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5. 소설 TS 빙의
* * *
하영은 어지러운 머리를 잡고 일어났다.
“아으, 씨 뭐야.”
속이 울렁거린다. 어제 내가 뭘 했더라? 하영은 머리를 부여잡은 체 과거를 회상했다.
악마를 잡고, 술을 마시고, 내려가서 창을 회수하고 쫓아오는 등반자들을 피해서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어떻게 엘리베이터를 탑승할 생각을 했대.”
하영은 술 취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자신을 칭찬했다.
엘리베이터.
탑을 이동하는 수단이자. 한 사람당 한 명만 탈 수 있는 장치로 여러 사람에서 탑승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한 명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엘리베이터가 같은 자리에 생긴다.
그 자리에 있던 엘리베이터? 만약 층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탑과 탑 사이의 공간에서 대기상태로 있게 된다.
한마디로 다른 층으로 가는 버튼을 누르지 않은 엘리베이터는 탑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라는 말이다.
“일단은 준비부터 할까.”
다음 층으로 향하기 전, 하영은 아공간 주머니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꺼냈다. 빠진 물건이 없나 하나씩 검사하기 위함이었다.
“창60여개 있고, 처음 구매한 삼지창 있고, 던전에서 얻은 창 있고…”
전부 확인해본 결과. 빠진 물건은 없었다.
사용했던 골드가 조금, 아니 좀 많이 돌아와 있긴 한데…
꿀벌아넣을게: 찡긋!
미션석세스: 찡긋!
군침도는사람: 찡긋!
아가리롤스타: 아무 일도 없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악질방송만보는사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물어봐도 알려줄 존재들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골드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늘어난 거니까.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투창만 확인하고 가자.”
하영은 창들을 전부 꺼낸 김에 한 번에 투창할 수 있는 최대 개수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마의 밤 때의 실력을 자신의 실력이라 생각하는 오만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만하지 않은 건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주인공도 종종 엘리베이터에서 스킬 연습을 하곤 했었지.”
하영은 소설을 읽던 시절을 추억하며 투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하나. 이젠 너무 싱거울 정도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창을 띄울 수 있다.
둘. 무난하게 들어 올려진다.
셋. 마의 밤 전날까지의 한계점. 그러나 이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 겨우 3개 들어 올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 엊그제 맞구나.”
2일 전이면 엊그제가 맞긴 하지. 자신을 칭찬하려던 하영은 뻘쭘함에 머리를 긁었다.
낭만검객: TS하면 지능도 살짝 내려간다고 하니까…
야스마스터: 난 우리 하영이 믿는다.
아가리롤스타: 아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니까? 애는 이게 매력인 거야.
어린이애호가: 매력 다 뒤졌네. 시발.
“크흠. 선생님들. 선생님들이 대단한 분들이라 잘 모르나 본데, 사람은 실수도 하고 그러는 겁니다.”
채팅창을 본 하영은 기침 한 번으로 뻘쭘함을 털어내고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4번째 창. 여기서 부터가 고비다. 마의 밤 이전에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영역이다.
하영은 마의 밤의, 그 전능했던 감각을 떠올리며 투창을 사용했다.
“뜬다. 떠! 씨발! 진짜 뜬다고!”
마의 밤 때의 그 감각을 최대한 살린 하영은 이번에도 손쉽게 투창 준비단계를 성공 시켰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
이어서 다섯 번째. 이번에는 약간 힘들다. 마력이 빠져나가기는 하는데 창이 뜨질 않는다.
하영은 평소보다 많이 마력을 투자했다. 별것 하지도 않았는데 약간 몸에서 힘이 빠진다. 마력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실패는 하지 않았다.
하영은 자신의 주위에 둥둥 떠다니는 5개의 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들. 저 사실 재능충 아닙니까? 지금까지는 이 재능 없는 몸뚱이에 갇혀 있다가 지금 막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하는…”
낭만검객: 재능이 있었으면 순리아재가 창술 가르쳤을 때 이미 투창도 마스터했음.
아가리롤스타: 팩트 밴.
야스마스터: ㄴㄱㅁ
낭만검객: ㄴㄱㅁ ㅏ아 시발 먼저 채팅치는 거 ㅈ같네. 하루 종일 방송만 처 보나?
건강한언어습관짝: 와! 서로 죽이 잘 맞네요!
야스마스터: ㄴㅇㅁ
낭만검객: ㄴㅇㅁ 아. 야스마스터 이 시발련아!!!!!!!!!!
꿀벌아넣을게: 님아 닉언 자제좀.
웃으며 자신을 칭찬하던 하영은 채팅을 보고 금방 진정했다. 다시 생각하니까 좀 창피했다. 어린애도 아니고 뭐 이런 걸 칭찬받으려 했나 싶었다.
검은콩나물: 이 기세로 여섯 번째도 도전해보져.
시청자의 말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바로 정신을 집중했다. 마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섯 번째 창을 떠오르게 했던 만큼 마력을 소모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이 이상은 마력을 더 사용해봤자 손해다. 그렇게 판단한 하영은 투창을 멈췄다.
쾅.
5개의 창이 공중에서 떨어졌다. 마의 밤때 수십 개의 창을 동시에 던지던 모습을 떠올리면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만족할 수준은 됐다.
생존게임좋아요: 님. 시련? 아니 퀘스트인가? 그 보상은 확인 안 하나요?
“아 맞다!”
웃으며 채팅창을 보던 하영은 시청자의 말에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시스템 메시지는 보이지 않았다.
낭만검객: 저기 구석에 떨어진 큰 주머니와 좀 구식처럼 보이는 검이 보상 아님?
생존게임좋아요: 아 맞네.
하영은 채팅을 보고 급히 구석을 바라봤다. 숙취가 남아있던 상태로 마구잡이로 아공간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낸 터라 땅에 물건이 좀 많이 떨어져 있긴 했지만. 자세히 보니 확실히 못 보던 것들이 있다.
하영은 가까이 다가가서 물건들을 주워 올렸다. 주머니는 하영이 한 손으로 들기 버거울 정도로 크기가 컸고 무거웠다.
검을 잠시 벽에 세워두고 주머니를 열어보니 500원짜리 동전보다 약간 작은 동전들이 가득했다.
“5층부터 사용 가능한 재화니까. 아직은 필요 없을 테고, 검은…”
검은 두 손으로 들면 휘두를 정도는 됐다. 하지만 검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십자 베기뿐이므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너넨 당분간 창고행이다.”
하영은 망설임 없이 2층의 보상을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땅에 널브러져 있던 물건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는 처음 탔던 모습 그대로 깨끗해졌다.
“자! 그럼 다음 층으로 가볼까.”
하영은 다음 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버튼 밑에 아래층으로 가는 버튼이 생긴 게 눈에 띄었지만. 1층으로 가봤자 문어한테 잡힐 뿐이니 가고 싶지는 않았다.
[3층 맞춤형 투쟁 탐색 중.]
하영이 생각하는 사이, 다음 층이 정해졌다. 하영은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최악이다. 투쟁의 층이 걸려버렸다. 투쟁은 개인 층이다. 즉 등반자에게 투쟁이라 불릴만한 세계와 목적이 주어진다는 말이다.
주인공인 원혁의 경우로 따진다면, 최악의 상황에는 자신이 배신당했던 99층의 악몽을 홀로 클리어해야 한다는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물론 3층이므로 난이도는 낮게 조종되겠지만. 이미 투쟁이라 불릴 만한 난이도인 것부터가 글러 먹었다.
‘아니, 아직 이야.’
하영은 휘청거리던 정신을 붙잡았다.
그녀에게는 한 가지 변수가 남아 있었다. 투쟁은 등반자를 위한 것이다.
등반자가 이겨야 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을 넘는 시련을 준다는 말이다.
즉 내가 아니라 원래 정하영에 관련된 투쟁이 선택된다면 쉽게 클리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워낙 자기 마음대로 살던 인간이라 투쟁할 것이 별로 없었을 테고, 있어봤자 별거 아닐 게 뻔했다.
‘분명 부모님에게 용돈이나 더 받기. 뭐 이런 걸로 투쟁을 했을지도 모르지.’
하영은 크게 웃었다.
“완전 꿀이잖아.”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난 건 그 순간이었다.
[투쟁이 선택되었습니다.]
하영은 침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눈이 감고 떠지는 것 또한 느꼈다. 작은 생체 움직임에 민감해질 정도로 온 신경을 쏟아 붓고 있었다.
“제발. 제발 쉬운 거.”
하영은 빌었다. 탑의 의지와 자신을 바라보는 성좌들을 향해.
[3층 : 고등학교 시절 고백 받아들이기.]
시스템 메시지를 본 하영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내용이 좀 끔찍해 보이긴 하지만 무난한 층의 이름. 무엇보다 무대가 현대인 게 마음에 들었다. 이러면 3층에 들를 때마다 한국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물론 음식도.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합…격?”
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를 했다.
아니, 하려 했다. 오류가 발견됐다며 지랄만 하지 않았어도 했을 것이다.
[오류, 오류. 투쟁을 다시 찾습니다.]
[3층 맞춤형 투쟁 탐색 중.]
하영은 일어나다 멈춘 상태로, 넋을 잃고 다음으로 나타날 시스템 메시지를 기다렸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투쟁이 선택되었습니다.]
[3층 : 엑스트라 빙의는 거절하겠습니다.]
[악녀의 운명에서 빙의자를 구출해내세요.]
[잠시 후 3층의 문이 열립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본 하영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영은 저 제목을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를 레야 모를 수가 없었다.
3층의 이름은 하영이 마지막으로 읽었던 복수물의 제목이었으니까.
“씨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