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썅년의 방송 생존기-39화 (39/85)

〈 39화 〉 5. 소설 TS 빙의

* * *

흔하디흔한 뒷골목의 고아, 아벨

어둡고 차가웠던 그녀의 인생에는 두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하나는 자신을 기사로 만들어준 주인이자 연인인 아델라와의 만남이었고.

두 번째는 그녀에게 검술을 알려준 검은 머리 여자와의 만남이었다.

“너 아벨 맞지?”

그녀는 처음 본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신비한 인물이었다.

“맞네, 맞아. 언뜻 보면 남자처럼 보이는 외모와 금발. 딱 아벨이네.”

그녀는 아무런 대가 없이 고아였던 아벨에게 검술과 안전한 생활을 제공해줬다.

“응? 내 이름이 뭐냐고? 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아니 알려주지 않아도 넌 알게 될 거야.”

자신의 이름을 끝까지 알려주지 않은 그녀는 갑자기 등장했던 첫날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 날밤 그녀는 아벨에게 작은 부탁 한 가지를 해왔다.

그녀의 부탁은 애매모호했으며 동시에 이상했다.

그러나 아벨은 흔쾌히 수락했다. 거절하기에는 그동안 받아온 것이 너무 값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

“구름 모양의 새가 아가씨가 있는 저택 쪽으로 떨어졌습니다.”

가문에서 축출되기 직전인 악녀, 아델라를 위해 항의하던 유일한 기사.

아벨.

그녀는 근신 처분을 받은 10 일차에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새 모양의 구름이 아니라. 구름 모양의 새가 떨어졌다고? 그게 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나?”

아벨은 주변 몰래 자신을 찾아온 병사에게 물었다. 병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그래, 그렇군. 드디어 약속의 날이 찾아왔구나.”

병사의 확답을 들은 아벨은 망설임 없이 자신을 가두고 있던 철창을 잘게 부쉈다.

철장은 기사를 가두는 감옥답게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게 특별한 마법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마력으로 칼을 생성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던 그녀에게 마력이 흐르는 철창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아, 아벨경!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지금 당신은 근신 중입니다!”

아벨은 자신과 부서진 철장을 번갈아 보며, 당황한 채 소리치는 병사를 살짝 노려봤다.

“이 일에 대해서는 당분간 함구하도록. 어차피 곧 내가 밖으로 나갔음을 모두가 알게 될 테니.”

“네?”

뜬구름 잡는 아벨의 말에 병사는 당황했지만, 아벨은 그런 그를 내버려두고 감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름 새가 소중한 저택에 내려앉으니. 너는 당장 그곳으로 가 실력을 보여라. 단 오러와 마력은 사용하지 마라.”

아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저택으로 향했다.

***

“아벨!”

아델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영과 대화할 때는 항상 웃고 있는 아델라였지만, 지금의 미소는 그 어떤 때보다 밝았다.

“아벨?”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가씨를 내려놔 주십시오.”

금발의 기사 아벨은 굳은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 아델라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벨. 은인에게 뭐하는 짓이야.”

아델라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잠시 멍하니 하영의 얼굴을 보던 아벨은 아델라의 말에 입을 열었다.

“어서 아가씨를 내려놔 주십시오.”

하영은 자신을 아벨이라 소개된 여자를 바라봤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에, 미소년에 가까운 외모. 기사 될 정도로 뛰어난 검술 실력.

만약 남자라면 로판에 나오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인재였다.

“좋아.”

얼어붙은 분위기 속, 하영은 아벨이 시키는 대로 아델라를 내려놨다.

“이게 네가 말하던 그 약속이야?”

아델라의 말에 아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 모습에 아델라는 조용히 문이 있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로지 검술로만 가겠습니다.”

아벨이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검집에서 검을 꺼내 들더니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에 질세라 하영도 아공간 주머니에서 장창을 꺼내 들어 패시브 스킬들을 발동시켰다.

‘재밌네.’

하영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느껴지는 고양감이, 피부를 찌르는 투지가. 현재 상황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나부터 갈까. 아니면 너부터?”

“제가 먼저 가도록 하죠.”

아벨이 하영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흐읍!”

방이 워낙 넓고 긴 터라 서로에게 큰 간격이 있었음에도 아벨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하영이 있는 곳의 바로 앞까지 치고 들어갔다.

‘빠르다!’

하영은 뒤로 점프해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아벨의 검이 날아들었다.

하영은 검을 막기 위해 창을 찔렀다.

그러나 아벨의 검이 그것을 저지했다.

쾅!

충격이었다. 지금껏 하영의 일격이 이렇게 허무하게 막힌 적은 없었다.

“이런 미친!”

첫 경험의 충격 탓에 떨리는 하영의 눈과 굳건한 아벨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계속해서 갑니다.”

아벨은 검으로 창을 누르며 한걸음 씩 전진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서서히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하영의 얼굴에 땀방울이 하나둘 맺히기 시작했다.

기사 아벨. 그녀는 온갖 버프를 두른 하영과 비슷할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갖춘 것과 동시에, 순식간에 하영의 창 사거리 속으로 몸을 욱여넣을 수 있을 정도로 노련한 싸움꾼이었다.

‘이렇게 쉽게 거리를 내어줄 줄이야…!’

하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압도적인 능력치와 검투사의 의지에 의지하며 하던 하영의 전투방식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검투사의 의지는 창대의 끝을 쳐 아벨을 떼어내라 말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게 아벨을 쳐내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창대를 치기 위해 창에서 손을 떼는 순간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전투는 그대로 끝난다.

‘미치겠네.’

하영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재능이 없다. 능력치에서 우위를 정하지 못하면 형편없이 패한다.

스킬이나 특성으로 문제를 돌파할 방법을 알아도 그뿐. 결국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끝입니까?”

아벨이 도발하듯 물었다.

그 말에 검투사의 의지와 강제로 만들어진 투쟁심이 요동쳤다.

“그럴 리가.”

고양감이 전신을 감쌌다.

창을 잡고 있는 손에 더욱 강한 힘을 주었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아벨이 말했다.

그 직후 4미터에 육박하는 창대가 부르르 떨렸다. 이에 하영이 웃었다. 전투는 지금부터였다.

콰직!

강한 힘의 지속적인 자극 덕분에 낡은 장창의 창대가 부서졌다.

그 순간 아벨이 곧바로 검을 들이밀었다.

“크읏!”

그러나 갑작스럽게 밀고 들어온 단창의 찌르기에 공격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챙!

아벨이 단창을 쳐내고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는 다시 거리가 벌려진 후였다.

“이야, 운이 좋았네.”

맨 처음 아벨이 서 있던 문 앞까지 몸을 뺀 하영이 말했다. 그 말에 아벨은 주변을 둘러봤다.

부서진 창대의 파편과 방금 자신을 공격한 단창, 그리고 하영이 손에 들고 있는 단창 한 개.

맨 처음 하영이 들고 있던 장창의 창날은 보이지 않았다.

“과연. 방금 들어온 단창의 찌르기는 장창의 파편이었군요.”

“찌르기라니 너무하네, 마력을 좀 적게 넣기는 했어도 그건 분명 근거리 투창이었다고.”

하영의 말에 아벨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투창이라… 그건 좀 그리운데요.”

잠시 동안 무언가를 떠올리는 아벨.

그렇게 두 번째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하영은 재빨리 아공간 주머니 속에서 창을 꺼냈다.

양손으로 창을 잡고 있는 터라 손을 사용할 여유는 없었지만, 투창을 발동시키는 것만으로 주머니 속에서 창을 꺼낼 수 있었다.

이윽고 하영의 명령을 받은 단창 여섯 개가 아벨을 노려보며 하영의 주변을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했다.

저벅.

상념에서 벗어난 아벨이 걸음을 내디뎠다.

하영을 둘러싸고 있던 단창들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저벅.

아벨은 자신에게 유리한 대치구도를 만들기 위해 조금씩 위치를 조정했다.

그러자 투창을 준비 중인 창들이 따라 움직였다.

저벅. 저벅.

아벨은 계속해서 움직였으나, 아무리 움직여도 자신에게 유리한 대치 구도를 형성할 수 없었다.

하영의 주변을 맴도는 창들이 아벨을 견제하기 때문이었다.

“견고하군요. 그게 지금 당신의 전력입니까?”

아벨의 말에 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경험이 미흡하고 재능이 없는 탓에 반응이 느리고 대처가 부족하지만. 이 창들은 달랐다.

적을 공격하라는 마력의 명령과 검투사의 의지, 그리고 투쟁심에 따라 움직이는 이 창들은 빈틈이 없는 하영의 호위무사이자 공격용 무기였다.

“…그렇군요.”

아벨이 검을 내렸다.

“제가 졌습니다.”

아벨은 한 치에 망설임도 없이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마력을 이용해 보유 중인 스킬을 사용하거나 오러를 검에 둘러 저 창들을 전부 쳐내며 돌진한다면 승산은 있었으나.

약속은 약속.

기사인 아벨은 주인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는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킬 의무가 있었다. 그게 그녀와 한 약속이었으니까.

“강하시네요, 당신은.”

“그런가?”

상대방을 깨끗하게 인정하는 아벨의 기사도 정신에 하영이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난 그냥 운이 좋았던 거 같은데.”

골드를 아끼기 위해 구매한 낡은 장창,

대치 중인 상태에서 낡은 창대를 부술 수 있을 정도의 힘,

목숨이 걸리지 않은 전투에서 자신의 한계를 새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하영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하영은 조용히 창들과 파편을 아공간에 담았다.

아직 남아 있는 투쟁심의 잔재가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며, 눈앞에 있는 강적을 향해 창을 휘두르라 소리쳤지만. 참았다.

“싸움은 끝났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아델라가 물었다. 이에 아벨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예. 무사히 약속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저를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

“됐어, 됐어.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예전부터 노래를 그렇게 불러댔는데. 내가 뭘 어떻게 막겠어. 게다가 은인의 앞이잖아? 어쩔 수 없지.”

아델라는 항복하는 사람처럼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 당분간 케이크를 먹지 않는 형벌을 받을 테니 부디 용서를…!”

아델라의 반응에 아벨이 소란을 떨었지만 아델라는 자신의 귀를 막는 것으로 아무렇지 않게 소란을 무시했다.

“와. 정신이 없네.”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직관한 하영이 중얼거렸다. 시청자들도 하영에 의견에 동의했다.

­ 낭만검객: 정신이 아니라. 정신머리가 없는 거 같기도 하고…

­ 아가리롤스타: 님 엄마도 없는 듯.

­ 미션석세스: 아 석세스하고싶다!

­ 천신대가리멈춰: 천신급 뇌빼기. 인정합니다.

­ 낭만검객: 아니. ㅅㅂ 저 새끼 때문에 뭔 채팅을 못하겠네. 네가 무슨 정하영 엄마냐?

­ 꿀벌아넣을게: 장모님!

­ 여신따먹고싶다: 아가리롤스타 여신임?

­ 방송계의유니콘: 장모님!

­ 악질방송만보는사람: 여신따먹고싶다. 저거 정지 안 먹음?

­ 여신따먹고싶다: 여신따라는 과일이 있어서 안 먹음 ㅋㅋㅋ

­ 낭만검객: ㅅㅂ 어떻게 과일이름이 여신따냐.

­ 검은콩나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ㄹㅇㅋㅋㅋ

­ 바른말만씀: 검은콩나물보다는 나은 듯.

­ 검은콩나물: ?

“여기도 정신이 없네.”

아 여긴 원래 없었나?

잠시 휴식을 즐기려던 하영은 소란스러워진 채팅에 휴식을 포기하고 고개를 돌렸다.

“저… 언니?”

소란을 종결시킨 아델라가 쭈뼛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하죠?”

소란이후 한결 차분해진 아델라의 질문에 하영은 생각에 잠겼다.

원래는 새태창을 타고 날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너무 큰 소란을 일으킨 탓에 그 방법은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이정도 소란이면 이미 이 저택 주변은 병사들로 가득 차있을 게 분명했다.

“사용하는 즉시, 성에서 탈출하는 탈출스프레이 같은 걸 상점에서 팔려나…”

좀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찾아보면 비슷한 성능을 가진 아이템 하나 정도는 나올 것 같긴 했다.

“아! 탈출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쇼!”

무릎을 꿇은 채 주인을 무시한 것에 대해 사죄를 하고 있던 아벨, 그녀는 하영의 중얼거림에 이때다 싶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럴 줄 알고 비밀통로로 향하는 입구는 제가 미리 파뒀습니다.”

조금 전까지 기가 죽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아벨이 당당하게 일어났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자! 가시죠!”

기사의 기사회생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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