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5. 소설 TS 빙의
* * *
“아델라.”
물건 하나 남지 않은 방을 보던 아델라는 하영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넌 어쩌다 TS 빙의 했냐.”
축져진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질문이자. 하영의 궁금증이었다. 이에 아델라는 말했다.
“언니 전 억울해요. 볼만한 소설을 찾다가 새로 나온 로판이 재밌다기에 봤을 뿐인데…”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 톤. 이건 지뢰다.
하영은 이야기가 엄청나게 길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말을 끊었다. 분위기를 되살리는 것도 좋지만. 병사들이 오기 전까지 이곳을 탈출해야 했다.
“본 것만으로 빙의한 거야?”
하영의 말에 아델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재미있게 다 읽고 나니까. 갑자기 주인공이 엑스트라 빙의인 게 너무 짜증나더라고요.”
하지만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한 아델라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엄청난 수다쟁이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지 이번에는 내용 축약을 해줬다.
“그래서 홧김에 작가에게 메일로 왜 악영영애 빙의가 아니냐고 5,700자 적었다가, 자고 일어나보니 빙의 되어 있었어요.”
“뭐?”
아델라의 말을 전부 들은 하영은 어이가 없었다. 가만히 있는 작가를 건드려놓고 억울하다니. 그게 억울한 거면 나는 뭐야?
“네가 잘못했잖아. 난 또 뭐라고.”
하영은 억울함에 투덜거렸다. 병사가 오기 전에 출발이고, 나발이고. 사실관계부터 명확하게 하고 가기로 했다.
“네? 언니 저는 그냥 분탕, 아니. 분위기를 한번 흐렸을 뿐인데요?”
아델라는 진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아델라의 말도 들어보면 억울하긴 할 거다. 댓글 한번 썼다고 악녀에 빙의 당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하영이 더 억울했다.
“나는 시발 아무 이유 없이 빙의 당했다니까?”
하영의 말에 아델라가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언니도 분탕 쳤죠? 딱 보니까 각이 나오는데요.”
“아니, 아니라니까? 그리고 언니라는 말 그만해.”
“전 다 이해해요. 다 인성 터진 작가 때문이잖아요.”
하영이 억울하다 항변했으나 아델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평범한 독자였던 하영은 악질적인 아델라가 자신을 동지 취급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도 이 소설이 재미없었던 것은 맞지만. 응원도 하고 선호작도 지우지 않았다. 단지 대충 보다가 서재에 깊은 곳에 박아뒀을 뿐이다.
“언니는 얼마나 괴롭혔어요? 혹시 별점 테러하면서 꾸준히 쌍욕 박았나요?”
“아씨!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럼… 저처럼 메일을 보내신 거군요!”
“와! 선생님들! 애 좀 케어해주세요. 저 화딱지가 나서 돌아버릴거 같아요.”
정말 궁금하다는 듯 옆에 착 달라붙어서 능글맞게 미소 짓는 아델라를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특히 속이 남자인 놈이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이 하영의 정신을 더 깎아 먹었다.
“응? 선생님들은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델라의 물음에 하영은 뒤늦게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사람이라면 말을 돌리거나 당황했겠지만. 뻔뻔한 하영은 그냥 밀고 들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이 층에서만큼은 아델라와 쭉 붙어있어야 한다. 아델라와 현재 상황을 보면 단기간에 끝낼 시련도 아니다.
‘문제는 애가 말이 너무 많다는 건데… 뭐, 괜찮겠지.’
가까이 붙어있는 아델라의 외모를 본 하영은 압도적인 개연성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낭만검객: 미친년인 정하영이 돌아버리면 360도라 정상으로 돌아오는 건데 이득 아님?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아 맞네.
꿀벌아넣을게: ㄹㅇㅋㅋ
즉석나비탕24시: 이 와중에 여자 미모에 눈 돌아간 거 봐라. 씹ㅋㅋ 하영이 남자 맞네 ㅇㅈ한다.
야스마스터: 이렇게 둘이 사귀면 gl임 bl임?
낭만검객: ㄴㄱㅁ임
저택에 들어오고 관심을 주지 않았다고 슬슬 흑화하기 시작한 채팅들. 역시 대단하다.
“나중에 말해주려 했던 건데, 사실 나. 빙의 특전으로 방송이란 걸 할 수 있거든.”
하영은 자신의 옆에 있는 아델라를 손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저 외모에 대항할 방법은 이렇게 봉인하는 것뿐이었다.
“앗. 왜 저를 밀어내는 거예요! 같은 성별끼리 친하게 지내요.”
그러나 아델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충분히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 저의 눈을 보고 계속 말해주세요.”
결국 이상형인 외모에 패배한 하영은 방송에 관한 사실을 전부 털어놓았다.
“방송! TS! 성좌! 와 개쩌는데요? 아 1점 까였다.”
ts 인방이라는 말을 들은 아델라는 흥분했다. ts, 방송. 이 두 단어가 소설계의 누렁이었던 아델라의 마음에 침투했다.
“언니. 혹시 저도 방송관련 특전이 생길까요?”
아델라는 아가씨로서의 체면도 잊은 채 하영에게 매달리듯 물었다.
“으음… 있지 않을까? 아마도…”
14개월 동안 발견하지 못한 걸 보면, 사실 없는 게 확실해 보이지만. 하영은 예쁜 미녀가 실망하는 모습 따윈 보고 싶지 않았다.
“와 TS인방! 인생 날먹! 저도 꼭 하고 싶어요! 아! 이상한 단어 사용으로 또 점수 까였다.”
ts 인방? 인생 날먹?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하영이 고개를 돌려 채팅창을 바라봤다.
내이름은야스머신: 나랑 죽을 때까지 야스하자. 손에 피 한방을 묻히지 않고 살게 해줄게.
바른말만씀: 매일아침 내 검으로 구멍이란 구멍에 전부 박아 줄게 우리 영원하자 하영아!!!
낭만검객: 하영이가 인생을 날 먹하고 있긴 하지. 특유의 매력으로 날 먹으려 하고 있어~
아가리롤스타: 우리 검객이는 그… 없나?
꿀벌아넣을게: 님아 닉언 자제좀.
채팅창을 본 하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델라의 말을 들었다고 뒤늦게 스윗한 시청자인척을 하는데 가소롭기 짝이 없다.
야스마스터: ㅅㅂㅋㅋ온종일 야스하면 당연히 손에 피가 안 묻지.
내이름은야스머신: 아 딱 들켰네 ㅅㅂ
아델라도 이런 광경을 봐야할 텐데.
하영은 미쳐버린 채팅창을 뒤로하고 아델라를 불렀다.
“자자. 아델라? 이쪽을 보고 인사 좀 해줄래?”
하영의 반응에 이상함을 느낀 아델라가 급히 몸을 뺐으나, 어느새 다가온 하영은 도망가려는 아델라를 붙잡아 채팅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 인사하자.”
“네?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안 보이는데요?”
“넌 성좌물도 안 봤냐?”
“아하!”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던 아델라는 하영의 말에 인사를 하기위해 자세를 잡았다.
“반갑습니다. 선생님들. 클로비스 영지의 막내딸. 아델라 폰 클로비스라고 합니다.”
아델라는 드래스의 끝을 살짝 들어 올리면서 품격 있게 인사 했다.
낭만검객: 쩦. 인사성이 바른 게 괜찮네요. 라고 할뻔~
야스마스터: 후… 아무리 그래도 내 하영이는 못 준다.
아가리롤스타: 내 하영이가 왜 니꺼야 ㅅㅂ새끼야.
낭만검객: ㄴㅇㅁ
미션석세스: ㄴㄱㅁ
아가리롤스타: ㄴㄱㅁ
야스마스터: ㄴㅇㅁ 아 시발. 채팅 렉 ㅈ같네.
방송계의유니콘: ㄴㅇㅁ
꿀벌아넣을게: 본인 하영이 지분 10%. 인정해 줘야 함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응 인사했으면 듣보년은 꺼저~
군침도는사람: 돈고충인 계집놈은 됐고. 우리 하영이나 보여줘라.
바른말만씀: 계집놈은 대체 무슨 말이냐?
채팅창의 반응은 의외로 나빴다. 하영을 까는걸 좋아하는 자신의 방송 시청자 특성상 하영이보다 낫다며 지랄을 떨 줄 알았는데. 이건 좀 많이 의외였다.
‘그만큼 예쁘고 멋진 외모에 저항력이 있다는 건가?’
생각해보면 평범한 인간인 자신과 다르게 이들은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있다. 어쩌면 아델라 정도의 미녀는 한 트럭 정도 보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굳이 내 방송을 볼 이유가 없는데.’
뭐지? 내 생각이 틀린 건가?
하영은 의문을 담아 채팅창을 바라봤다. 만약 내 생각이 맞는다면 골드를 착취해가는 이런 B급 방송을 볼 이유는 없었다.
낭만검객: 그래, 하영아. 우리 재미있게 오래 가보자 ㅎㅎ
꿀벌아넣을게: ? 윗 새끼 갑자기 왜 급발진함?
아가리롤스타: 엄마가 없어서 그럼 ㅠㅠ
바른말만씀: 아빠도 없을 듯 ㅋㅋㅋㅋㅋ
건강한언어습관짝: 바른님은 엄마가 2명이니 한 분은 양보해주시죠.
바른말만씀: 넌 닥쳐 ㅅㅂ련아.
시청자들은 아델라에 대한 건 이미 잊은 채 서로 떠들기 바빴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자신이 보기에는 아델라나 정하영이나 외모는 비슷한 급인데.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거지?
여캠 비슷한 느낌으로 자신을 보는 줄 알았던 하영은 자신의 생각과는 약간 다른, 성좌의 반응에 당황스러웠다. 단순히 취향의 차이라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몇 개 있었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건 분명한데…’
어쩌면 이 차이 속에 이 방송의 근본을 꿰뚫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지도 몰랐다. 하영은 이 생각은 쉽게 넘길 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영의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생존게임좋아요: 아니. 이번 시련은 왜 자세히 안 알려줌? 오류도 그렇고 뭔가 좀 이상한데?
늘잠수하는남자: 나도 잠수하면서 찾아봤는데. 이거 하영이 늘 타던 엘리베이터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 이거 이미 시련이 클리어된 상태임.
낭만검객: ??? 그건 또 뭔 ㅈ버그같은 소리임?
아가리롤스타: ? 저 말ㄹㅇ인데? 나도 엘리베이터 찾았음.
시청자들의 채팅을 보던 하영이 침을 꿀꺽삼켰다.
이미 클리어가 되어있다고?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러고 보니 엘리베이터에 나와 땅을 밟았음에도 시련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목적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소설 속에서도 시련에 대한 메시지를 주지 않았던 건 본 적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등장한 다음 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도착 후 주어지지 않는 시련.
이것들 마치 하영에게 이번 층이 클리어 됐음을 알리는 것 같았다.
닉네임은10글자까지: 이거, 이 탑이라는 곳의 내부가 아닌 거 같음. 내 권능으로 주변을 살펴봤는데. 여긴 말 그대로 하나의 세계임. 고작 층 하나에 담고자 할 만한 크기가 아님.
낭만검객: 아니 그걸 왜 니 마음대로 판단 하냐고. 니 권능이 쓰레기라 그런거 가지고.
아가리롤스타: 하, 잘 가다가 또 이렇게 되네. 난 왜 투자만 하면 이러냐.
꿀벌아넣을게: 나도 뭐라도 찾아 가지고 와봄.
급격히 과열되는 채팅창의 분위기에 하영은 식은땀을 흘렸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번 시련은 무언가 이상하다.
“아델라. 슬슬 출발하자.”
“네? 어디로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 아니, 주인공이나 주연들이 닿지 못하는 이국으로.”
하영은 아델라를 들어 올렸다. 원래라면 천천히 이 저택을 나갈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변했다.
“새태창아 나와 봐!”
「호액.」
하영은 자고 있는 새태창을 흔들어 깨웠다.
그 후 새태창을 바로 소환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사건이 발생했다.
쾅!
손에 검을 들고 있는 금발의 기사가 잠겨 져 있던 문을 문짝 채로 날리며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