을 잠자는 데 사용했음에도 몸이 뻐근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투창의 숙련도 또한 이상할 정도로 높아졌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3개를 겨우 들던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지니고 있는 모든 창을 허공에 띄울 수 있게 되었다.
즉, 저 달은 마의 근원이다. 악마의 힘을 배 이상으로 증폭시켜주는…
쾅!
어디선가 들려오는 타격음에 하영의 상념이 끊겼다. 벌써 싸움이 시작된 건가? 자세히 들어 보니 방금 큰 타격음 외에도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들. 이거 싸우는 소리 맞죠?”
붉은 기운을 몸 전체에 두르고 있는 하영이 물었다. 눈도 평소보다 빨간 것이 명백히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으나, 시청자들은 변화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스마스터: ㅇㅇ
꿀벌아넣을게: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건강한언어습관짝: 빨리 가서 도와줘요 ㅠㅠ
“걱정 마세요. 아, 건강님은 두당 50골드 잊으시면 안 됩니다. 이번 층 시련 끝나시면 꼭 주셔야 해요.”
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다가 미션의 존재가 떠올라서 급히 덧붙였다.
그러자 걱정하지 말라는 듯 채팅창에 답이 빠르게 올라왔다.
건강한언어습관짝: 그럴 줄 알고 나쁜 기운을 품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수를 다 기억해 놨어요!
만족스러운 채팅에 하영이 믿는다는 듯 엄지를 치켜세웠다. 작은 마을이지만 사람은 500명은 넘어 보였다. 하영은 몇 번 마을을 산책한 것으로, 그 모든 사람을 외울 정도로 기억이 좋지는 않았다.
결국 시청자의 양심을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음… 평소의 채팅을 보면 그나마 믿을 만하겠지. 최소 다른 시청자들보다는 나아 보였다.
“그럼 풀 도핑 들어가겠습니다.”
하영은 공중에 떠다니는 창 하나를 붙잡았다.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하나둘 씩 허공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손에 창이 들려 있습니다.]
[검투사 창술(중급)이 발동됩니다.]
[빠른 몸놀림(최하급!)]
[마력 조종의 기초(하급!)]
[집중력 향상(최하급!)]
[마기 폭발(하급!)]
“선생님들. 악마 1분 컷 하면 골드 주는 미션 어떻습니까?”
시스템 메시지를 전부 치운 하영이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런 하영의 뒤로는 10개가 넘는 창들이 천장 쪽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
“같이 올라가자는 약속은 못 지키겠지만. 복수는 해드리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지팡이를 든 남성이 창문 밖으로 보이는 태양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매서운 표정으로 태양을 노려보며 무언가를 다짐하는 듯했다.
“넌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주마.”
남성의 이름은 민준,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현대인이었다. 여자들도 꼬실 겸 헬스장도 다니고, 업무시간에 메신저도 보내지만, 친해진 사람에게는 호의도 베풀 줄 알았다.
그렇기에 만난 지 얼마 안 된 이의 죽음에 분노를 느꼈다. 머리가 화산처럼 폭발할 것 같았다. 튜토리얼과 투쟁의 탑을 오르며 사람들의 죽음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분명 폭발했을 것이다.
“아저씨. 상황은 어때.”
흥분을 가라앉힌 민준이 의기투합한 동료에게 물었다. 민준이 다짐했던 방, 바로 옆방의 출입문을 지키던 동료는 슬쩍 문에서 비키며 입을 열었다.
“네가 직접 확인해라.”
동료의 말에 민준은 방 안으로 슬쩍 얼굴을 집어넣었다. 민준이 있던 방보다 훨씬 커 보이는 방 넘어 에는 마을 사람들, 정확히는 아녀자들이 서로 몸을 부둥키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최악이네.”
민준은 쓰게 웃었다. 그럴 만하긴 했다. 6일. 단 6일 만에 마을 사람들의 과반수가 악마에게 살해당했다.
게다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니 더욱 상황은 안 좋았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사람을 죽이는 걸 봐서는 사람을 죽이거나 하면 성장하는 것 같은데… 순찰을 하였음에도 살해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건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민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도저히 모르겠다.
그때 방안으로 등반자 한명이 들어왔다.
“모두 나와서 식사부터 좀 하지그래.”
등반자의 말에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곧 있으면 밤이 온다. 그러면 시작될 것이다. 정체 모를 악마의 침공이.
“자자! 마을 사람 분들도 나와서 식사부터 하시죠!”
민준은 언제 심각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마을 사람들을 이끌었다.
목적지는 모험가 길드의 바로 앞 거리였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각종 먹을거리를 펼쳐 놓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분위기만 보면 꼭 죽으러 가는 사람들 같네.’
민준은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최후의 만찬이라 생각한 것일까. 마을 사람들도 등반자들도 모두 표정이 좋지 못했다.
힘내라고 말하기도 뭐한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는 진행됐다. 그리고 점점 태양이 지기 시작했다.
등반자들은 모험가 길드 안쪽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정문에 집결했다.
마을 사람 중에 악마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기에, 일부 등반자들은 건물 안에 남겨 놓은 상태였다.
‘조용하군.’
폭풍전야. 수많은 사람이 한 건물을 내외로 존재했음에도 말소리는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았다.
째깍째깍.
한 등반자가 들고 있는 시계만이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주변에 알리고 있었다.
쾅!
건물 내부에서 울리는 큰 타격음과 함께 하늘에 붉은 달이 떠올랐다. 민준과 등반자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건물로 들어가려 했다.
“모두 움직이지 마!”
이름 모를 한 등반자가 문을 막아서며 그들을 말렸다. 민준은 이 시급한 상황에 문을 막는 등반작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봐! 지금 뭐하는 거야!”
민준이 소리쳤다. 그러자 문을 막아선 등반자가 검을 꺼내 들며 소리쳤다.
“저 정도로 큰 소리라면 이미 안은 가망이 없어! 차라리 이번 밤을 무사히 보내고 내일을 노려 이 마을을 탈출하는 게 옳아!”
등반자의 말에 다른 등반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의 밤이 오기 전까지 꼬리도 잡지 못했던 존재가 더 강해진 지금. 승산은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더구나 기습까지 당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민준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투쟁의 탑을 올랐던 민준은 알고 있었다. 귀환서가 없다면 이 마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저 등반자는 밤을 무사히 보내고 마을을 탈출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가 등반자가 아니라는 결정적인 단서였다.
귀환서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사용 조건은 없다. 귀환서만 있다면 언제든지 바로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튜토리얼을 클리어한 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탑의 1층으로 오는 순간. 자신의 순에 귀환서가 쥐어져 자동으로 상태창이 무슨 아이템이라 알려주기 때문에 모를 레야 모를 수가 없다.
‘저 녀석은 악마다.’
민준은 악마가 어떻게 지금까지 안 들키고 등반자인 척해올 수 있었는지 그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저 악마들이 우리를 속이려는 것은 알았다.
“파이어볼.”
생각을 마친 민준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든 등반자를 향해 마법을 날려 보냈다. 그때였다.
슈웅
등반자 들이 모여 있던 곳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화살을 눈치챈 민준이 급히 허리를 숙였다.
“씨발!”
화살은 지구에 있을 때 헬스를 해온 덕에 만들어진 육체와 타고난 반사 신경으로 무사히 피할 수 있었지만, 무리하게 움직인 탓에 집중이 흐트러져 검을 든 등반자로 향했어야 했을 파이어볼이 허공을 갈랐다.
“어떤 새끼야!”
민준은 검을 든 등반자에게서 물러서면서 고개를 살짝 돌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봤다.
“이게… 뭔…”
화살을 쏜 등반자의 얼굴을 본 민준의 눈이 크게 떠졌다. 화살을 쏜 남자는 민준과 의기투합을 한 등반자였다.
민준은 혼란에 빠졌다. 의기투합한 당일 민준은 그가 등반자임을 확인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눈치챘지?””
검을 든 남자와 전 동료의 입에서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내가 악마라는 걸 눈치 챈 것이냐?””
두 등반자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 못됐다.
심상치 않은 걸 느낀 등반자들은 제일 먼저 상황을 눈치 챈 민준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원형의 진을 펼쳤다.
한편, 악마의 말에 곱씹던 민준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었다.
아무리 순찰을 하여도 나오지 않는 범인, 등반자라 여겼던 이가 사실 악마였던 이유, 알고 보면 당연한 거였다,
어떨 때는 사랑하는 연인으로, 때로는 믿음직한 동료로, 그 모습을 바꿔가며 빠르게 살인을 저지르니 알 턱이 있나.
““축제의 시작이다.””
민준은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악마를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누가 동료고 누가 적인지 구분을 할 수 없으니 쉽사리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교착 상태. 계속됐다.
등반자와 악마 모두 긴장을 하며 서로를 노려봤다. 그러다 한 등반자가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모두 조심해! 저 악마가 무언가를 준비하려나 봐!”
한 등반자의 말에 등반자들은 시선을 악마에게 고정시킨 후 슬쩍 하늘을 바라봤다.
검은 하늘 위로 붉은색 빛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민준은 그 광경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건 창들이었다.
살짝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질 정도로 악의적인 붉은색 기운을 품고 있는 창.
그것들의 수십 개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 이놈! 시간을 벌더니 악마답게 비열한 짓을 꾸미고 있었구나!”
민준의 옆에서 창을 들고 있던 등반자가 악마들을 향해 창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민준 역시 비열한 게 악마답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야.”
“그래! 모두 서로 목숨을 아끼지 말고 돌격하자고!”
등반자들은 함정에 빠졌다는 것에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크게 놀란 건 등반자들이 아닌 악마였다.
““시발. 저게 뭐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